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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초로 공공부지에 세워진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현장] "한국의 저항에 공감" "함께 싸울 것"... 해외 '위안부' 운동사 새 분수령

등록 2020.09.29 16:13수정 2020.09.3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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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민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다. 나이가 90이 넘는 노인인 내가 무슨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겠는가. 진정으로 사과할 때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싸울 것이다."

지난 2015년, 김복동 할머니는 독일 베를린 일본대사관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셨었다. 

"저는 집에서 편히 잠을 잘 수도 있지만, 제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멀리 독일까지 왔습니다. 제가 당한 일을 다른 소녀들이 절대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죠.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이는 지난 2008년, 먼저 베를린을 찾았던 길원옥 할머니의 소망이다. 

유럽 내 공공부지에 세워진 첫 소녀상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9월 28일 오후 제막식을 통해 시민들과 만나게 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사진). 이는 유럽내 공공부지에 세워진 첫 소녀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 클레어 함

 
이외에도 이옥선 할머니, 문필기 할머니, 장점돌 할머니, 이수산 할머니, 안점순 할머니 등이 그간 독일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면서, 독일 시민사회에 꾸준히 연대를 요청해왔다.

독일 시민사회는 드디어 28일 오후(현지시각) 독일 수도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면서, 평화와 인권을 외쳤던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화답했다. 이날 제막식을 통해 시민들과 만나게 된 평화의 소녀상은, 유럽 내 공공부지에 세워진 첫 소녀상이라는 데 더욱 뜻 깊다. 

베를린에서는 자국 역사를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경우가 아니면 조형물 설립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소녀상 건립 주체인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는 올해 7월 6일 베를린시의 중심지역을 담당하는 미테구(Mitte) 도시공간문화위원회 허가를 받아 독일 최초로 공공장소에 소녀상을 건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코리아협의회 사무실 근처인 브레메 스트라셰와 비어켄 스트라셰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베를린 시민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Bremer Straße/ Birkenstraße Bremer 10551 Berlin) ⓒ 클레어 함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베를린시 동의를 얻어낸 배경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이슈는 전시 성폭력에 맞서는 여성 인권·평화라는 주제이기에 베를린시 담당자들도 쉽게 공감했고, 소녀상 자체의 높은 예술성에도 매료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그간 13개 지역단체가 가입한 베를린 모아비트 지역 커뮤니티, 레유니온 (reUNION)과 연대 활동을 함께 해오며 지역 주민들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코리아협의회는 청소년 탈선을 막고 주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레유니온 일원으로 참가하는 가운데, 소녀상 건너편에 위치한 학교 정원에 한국 텃밭을 만들거나 '페테 라 뮤직 페스티벌' 등 문화행사를 통해 지역사회와 긴밀히 소통해왔다. 한 대표는 지난 2년 간 주민과 많은 교류로 소녀상 건립을 위한 지지를 끌어냈다며 소녀상 건립 추진 경과를 설명했다. 

28일 월요일 오후 3시에 열렸던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은 코리아협의회 사무실 근처인 브레메 스트라셰와 비어켄 스트라셰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개최됐다. 2시간 넘게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개막식에는 베를린 시민 70여 명과 재독 동포들이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환영사를 전하고 있는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 한정화 대표는 환영사를 통해 “제가 29년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처음 접했을때 상상하기 어려운 잔인함에 밤새 울었다. 당시는 이 이슈에 대한 제 공감과 연대의 마음이 이토록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럼에도 이 과정에서 제가 얻은 소중한 연대와 사랑의 경험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 클레어함

  
"독일 과거사 성찰 때 놓쳤던 두 가지 주제를 일깨워준다"

지난해 독일 최초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 역사를 소개한 다니엘 슈마허 박사도 이날 제막식에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슈마허 박사는 독일 수도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 의미에 대해 묻자 "독일 시민들이 그간 과거사를 성찰할 때 간과해왔던 두 가지 주제를 일깨워준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독일은 제국주의 범죄와 여성에 가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소홀한 점이 있는데, 그 상징인 소녀상 건립을 통해 관련주제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한 "(소녀상이) 독일 주류사회에 아시안 커뮤니티도 존재한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이들이 현재까지 겪어온 역사적 갈등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뜻깊다"라고 독일 내 소녀상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 9학년 역사 교과서에 일본제국주의 역사를 다루는 장을 기술했는데, 여기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현 정의기억연대)이 1995년 발간했던 생존자 증언집을 토대로 김덕진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일부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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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해 박수갈채를 받았던 야지드족 인권운동가 니지안 귀나이씨가 소녀상의 손을 살포시 잡고 있다. ⓒ 클레어함

 
최근 '이슬람국가'(IS)에 의해 납치돼 야만적인 성폭력을 당해온 이라크 및 터키 소수민족인 야지드족 인권운동가 니지안 귀나이씨는 이날 무대에 오른 후, "오늘은 단지 한국만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주 뜻 깊은 역사적인 날이다, 함께 하게돼 영광"이라는 축하를 전했다.

