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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당론 어렵다"는 민주당, 왜?

[이슈] 정의당 회동 제안에 이낙연 측 "시기상조" 거부... "노동정책 보수화" 당내 비판론 대두

등록 2020.11.12 18:47수정 2020.11.1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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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정의당과 국민의힘의 공조로 떠오르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해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2일 복수의 당 지도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동계가 요구하는 '당론 채택'까지 이어지긴 어려운 분위기라고 한다. 김태년 원내대표와 한정애 정책위의장 등 실무진 쪽에서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는 것. 이낙연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이날 정의당이 제안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3당 대표 회동'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 지도부 내부에서도 "당대표가 직접 강조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공정경제 3%룰 완화 움직임과 함께 민주당이 자꾸 진보 의제에서 후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지나치게 기업 눈치 보는 경향 있다"

복수의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내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식 안건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관련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다만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당론 채택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11일)이라고 발언한 것과 달리, 당론 채택은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 A씨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두고 당내 이견이 있는 상황"이라며 "내일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의견 조율 과정을 거치지 않겠나"라고 짚었다. 그는 "이낙연 대표가 초기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언급을 하는 등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의지가 강했지만, 원내대표 쪽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이 지나치게 기업 눈치를 보거나 보수화되는 경향에 대해선 문제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이낙연 대표는 지난 9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해마다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희생된다, 그런 불행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라며 "생명안전기본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그 시작이다, 법안이 빨리 처리되도록 소관 상임위가 노력해달라"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에 포함해서 논의할 수 있겠다"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원내나 정책위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새로 제정하는 대신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경영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도로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 B씨도 "현재로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당론 채택이 어려워 보인다"라며 "당 정책위원회가 고용노동부와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주고 받고 있긴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따로 제정하는 것과는 처벌 강도 등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지도부에 속한 C씨는 "기업들이 너무 가혹하다고 호소하는 걸 아예 고려하지 않을 순 없다"면서도 "정의당과 국민의힘이 호응하는 상황 속에서 민주당이 대세를 거스르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낙연 측 "3당 대표 회동? 당 입장 정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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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지난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료를 검토하기 위해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이낙연 대표 측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당론 채택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 당의 입장이 명확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라며 "당론으로 정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제안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 3당 대표 회동에 대해서도 "당내 입장 조율이 먼저"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는 "현재 당내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박주민·우원식 의원 법안) 공동발의 서명을 받는 중이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아직 발의가 안 된 상태"라며 "개별 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갈지, 기존 법(산안법) 개정으로 갈지 정리가 먼저 돼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망 사고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자에게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다. 앞서 정의당은 지난 6월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사업주와 관련 공무원에게 3년 이상 징역 등 형사처벌, 손해액의 3~10배에 해당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지지부진하던 국회 논의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정의당을 만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급물살을 탔다.

압박을 느낀 민주당도 일단 행동에 나서긴 했다. 박주민·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11일 발의하겠다고 예고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4년 유예기간을 두긴 했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사업주에게 2년 이상 징역·5억 원 이상의 벌금형 등 형사처벌과 손해액의 5배 이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지우게 했다는 점에서 정의당 안과 비슷하다.

전태일 50주기에 민주당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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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전태일 3법' 입법을 촉구하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민주당이 정국의 이슈로 떠오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돌아간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노동계가 올해 전태일 50주기에 맞춰 준비한 '전태일 3법'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핵심으로 들어가 있다(나머지는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개정안). 노동계에선 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집권 여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실제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론 채택에 부정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12일 발표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시민 여론조사에선 찬성이 58.2%, 반대가 27.5%로 긍정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tbs가 의뢰해 리얼미터가 11일에 조사,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지난 9월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올린 국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청원은 10만 명 서명을 넘겼다.

[관련 기사]
국민 58.2% '중대재해 기업 처벌해야', 민주당 움직일까 http://omn.kr/1qg2a
국민의힘 + 정의당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사람 나고 돈 났다" http://omn.kr/1qebc
정의당+국민의힘 압박 모양새... 이낙연 "네, 환영합니다" http://omn.kr/1qegh
민주당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박수는 받지만 결과는? http://omn.kr/1qf07
김용균 어머니가 올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청원, 10만 돌파 http://omn.kr/1ozxk
#전태일 #이낙연 #민주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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