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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것, 그것도 재능"

[인터뷰] 가르치고 배운 글방 이야기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작가 ②

등록 2020.11.03 12:55수정 2020.11.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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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서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슬아 작가의 글에 환호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책을 펼쳐들면 나도 모르게 이슬아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니까. 어느 문장은 웃기고, 어느 문장은 애잔하다. 그녀의 글에는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다.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쓰기 위해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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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 ⓒ 권우성


- 작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은 어디서 왔을까요?
"전 자유분방하지 않아요. 자유분방한 친구들 보면 전 제가 정말 지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해요."

- 기성세대인 제가 이슬아 작가에게 느끼는 자유분방함은 자신의 성적인 취향이나 섹스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글로 썼다는 데 있지 않나 싶어요. 문학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섹스는 문학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에세이에서 다루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 방식(겉으로 말하거나 쓰는)으로 접해보지 않은 기성세대들에게는 낯선 경험일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누구나 각자 변태성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나요? 루프 피임 시술 이야기같은 것은 오히려 보수적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지금은 임신하면 안 되는 시기이고, 피임이 건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섹스 이야기를 건전하고 보수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는 더 자유분방해지고 싶어요. 그리고 다들 야함과 함께 살아가고 있잖아요? 말을 안 할 뿐이지."

- 책에서 한 남자 아이가 술을 먹고 음담패설을 나눈 에피소드가 있잖아요. "그들이 이걸 알아가는 순서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첨언하지 않아도 각자의 속도와 방식대로 섹슈얼리티의 역사를 쓸 것이다"라고 한 대목이 나와요. 저는 오히려 글방에서 이런 주제를 솔직하게 다뤘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성적인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은 것 같아요. 성적인 이야기는 일기장에 쓸 수는 있지만 글쓰기 수업에서는 쓰고 싶지 않을 수 있잖아요.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신경 쓰이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죠. 또 저한테는 보여줄 수 있어도 글쓰기 수업에서 이야기하는 게 창피할 수도 있으니까요. 잘못 이야기하면 성희롱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은유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글감을 준 적은 있어요. 글감이 '쾌락'이었어요. '쾌락'이라는 건 진짜 다양한 감각을 포함해요. 저는 인생에서 쾌락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10살만 되어도 이미 여러 가지 쾌락을 알고 있고요. 예를 들면, 사탕을 자기식 대로 음미하는 과정에 대해 진짜 자세하게 써오는 친구도 있고, 자기 식으로 쾌락의 매뉴얼을 써오는 친구들이 있어요. 일요일에 침대에 누워 TV를 켜고, 먹을 것을 옆에 두고 넷플릭스 시즌을 챙겨서 본다든가 하는 것들요. 이것이 나를 확실하게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이다. 이런 걸 알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요. 저는 이런 걸 쾌락의 매뉴얼이라고 불러요."

- 제가 부모 입장이라 그런지, 평소 아이들과 성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힘든 만큼 글방 같은 곳에서 글쓰기 주제로 다뤄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그건 아이들 글에서 나오길 바라기보다는 교재로 가져가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몸의 일기>라는 소설을 교재로 진짜 많이 쓰거든요. 프랑스 소설인데, 다니엘 페나크 작가가 어릴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쓴 몸의 일기에요. 한 6살 때부터 써서, 발육과정, 생전 처음으로 누구랑 해본 과정, 다양한 쾌락과 고통과 노화, 이런 게 적혀 있어요.

그럼 그 애들보다 2~3년 앞선 작가의 야한 경험을 복사해서 나눠줘요. 이 작가는 이때 첫 키스나 포옹으로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식으로 썼다라고 알려주는 거죠. 애들은 살짝 야한 내용이 있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당장 내가 그 비슷한 글을 쓸 수는 없지만, 기억을 해요. '오늘 글쓰기 수업에서 읽은 글은 좀 느낌이 이상했어요' 하고.

