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국민이 원하는 건 전교 1등 의사가 아닙니다

차별과 멸시가 난무하는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의료진의 모습은

등록 2020.09.26 13:54수정 2020.09.27 10:37
0
원고료로 응원
전국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 응시하겠다'라는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시험 기간이 지났으니 내년에 응시하라'는 반응이다.

지난 8월, '국시 접소 취소한 의대생에 대한 재접수 등 추후 구제를 반대한다'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9월 23일 마감된 이 청원에는 57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정부 역시 형평성과 공평성의 문제를 들며 추가 응시 기회를 주는 데는 국민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의 의대생들은 정부의 공공의료 확충 방안에 반발하며, 단체로 국가고시를 거부했다. 전공의들은 국민의 건강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코로나19 속에서도 파업(집단 휴진)을 선언했다. 국민은 코로나19라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더 큰 불안을 짊어지게 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들은 사과 한마디 없이 일자리로 복귀했고, 일부 의대생들은 의료계 단체 등에 대한 배신감을 운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고시 실기 시험에 응시하겠다고 한다. 

국민이 원하는 의사는 전교 1등이 아닙니다
 

정부 의료정책을 비판하는 홍보자료를 의사협회가 공개,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하루 만에 삭제했다. ⓒ 의사협회 페이스북

국민은 그들의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국민은 내신 1등급만 목표로 하는 의사를 원한 적이 없다. 국민이 원하는 의사는 무엇보다 사람의 병을 고치고, 목숨을 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사다. 또, 특권 의식에 갇힌 의사를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엘리트주의나 권위적인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실력 있는 의사를 원한다.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바라보며 과잉 진료를 하면서도 '다른 의사도 다 이렇게 먹고산다'라고 생각하는 양심 없는 의사를 국민은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삼아 정부를 압박하는 모순된 사람이 주치의가 되길 바라는 환자는 없다. 

불안을 동력 삼아 권유하는 사회

JTBC <SKY 캐슬>은 <부부의 세계>가 나오기 전 역대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을 찍은 드라마다. <SKY 캐슬>이 대한민국에서 그토록 인기를 끌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선 다양한 모습과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향해 오직 서울 의대에 가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나온다. 집 한 가운데 피라미드 모형을 가져다 놓고 꼭대기에 오르지 못하면 너는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서로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입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그런데 내신 1등급을 쟁취하고, 나의 불안을 덜어낸 이후의 모습은 어떨까. 평범한 이웃의 삶과 노동을 하찮게 여기면서 다시 불안을 충전하게 된다. 누군가의 평범한 삶을 경멸하고 모욕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차별과 멸시의 시선을 보낸다. 그렇게 오만과 특권 의식을 기른다. 

정신분석 용어 사전에 따르면 '불안'은 불쾌한 일이 예상되거나 위험이 닥칠 것처럼 느껴지는 불쾌한 정동 또는 정서적 상태라고 한다. 일상의 철학자라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인 <불안>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간이 불안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현대인이 불안을 느끼는 원인에 관해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p.8)

코로나19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빠르게 퍼지는 집단 이기주의와 서로를 향한 혐오일지도 모른다. ⓒ pixabay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나 의대생이 그런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의사라는 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고,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들도 우리 곁에 존재한다. 또한 그런 의사를 신뢰하고 감사해하며 건강을 회복하는 환자도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대립구도가 형성되어선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빠르게 퍼지는 집단 이기주의와 서로를 향한 혐오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퍼지던 올해 초를 기억한다. 답답한 방호복을 입고 진료하던 의료진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덕분에 챌린지'를 하던 때가 있었다. 힘든 시간 함께 극복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가슴 따뜻한 시간들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K-방역의 중심에는 그런 국민이 존재했다. 

언젠가 이 어려움의 시간들도 지나가고, 뒤돌아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자기 삶을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써 나가길 희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은영 기자 브런치에도 함께 올라갈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우리가 서로를 알기 전보다 알고 난 후, 더 좋은 삶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씁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AD

AD

인기기사

  1. 1 공교롭고도 낯뜨거운 '윤석열 단독'
  2. 2 박근혜 탄핵 후에도, 매년 100억 받으며 돈 쌓는 이 재단
  3. 3 15년 걸린다더니... 단 3일만에 쌍용천 뒤덮은 초록물의 의미
  4. 4 로고만 싹 잘라내고... '상습 표절' 손씨, 오마이뉴스 사진도 도용
  5. 5 [단독] '검찰 직접수사 완전폐지' 흐지부지? 여당 내 반대 기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