그는 또한 "2014년 이래 수천 명 야지드족 소녀와 여성들도 IS에 의해 조직적으로 납치되고 강간당했으며 심지어 성노예시장에 매매를 위해 전시되기도 했다. 아직도 수천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생사조차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여성 폭력과 인종주의가 악성종양이 번지듯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여성 네트워크·연대만이 해결책일 것이며, 피해자들에겐 이런 국제적 연대가 희망을 뜻한다"고 말해 참여자들의 큰 호응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화장없는 여성'(Ungeschminkt) TV 시리즈를 제작했고 리유니온 회원이기도한 크리스티아네 케플러 감독(70)은 이날 "소녀상이 우리 동네에 설립돼 무척 기쁘다"며 "성폭력에 침묵하지 않고 저항하는 여성인권 이슈에 크게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소녀상 근처에 위치한 지멘스사의 한 노조원도 "향후 (소녀상 탓에) 일본 정부나 우익의 압박이 가해진다면, 기꺼이 함께 싸우겠다"라며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의 저항에 공감" "일본이 압박하면 함께 싸울 것" 연대·지지 전한 독일

지난 2018년 수요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던 베를린의 저명한 총체예술가 문 숙씨는 "2차대전 과거사의 반성이라는 면에서 모범을 보여온 독일에서조차도, 이런 유의미한 소녀상 개막식 행사가 일본의 압박을 우려해서 조심스럽게 개최돼야만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한국 정부가 향후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관련 '위안부' 단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길 요청한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평화의 소녀상 김서경-김운성 작가도 축사를 통해 베를린 시에 세워진 소녀상에 함께 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소녀상을 기증한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도 "어려운 시기에도 변함없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을 모아준 이들에게 감사하다"며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통해 전 세계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의 의지가 퍼지고, 그 정신이 계승되며, 여권·평화의 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응원하겠다"고 영상 축사를 보내왔다.

그간 정의연과 길원옥 할머니는 2007년 앰네스티와 함께 네덜란드 의회결의안 및 유럽의회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냈다. 이 유럽연합결의안은 모든 27개 회원 국가 언어로 번역돼 있다.
 

축사를 전하고 있는 하 키엔 니 박사 하박사는 한국의 위안부운동 주체들이 한국군의 베트남전 범죄를 인정하고, 응우옌 티탄 민간인 대학살 생존자들및 여성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한 연대는 고무적”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 클레어 함

  
중국계 베트남 출신 하 키엔 니 박사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한 뒤, 한국의 베트남전 범죄에 대해서도 추가로 언급했다. 하 박사는 "32만 명 한국군은 베트남 남부에 주둔하던 1963년~1975년 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며, 이 시기 한국-베트남 혼혈인, 라이 따이한의 출생은 3만 명까지 추정된다. 이들은 대개 생부의 경제적 지원도 없이 성장했고, 아직도 과거 적군의 자녀라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한국의 위안부운동 주체들이 한국군의 베트남전 범죄에 대해 인정하고, 응우옌 티탄 민간인 대학살 생존자들 및 여성인권 활동가들이 함께 연대하는 것이 고무적"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국경·인종 한계 넘어... 한국·베트남 등 성폭력 피해 기록 남기는 코리아협의회  

코리아협의회는 2019년 1월 이래 사무실 내에 '무언(無言) 다언(多言)' 상설 전시관을 개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기록물,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 피해자 할머니들 모습을 담은 츠카사 야즈미 작가의 사진작품 등을 소개해오고 있다.

'무언 다언'에는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당시 수많은 군인들의 성폭력과 관련된 기록물 이외에도 야지드족 여성들 피해 사례도 함께 알리고 있다. 이 전시는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이 무기력함 탓에 말하지 못하는 무언의 상태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개인과 공동체 차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기획된 것이다.  

한편, 코리아협의회 한 대표 주도로 2009년 코리아협의회 산하에 설립된 일본군위안부문제대책협의회(AG 'Trostfrauen')는 일본군성노예제를 독일사회에 알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동안 해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을 독일로 초청해 독일 도시 순회 증언회 및 기자회견, 정치인들과의 만남 주선, 대중강연회 등을 진행해온 것이다. 이들은 또 국제 여성인권단체들과 연대해 집회를 주관해왔고 현재는 주변 학교들과 협력해 교육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협의회 회원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 초창기부터 함께 활동해 온 <베를린일본여성모임> <재독여성모임> <한민족유럽연대>를 비롯해 독일, 필리핀, 베트남, 콩고, 수단 국적의 시민들도 참여 중이다. 이들은 향후 '메디카 몬디알레' 등 세계적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인권단체를 비롯해 한국-독일시민단체, 종교단체, 다수 국제 여성인권단체들이 가입할 예정인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건립위원회 연맹>을 별도로 설립해 일본 우익세력 압박에 대항하려 준비 중이다.

이 소녀상 개막식은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던 용기를 기리고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된 8월 14일로 개막하는 것으로 계획됐으나,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및 현지사정으로 인해 미뤄졌다. 

이날 제막식에선 음악연구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서 도로테아씨가 사회를 맡았고, 설장고, 살풀이춤, 아리랑 춤등 전통적인 한국 음악 및 가무와 함께 핸드팬 연주, 타악기 트리오 합주 등 풍성한 음악 프로그램이 어우러져 참석자들의 흥을 돋궜다.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주소는 다음과 같다(Bremer Straße/ Birkenstraße Bremer 10551 Berlin, ☞ 구글 지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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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함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칼럼니스트및 인권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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