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남편 말릴 수 없다"는 말, 전 웃을 수가 없습니다

배우자를 개별적 존재로 인정하고 자유롭게 놔누는 것, 왜 '남자'에게만 적용되죠?

등록 2020.10.16 14:09수정 2020.10.16 14:23
1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떤 엄마가 종갓집 딸이라고 시어머니가 좋아했다가 망했데."
"왜?"
"명절날 아무 것도 모르더래. 내심 기대했던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종가집에서는 남자들이 음식을 다 한다고 했대."
"여자들 음식 안 하고 좋겠네."
"그게 아니지. 여자들이 음식하면 부정 탄다고 못 하게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아니 시켜도 뭐라 하고 안 시켜도 뭐라 하고 어쩌라는 거야."
 

추석날 남동생과 나눈 대화다. 아는 엄마의 이야기를 해줬더니 음식을 안 해서 좋겠다는 표면적인 것만 보고 좋겠다고 반응하는 동생이 답답하다. 명절날 여성에게만 일을 시키는 것, 종갓집에서 여성에게 '부정 탄다'고 노동을 시키지 않는 것. 겉으로 보기에 좀 다른 현상이지만, 이 둘의 근본은 같다.


노동을 하든 안 하든, 그 이면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있다. 이걸 보지 못하는 사람에겐 둘이 달라 보이고, 그저 일을 안 하는 게 좋아보인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을 시키거나 일을 못 하게 하는, 바로 그게 문젠데 말이다.

얼마 전 국감장에서 강경화 장관에게 남편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강 장관은 남편에 대해 언급하며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은 웃었고, 언론에서는 '적도 웃게 만드는 말'이라는 식의 타이틀로 기사를 썼다. 국회의원들의 웃음이 불편한 건 이번에도 나뿐인가?

청문회 등에서, 남자 후보의 경우 아내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의 논란에 휩싸일 때가 있다. 공직자의 가족들은 공인에 준하는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된다. 심지어 2013년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였던 진영 전 장관은 아내가 소아과를 운영하는데, 항생제와 주사제 사용 빈도가 높았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다. 

공직자의 아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와 달리, 지금 강 장관 배우자와 관련해선 그의 '개별성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이 의견에 찬성한다. 다만, 고위공직자가 남성이고 아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안 나오던 이야기가 지금에서야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남성 장관이 아내를 두고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면 국회의원들이 웃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 하나 단속 못 한다"며 더 큰 소리로 호통쳤을지도 모른다. 


강 장관의 말에 국회의원들이 웃은 게 실소였을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집안 단속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정 내 단속 사항인 '수신제가' 중 제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다른 남성 장관을 비판할 때와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남성을 어쩔 수 없고, 남성은 여성을 좌우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본다. 아내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니까 남편이 '단속'해야 하고, 남편은 개별적 존재이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켜도 어쩔 수 없다고 보는 시각인 것이다. 
  ​
나에겐 보이고 동생에겐 보이지 않은 이면. 누군가에겐 재밌지만, 내게는 불편한 국감장의 웃음소리. 내가 너무 예민한 거라 말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정확하다. 세상의 불평등에 불편함을 느끼고 예민한 감각을 가져야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넘어가는 시선 때문에 누군가는 계속 명절증후군에 시달려야 하고, 여성은 고위공직자를 하기 힘든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졌다. 
#강경화 #국감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