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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하룻밤, 로망과 현실은 달랐다

[새둥지 자취생 일기 ⑤]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일이다

등록 2020.11.07 19:53수정 2020.11.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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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정누리


미국으로 유학 간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친구는 자취생이었고, 나는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였다. 그전까지 나는 호텔 혹은 게스트하우스 등만 이용했기에, 친구네 집에서 묵는 것은 처음이었다.

밤늦게까지 함께 맥주를 마시고, 포근한 잠옷을 입고 서로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다가 꿈나라로 떠나는 막연한 환상만 있었다. 그냥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했던 것처럼 하면 되리라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 도착했다.

짐 정리는 이쪽에서만, 한 사람이 밥을 지으면 한 사람은 설거지를, 식재료비는 반반, 나는 아침형이고 친구는 올빼미형이니까 서로의 수면 패턴은 존중해주기. 등등 집에 입성하기 전 가벼운 규칙을 정했다.

그저 친구 얼굴 보려고 온 나를 위해 친구는 여행 계획도 세세하게 짜주었다. 함께 장을 보고, 학교 구경도 가고,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 잠들었다. 역시 친구 집은 호텔과 비교할 수 없는 로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그 복잡 미묘하던 표정 
 

Unsplash ⓒ By Amith Nair on Unsplash

 
우리의 체력이 고갈되면서 갈등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행이 일주일 정도 지나자 피곤한 나머지 내 말 수는 점점 적어졌고, 친구는 연신 하품을 했다. 내일은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셔틀버스를 타야 하니, 나는 일찍 자자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는 내가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밤바다라도 한 번 더 보자고 했다. 결국 우리는 무리한 나머지 자정이 넘어서 집에 돌아왔고, 눈을 뜬 순간 시각은 셔틀버스 도착 10분 전이었다. 씻지도 않고 부랴부랴 픽업 장소까지 달려갔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내 생의 첫 펑크였다.

역시 어제 밤바다를 보지 않았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친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예약을 변경할 수 있어 오후로 다시 시간을 잡았다. 문제를 간신히 수습한 후 집에 돌아오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주방에 레토르트 죽이 있기에 하나 먹어도 되냐 물었다. 친구는 약간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라고 말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 정누리

 
간신히 스카이다이빙을 즐기고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가 먼저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녹초가 된 몸을 요자리에 던지려다 씻기 전에는 이부자리에 올라가지 않는 친구의 행동이 기억났다.

나는 머리만 이불 끝자락에 조심스레 얹고 몸통을 차가운 돌바닥에 누웠다. 그냥 호텔에 묵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돈을 지불하는 곳이 몸도 마음도 편할 것 같았다.

개운하게 샤워한 뒤 우리는 바깥에 있는 코인세탁실에 갔다.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밖에서 수다를 떨며 기다리기로 했다. 다리가 욱신거려 돌담에 앉으려 하자, 친구가 갑자기 짜증을 냈다. "개미 기어 다니는 곳에 잠옷 입고 앉으면 어떡해?" 일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빨래통 돌아가는 소리만 정적을 메웠다.

타지에서 홀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간다는 것 
 

미국에 도착해서 ⓒ 정누리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다 빨린 이불을 양쪽에서 잡고 굳은 표정으로 탈탈 털었다. 먼저 정적을 깬 건 나였다.

"일단 미안. 내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면 사과할게. 그런데 내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은 바로바로 얘기해줘. 난 여기 신세를 지는 사람이니까, 집주인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 너는 모처럼 여행 온 친구라서 참고 넘어가고, 나는 생활패턴이 다르니까 눈치만 보고. 그래서 서로 더 맘 상한 것 같아."

친구는, "아냐. 나도 미안해"라고 말했다. 사실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신경이 예민해졌다는 것, 나만 보고 온 손님인데 무조건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는 것, 혼자 해외에 나와서 공부하려니 심적으로도 고충이 많았다는 것 등을 터놓았다.

게다가 내가 문제의 날 먹었던 레토르트 죽은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 식량이었는데, 먹지 말라고 하기 그래서 말을 못 했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미안했다. 한국에서나 흔한 거지, 여기서는 아니란 걸 몰랐다. 그제야 이 공간에 묻은 그의 치열한 타국 생활이 눈에 보였다. 마냥 유학은 멋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같은 교복을 입고 생활했던 내 친구는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있었다.
  

도시락 ⓒ 정누리

 
자취를 시작하니 가끔 그때가 떠오른다. 본가와 딱히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닌데, 한 살림을 꾸린다는 것은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었다. 손님이라도 온다 치면 대청소는 물론이었고, 간식이라도 내어줘야 했다. 누구 한 명 자고 간다 하면 침구는 있는지, 자리가 넉넉하지 않은데 어디다 이부자리를 펴줘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하루도 이렇게 힘든데, 장장 2주라는 시간 동안 나를 먹여주고 재워준 친구는 슈퍼맨이 아닐까. 가끔 외부 손님이 와서 손을 안 씻고 이것저것 만져보거나, 맘대로 냉장고를 열면 조심스레 양해의 말을 꺼낸다. 그럼 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깜빡했거나, 몰랐다고 사과한다. 그때의 나와 같은 표정을 하며.

세상에는 직접 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운전이 그렇고, 직장 동료의 업무가 그렇고, 부모님이 견뎌온 삶의 무게가 그렇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도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여줬던 친구가 꼭 우리 집에 놀러 와 주기를.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나눌 수 있기를. 잘 익은 아보카도 위에 블루베리를 올리고 까르르 웃었던 그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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