"선생님, 애들이 안 하는 게 아니라 몰라서 못하는 거예요"

[학교 코로나 방역기 14]

등록 2020.09.24 18:38수정 2020.09.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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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만에 등교 수도권 지역 유·초·중·고 학생들의 등교가 재개된 21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이날 등교는 지난 8월 2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이 거세져 수도권 지역 학교들이 전면 원격 수업에 들어간 지 27일 만에 이뤄졌다. ⓒ 연합뉴스

 
1학년 아이들은 등교하자마자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터뜨리지 못했던 에너지를 마구 발산하며 복도와 교실을 휘젓고 다녔고, 그런 아이를 잡아 이야기하면 어떤 아이는 실실 웃으며 딴짓을 해 지도 선생님을 화나게 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방역, 수업, 생활 지도에 매일매일 전쟁 중이다.

2학년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고, 급식 지도를 하러 가는데, 한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학생부장님도 들으셨죠?"
"뭐 말씀이세요?"
"어제 우리 1학년 아이들 몇이 몰래 밖으로 나가 편의점에서 ○○중 2학년 아이들이랑 포옹하고..."
"○○중은 실시간 수업을 안 하나 보네요."
"일주일에 한 번만 하는 것 같아요. 1학년 아이들이 학교 무서운 걸 모르는 것 같아요. 학교를 함부로 나가는 것도 그렇고 공개된 장소에서 포옹하는 것도 그렇고... 애들이 개념이 없어요."
"그렇긴 한데...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그 '개념'이라는 걸 배운 적이 없잖아요. 중학교 입학해서 학교의 교칙과 생활 그리고 중학생으로서 바람직한 행동 같은 것에 대해 배우지 못했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나저나 걔들 어떻게 하죠?"
"전 아이들이 상식이 없는 게 아니라 배우지 못한 거니 불러서 나무라기보다는 차근차근 알려주면 될 거 같아요."
"글쎄요..."
"그리고 그 '개념, 상식'이라는 것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맞게 변하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생각하는 개념과 상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런가요...?"


선생님의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침묵은 내 말에 대한 명확한 부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선생님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주된 이유가 지식의 습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굳이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등교하지 않고 유명한 강사 선생님을 찾아가거나 영상을 보면 될 것이다. 나보다 더 잘 가르치는 선생님은 많다. 그런 면에서 난 경쟁력이 없는 교사인지도 모르겠다.

난 아이들이 사람 사는 법, 함께 모여 살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개념과 상식을 배우기 위해서 학교에 온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이 개념과 상식을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교육 활동을 통해 배운다. 이건 유명 강사보다 내가 더 잘한다. 그런 면에서 난 경쟁력 있는 교사다.

코로나는 극복할 수 있다지만

나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데 ○○중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인근 학교 2학년 학생들이 오후 4시에 학교 앞 아파트 정자에 모여서 담배 피우는 것을 잡았는데 우리 학교 아이 한 명도 있다는 거였다. 몰래 숨어서 핀 것도 아니고 대낮에 사람들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담배를 피웠다니... 뭐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과 한 시간 전에 후배 교사에게 아이들이 몰라서 그렇다고... 우리가 조금 더 열심히 가르치자고 했는데... 이 아이는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한동안의 현타(현실 자각 타임) 후, 내 '개념과 상식'을 들이대 아이를 판단해 비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를 가르치려면 인내가 우선이구나 싶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다 녹초가 되어 집에 가지만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코로나19가 아무리 난리여도 언젠가 우리는 이를 극복할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교육 활동으로 특히 인성 지도를 제대로 못 받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예전보다 더 똘똘한 아이들이 그 지식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걱정스럽다. 솔직히 난 아이들이 그렇게 될 것 같아 두렵다. 지식을 담는 인성이 바르지 못하다면 그 지식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해하는 데 사용되는 흉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인내가 훨씬 더 필요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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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학교에 다녔던,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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