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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전태일'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기본소득은 노동해방 세상 향한 디딤돌... 부당한 지시 거부할 수 있는 버팀목 만들어줘야

등록 2020.11.14 15:51수정 2020.11.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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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와 시민들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 인간답게 살고 싶다-전태일들의 행진’ 결의대회를 열어 비정규직 철폐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노조법 2조 개정 등을 요구했다. ⓒ 유성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50년 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열악한 위생환경에서 하루 16시간 이상의 과중한 노동에도 박봉을 받으며 노동 착취에 시달리던 10대 초중반 여성 봉제공들을 위해 정부와 회사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청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오늘 우리 사회가 50년 전보다 더 나은 근로 여건을 누리고 있다면 전태일 열사의 희생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전태일이 노동 착취를 당하고 죽어가고 있다. 하루 14시간의 근무를 하면서도 월 200만 원도 받지 못하는 37년 경력의 미싱사, 플랫폼 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생태계가 만들어낸 법의 사각지대에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배달원, 과중한 노동강도의 압박으로 과로사하는 택배 노동자, 스스로를 현대판 노예라 자조하는 아파트 경비원 등 과연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노동 착취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체력이 소진되고 몸이 망가질 정도로 사회 전체의 부를 늘리는 노동을 하면서도 월 2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사회 전체의 부가 늘어나는 데 어떤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는 이들이 있다.

서울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3년 만에 3억 이상의 시세차익을 얻는 사람들과 당첨만 되면 수억의 시세차익이 발생하는 로또 청약 경쟁률이 수백 대 일에 달한다는 이야기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노동 착취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우리 시대 전태일에게 기본소득을 준다면
  
오늘날 수많은 전태일이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 등 법의 보호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없애 노동 착취와 노동자 사망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땀 흘려 일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노동자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안전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강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도입과 같은 법적 규제 강화를 넘어 노동이 자본의 부당한 지시와 요청을 거부할 힘이 있어야 한다.

몸이 축날 정도로 과도한 업무를 견디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성희롱이 만연한 상황에서도 모욕감과 수치심을 견디며 꾸역꾸역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도, 부당한 지시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잘리면 어디도 갈 수 없어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넘어 밥벌이의 비참함이다.
 

모두의 자유를 위한 공동재산, 무조건 기본소득 전태일 50주기 공동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 2 ⓒ 리얼부커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전태일들에게 생계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이 필요하다. 아무 조건 없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자본의 부당한 지시와 억압에 대해 노동자가 거부할 수 있게 만드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나 말고도 다른 수많은 사람이 이 자리라도 얻기 위해 대기하고 있고, 여길 나가도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회사의 부당한 지시와 노동 착취를 용인하며 꾸역꾸역 버틸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이 생계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해준다면 회사가 법이 정한 테두리를 넘어 부당하고 불의한 지시를 내릴 때 '아니오'라고 거부할 힘이 노동자에게 생긴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쓰여 있지만, 우리 시대 전태일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국민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포함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밥벌이의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노동해방 세상을 향한 디딤돌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토지보유세만한 재원이 없다. 토지 가치가 상승하는 이유는 개인의 노력이 아닌 정부의 교통·교육·환경 등 인프라 구축, 땅의 용도변경, 인구집중으로 인한 상업의 발달, 천연자원의 발견 등 땅의 입지 조건과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정부의 투자와 결정에 기인한다.

사회 전체의 노력분을 기본소득으로 모두에게 고루 나누어주는 것은 정당할 뿐 아니라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천시받고 불로소득이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천민자본주의의 흐름을 전환시킬 수 있다.

대한민국 토지불로소득의 규모가 적지 않다. 부동산과 불평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발생한 부동산 불로소득이 연평균 300조 원이 넘고 GDP의 20%를 상회한다. 한해 정부의 총예산과 비슷한 수준의 막대한 규모의 불로소득이다.
 

대한민국 부동산 불로소득 추산 남기업·전강수·강남훈·이진수. 2017. 부동산과 불평등 그리고 국토보유세 '사회경제평론' 제54호에서 인용 ⓒ 사회경제평론

  
사회 전체가 함께 높인 토지 가치를 토지보유세로 환수하여 모든 국민들에게 고루 나누어준다면 노동자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는 요구에 순응하며 비참한 노동 현장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 기본소득은 불합리한 상사의 지시를 거부할 용기를 북돋아 주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기업에 계속 머물지 않고 자기계발과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백 보 양보해 50년 전에는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이 성장하기 위해 저임금노동과 과중한 노동강도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해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GDP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위험한 노동환경과 장시간 중노동에도 월 200만 원을 벌기 힘든 저임금 노동자들의 과로사, 자살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오늘의 현실은 이해하기도, 납득하기도 쉽지 않다.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부를 모두가 고루 나누는 기본소득은 삶의 막다른 골목으로 밀려나고 있는 오늘날의 수많은 전태일의 안전판이자 새로운 삶으로 도약할 수 있는 도약판이자 50년 전 전태일이 꿈꾸었던 노동 해방 세상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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