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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출발점은 1945년이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3부 소년의 꿈 (1)

등록 2020.10.08 15:01수정 2020.11.0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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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년시절(1954년 구미초등학교 3학년 때) ⓒ 박도

 
['제3부 소년의 꿈'을 시작하면서]

나는 2016년 8월 10일부터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이라는 연재에 '제1부 초록색 견장'이라는 부제로 나의 삶 가운데 주로 군대생활 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다. 그리하여 그해 10월 29일까지 모두 22회로 마치고 그해 11월 4일부터 '제2부 교단일기'를 2017년 1월 21일까지 모두 22회로 마친 바 있다.

이어서 나의 소년 시절, 작가 및 기자 시절 얘기를 연재하려다가 내 사생활 노출이 심한 부분이라 먼 훗날로 미뤘다. 사실 제1부와 제2부를 연재하면서도 어쭙잖은 내 지난 삶의 얘기가 자기변명 또는 자기자랑, 자기과시로 비칠까 매우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그 연재에 의외로 많은 독자들이 열독해 주시고 성원해 주셨다.

게다가 이 연재로 그해 연말 '2016 오마이뉴스 특별상'까지 받았다. 그 무렵 나는 장편소설 집필로 두 일을 병행키 어려워 제3부와 제4부 연재를 미루던 가운데 2019년 그동안 내 책을 10여 권이나 출판해준 눈빛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았다. 그리하여 나머지 부분도 집필, 탈고한 뒤 지난 8월 28일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이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하지만 늘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약속 때문에 고심하던 차였다. 연재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했고, 언젠가 이어가기로 예고한 바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번 기회에 '제3부 소년의 꿈'과 '제4부 작가 및 기자생활' 편을 이어갈 예정이다.

나는 이 연재를 통해 1945년생 해방둥이 한 소년으로, 한 작가, 한 시민기자의 눈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 흐름을 조망하면서 내 인생 여정을 가감이 없이 쓰도록 노력하겠다. 나의 연재가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미시적 접근 방법이 된다면 영광이겠다.

 

1910년 8월 29일, 경복궁 근정전 앞에 게양된 일장기. 이 날로 조선왕조는 문을 닫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 눈빛출판사

 
일본의 조선 강점

1910년 일본은 이웃 조선을 강점했다. 그해 8월 29일, 이른 아침부터 경복궁 근정전 문 앞에는 대형 일장기 두 개가 좌우로 나란히 드리워졌다. 이날부터 대한제국(조선왕조)은 역사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조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의 신민이 되는 일제강점기로 접어들었다. 마침내 조선은 일본 왕이 임명한 조선총독이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19년 3월 1일, 조선 백성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독립만세운동으로 비로소 국내외에 여러 임시정부가 태동했다. 그 가운데 가장 여건을 두루 갖춘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마침내 그해 4월 11일에 탄생했다.

일본은 조선을 병탄하고도 야욕은 그칠 줄 몰랐다. 1931년에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동북지방을 강점해 괴뢰 만주국을 세웠다.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일으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그들 나라보다 수십 배나 더 큰 중국대륙을 누에가 뽕잎을 먹듯 야금야금 침략해 갔다.

이에 미국‧영국 등이 중국을 지원하자 일본은 1941년 12월 8일 미국 태평양함대기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마침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버마에 이르기까지 점령하는 등, 그들의 판도를 대폭 넓혀갔다. 하지만 대대적으로 반격에 나선 미국은 1944년 7월 7일 사이판을 점령한 이후로는 그 전세가 크게 반전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그곳에 비행기지를 마련하여 일본 본토를 폭격하는 한편, 곧 이어 전대미문의 가공할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이 원자폭탄을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廣島)에, 8월 9일에는 나가사키(長崎)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두 도시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게다가 일본은 1945년 8월 8일 소련의 참전으로 만주의 관동군조차 맥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최후의 일인까지 결사 항전을 표방하던 일본은 마침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연합국의 포츠담선언을 무조건 수락할 뜻을 밝혔다.
  

원폭 투하 후 일본 히로시마(왼쪽)와 나가사키(오른쪽) 상공에 피어오른 버섯구름 ⓒ NARA /눈빛출판사

 
원자폭탄 두 방에 손을 바짝 든 일본

미국은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에 그때부터 매우 다급해졌다. 그 무렵 미군은 한반도에서 1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오키나와에 있었고, 지리적으로 국경을 인접한 소련군은 곧 한반도를 점령할 상황이었다. 소련 제25군은 동해의 청진, 원산, 옹기, 나진 등의 항구에 이미 상륙하고 있었다. 미국은 자칫하다가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엄한 사람이 받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1945년 8월 10일 밤 한반도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미소 양국이 분할하는 '일반명령 제1호' 초안을 입안하여 8월 14일 소련 측에 전달되었다. 소련은 다음날 미국의 제안을 수락한다는 전문을 보내왔다.

이로써 한반도는 우리 겨레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일제 패망 직전, 이미 미소 두 나라의 전리품으로 우리와 어떤 상의도 없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분할됐다. 그들은 마치 고사를 지낸 뒤 시루떡을 나누듯이 한반도를 북위 38선을 기준해 두 쪽으로 쪼개 서로 나눠가졌다.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라디오에서는 정오를 알리는 시보가 울린 다음, 잠시 뒤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다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에 감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하고자 여기 충량한 그대들 신민에게 고하노라.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 영· 소· 중 4국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 (생략)"
 
일본제국주의가 마침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일본 스스로 태평양전쟁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항복방송이었다. 그리하여 1945년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됐던, 우리 현대사의 출발점이 된 해다.
  

1945년 해방 무렵의 경북 선산군 구미면 일대의 풍경으로 산은 거의 벌거숭이요, 하천은 메말랐다. 그 당시의 척박했던 생활환경을 짐작케 하는 매우 희귀한 사진 자료다. 미 공군의 항공촬영 사진으로 눈빛출판사에서 발굴하여 오마이뉴스에 최초로 공개한다. ⓒ NARA / 눈빛출판사 제공

 
해방둥이로 태어나다

나는 우리나라가 해방됐던 1945년 12월 10일(음력 11.6.) 경북 선산군 구미면(현 구미시) 원평동에서 태어났다. 출생부터 우리나라 현대사와 맞물렸다. 그런데 내 주민등록상 출생연도는 1946년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여러 얘기가 있다.

그 하나는 어린 시절, 나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언제 죽을지 몰랐기 때문에 출생신고가 늦었다고 한다. 그 둘은 해방 직후 혼란기로 미처 출생신고를 할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그 셋은 6.25전쟁으로 구미면사무소가 불에 타버려 호적을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착오 때문이라고 한다.

그 정확한 사유를 잘 모른 채 오늘까지 살아왔다. 아무튼 나는 해방 직후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 부실하게 자랐다.

(*다음 회에 어어집니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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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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