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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아내가 아픕니다

무리한 가사 일로 팔에 무리가 온 아내... 코로나로 알게 된 것들

등록 2020.09.25 08:48수정 2020.09.2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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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야 하는 나를 제외하고 가족 모두가 극단의 사회적 거리두기. 일명 '집콕'을 실시하고 있다.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는 코로나의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알지 못했던 희망을 엿본다.


  

코로나 시대 풍경1 코로나라는 파도를 헤쳐가는 우리 ⓒ 남희한

   

코로나 시대 풍경2 거리를 뒀는데 가까워졌다. ⓒ 남희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덕분에 세상이 많이도 변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악수는 위협이 되어버렸다. 아플 때나 사용하던 체온계가 출근길에 나를 반기고, 회사 식당 테이블에는 칸막이가 설치됐다. 의심과 불안인지 확신과 안심인지 모를 간극으로 사람들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다소 번거롭고 불편해도 괜찮았다. 원래 그랬던 것 마냥 사람들의 협조는 기대 이상이었다. 열이 나면 회사를 나오지 않았고 엘리베이터 바닥에 나눠진 칸이 비어 있지 않으면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좋아하던 술자리는 집에서의 반주로 바뀌었고, 가족들과 부대끼는 시간이 길어지며 가정에서의 질서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 우리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내가 아프다 

아이들과 집에만 머물러 있는 시간 동안 아내는 펜션 주인이자 식당 주인이 되었다. 식사를 차리고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돌아서면 또다시 밥 시간이 되는 시간 순삭의 시기를 매일 보내며 아내의 몸은 차츰 말라갔다.

그렇게 고민이던 체중 감량을 뜻하지 않게 이뤄냈다며 배시시 웃는 아내. 같이 웃어보지만 끝 맛이 어째 씁쓸하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고 했던가. 극단의 노동력과 체중을 내어주고 아내는 팔에 염증을 들여 앉혔다.


하루 세 끼만 해도 벅찰 것을 끼니 때마다 후식 제공에 일일 교사도 병행하며 몸을 혹사시키니 결국 몸이 부분 파업을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팔 쓰지 마." 말과 마음뿐이던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내의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고 결국 한계에 다다라 버렸다.

어느 날, "괜찮냐?"라고 물으며 아내의 팔을 툭 치는데 아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팔을 부여잡는 것이 아닌가. 덩달아 나도 놀라 그리 크지도 않은 눈이 같이 동그래졌다. 괜찮다는 의미가 "(그렇게 전혀 아프지 않을 정도로라도 툭 치지만 않으면) 괜찮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팔을 부여잡곤 다급하게 괜찮다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엄포를 놨다.

"절대 움직이지 마, 내가 다 할 테니까 오른팔은 절대 쓰지 마!!"

매일같이 아이들 반찬과 남편 반찬을 따로 만드는 아내를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섯 식구의 설거지를 매일 하면서도 요령 피울 생각도 없이 있는 그릇 없는 그릇 다 꺼내 가족에게 대접하는 것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나라면 저러지 못할 터인데 어찌 저리 태연하게 저 번거로운 걸 마다하지 않고 해내는지 경이로울 정도였다. 미련스러울 정도로 헌신적인 그녀의 속 깊은 마음이 내게 깊은 속상함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이가 둘 밖에(?) 없을 때, 얼마 되지도 않는 설거지를 한 시간 넘게 하고 며칠간 습진으로 고생하는 모습에 질려버린 아내가 도맡아 하던 설거지. 그 어려운 것을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내뱉은 말이 주워 담기지 못하고 내 손에 고무장갑을 끼우고 내 팔을 움직이고 있는 거다. 역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건 조심해서 들고 다녔어야 했는데, 입이 방정이다. "절대 설거지하지 마! 일회용 그릇 써!!" 이런 멋진 말을 하지 못했다니. 마이 미스테이크.

느려 터진 손과 없는 요령으로 설거지는 한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자연스레 등이 뻐근하고 다리가 저렸다. 1주일 정도 되니 아내가 겪은 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거의 하루 종일 손목을 비틀며 닦는 동작에 아래 팔 근육이 성할 리 없어 보였다. 아무튼 뭐든 지나치면 독이긴 한가보다. 아내의 가사도 나의 입방정도.

어려울 때 알게 되는 것들

생각해보면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아내는 가족을 극진히 돌보며 한계 없는 사랑을 유감없이 증명했고 아내를 위해 죽도록 싫어하던 설거지를 할 수도 있는 츤데레의 면모가 내게 있음을 보여주게 만들었다. 

요 근래 들어 퇴근해서 주방을 살피면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처방받은 약이 효과가 있는지 또 꿈쩍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모지리. 이럴 때 남편 좀 부려먹어도 될 것을 하여간 미련스럽다.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저녁상이 다시 풍성해지고 있다. 좋은 신호임이 분명한데 나는 왜 이리 불안한지 모를 일이다. 

어려울 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요즘 같은 시기 마음껏 뛰놀 수 있는 1층의 매력, 친구가 아쉽지 않을 정도로 북적대는 네 남매, 아픈 팔을 주무르며 아이들을 돌보는 아내의 대단함은 물론이고 싫다면서도 하고 있는 내 안의 지극히 조그마한 사랑 같은 것들.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그 속에서 알게 된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게 되는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데 자꾸 서로를 안아주며 토닥이게 되는 이상한 상황 속에서, 머지않아 화창한 어느 날, 알록달록한 나무 밑, 많은 사람들 틈에 앉아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를 듣는 모습을 떠올린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더 단단해져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너무나도 당연했던 그 모습이 식지 않게 희망의 군불을 지펴 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그림에세이 #코로나 #거리두기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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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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