혹은 제 책에 나와 있듯이 <페르세폴리스>같은 훌륭한 그래픽 노블을 읽히는 거죠. 이란의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지만 중간에 마르잔 사트라피라는 작가가 어떤 식으로 남자를 만나고 어떤 성적인 경험이 있었는지도 만화로 다 나오거든요. 그런 책을 가져가서 즐겁게 읽기도 하는데, 어떤 애들은 불만을 말하기도 해요. '왜 선생님이 골라준 책은 다 야해요?'라고. 그럼 제가 '뭐가 야해' 이러는 논쟁이 좀 있어요.(웃음)"

- 처음 생계를 위해 글방을 내셨다고 했는데, 지금의 글방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 생계 때문에 했는데 해보는 즉시 알았어요. 아, 이건 생계 때문만으로 하는 게 아니구나. 지금도 계속하는 이유는 제가 많이 배우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궁금해요. 아이들이 다음 주에 뭐 써올지. 닮고 싶은 문장이 매주 나와서 수업할 때마다 말해요. 너 지금 이렇게 썼는데,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고. 어떻게 썼니. 너무 대단하다. 그래서 까먹지 않으려고 칠판에 명문장들을 적어요. 나도 다시 한 번 읽고, 다른 애들도 한 번씩 복기하라고. 좋은 문장이라고.

그리고 글쓰기 교사를 하려면 계속 작가여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요.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은 금세 밑천이 떨어져요. 가르치기만 하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쉬울 것 같아요. 그런데 현직에 계속 있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다가 '어? 이거 나도 못 하는데'라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고요. 글방 교사와 작가,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저한테는 매우 좋은 감각이에요. 어떤 것들은 확신해서 말하는 동시에 문득 부끄럽고 더 노력하게 되니까요."

'무언가를 계속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이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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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 ⓒ 권우성


- 책에서 '재능과 반복'이란 대목을 읽고 많은 위안을 받았는데, 얼마전 북토크에서 이길보라 작가가 이런 말을 하셨어요. (요약하자면) "슬아가 재능과 반복을 강조하지만 물리적으로 이런 노력이 불가능한 사람이 존재하죠..."라는. 
"상당히 중요한 말이에요. '재능과 반복'이 '하면 된다' 그런 식의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해도 안 되는 일은 많다고 생각해요."

- 그래서 가끔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재능도 있는데 반복을 하면 100점이지만, 재능은 없고 반복만 하면 70점 아닐까? 가령, 아이가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에 재능은 없어 보이는데 그저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축구를 하라고 지지해주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글을 잘 못 쓰는데, 글 쓰는 수업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진짜 재능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축구를 별로 못하는데 축구를 엄청 좋아한다면, 그 아이는 축구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축구를 좋아해 본 적이 없거든요.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흔하지 않잖아요.

'무언가를 계속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이 재능인 것 같아요. 어떤 분야에서 무언가를 계속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재능 같아요. 세상에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 하필 그중에서 축구나 글쓰기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 자체가 진짜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꾸준히 글쓰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습관 조언 해주실 게 있을까요?
"사실 글을 꼭 써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웃음) 글쓰기 싫으면 안 써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어요. 정말 힘들면 안 써도 된다고 누구에게나 말해요. 아이들도 쓰다가 막 울거든요. 가끔 너무 쓰기 싫어서 울어요. 그럴 때 '야, 울 정도로 잘 써야 되는 거 아니야. 때려치자. 울지마'라고 말해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쓰셔야 한다면 건강하게 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운동하셔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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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 ⓒ 사진 권우성/디자인 고정미


- 만약, 작가로 살고 있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편집자로 살고 싶었어요. 편집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편집자가 되고자 노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사서가 되고 싶었어요. 사서는 편집자와 작가보다 더 빨리 사라지는 직업이라고 다들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게다가 사서 선생님을 가끔 만날 때마다 물어보면, 엄청 힘들고, 막상 책 읽을 시간 별로 없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거보다 더 동경하는 것은 언제나 몸을 쓰는 사람들 무용수, 운동선수, 이런 분들을 동경하는 것 같아요."

팬으로서 궁금한 점, 독자들이 궁금한 점을 두서없이 물었던 인터뷰가 끝났다. 돌아오는 길, 이슬아 작가는 사랑을 요리할 줄 아는 요리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사랑의 모습을 다른 양념과 다른 모습으로 버무려서 제공하는 요리사. 심지어 이번 신간의 제목은 <부지런한 사랑>이 아닌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 밭에서 갓 뜯어낸 싱싱한 채소에 상큼한 오리엔탈 드레싱을 얹어 채소 본연의 맛을 살린 샐러드 같다면, <부지런한 사랑>은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끈한 밥에 시원하고 아삭하게 무쳐낸 배추 겉절이를 얹어서 먹는 것만 같다.

그가 다음에는 사랑의 모습을 어떻게 요리해서 독자들에게 제공할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때도 기꺼이 그가 만든 요리를 즐기면서 먹을 테다. 

부지런한 사랑 -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

이슬아 (지은이),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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