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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엎어져 자는 문제아, 학교서 쫓아내야 할까요?

[아이들은 나의 스승 213] 동료 교사들에게 띄우는 편지

등록 2020.11.23 07:36수정 2020.11.23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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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교과 수업만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 unsplash

  
여기저기서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난을 쏟아낸다. 20여 년 전 초임 시절에도 듣던 이야기라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해가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것만 같다. 입시 제도의 불신 등과 맞물려 공교육에 대한 조롱은 이제 온 국민의 '레저 스포츠'가 되었다.

학교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처음엔 사교육에서 퍼트린 악의적인 헛소문이라 여겨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공교육은 입시에 특화된 사교육을 이길 수 없었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선 잠을 자는' 아이들이 시나브로 늘어났다.

온존한 학벌 구조 속에서 학교가 사교육의 뒤꽁무니만 좇는 신세라고는 하나, 그것만으로 섣불리 공교육 붕괴 운운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학원과 인터넷 강의로는 대체할 수 없는 학교만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교과 수업만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반항아 민규
 
민규(가명)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종일 겉도는 아이다.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다 보니, 수업 시간마다 딴청을 피우거나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흔들어 깨우기라도 할라치면, 귀찮다는 듯 그냥 내버려달라고 언성을 높인 뒤 바로 엎드려버린다.

하긴 수업 시간에 졸거나 자는 등 무기력한 아이는 많다. 다만, 대개 깨우면 얼마 못 가 다시 쓰러질지언정 일어나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민규는 반항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이 다르다. 교사든, 아이들이든, 그냥 못 본 척하는 것이 수업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학급 내 다른 친구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수업 시간에 잠자는 걸 방치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따금 반항적인 행동에도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교육적으로 잘못된 대처 방식이다. 때론 일벌백계가 가장 좋은 교육일 수 있다.

형평성과 일관성 면에서도 그렇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아이에 따라 다른 처벌이 내려진다면 더는 교육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생활지도와 관련해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에 금이 가면, 수업은 물론 학교 교육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을 가져오게 된다.

그렇다고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위험하다. 교육에 있어 신상필벌은, 형평성과 일관성을 염두에 두되, 아이의 성격과 습관, 가정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섣불렀다간 자칫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다. 교사에게 생활지도란 관용과 일벌백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을 타야 하는 '종합 예술'일지도 모른다. 그러자면 수시로 아이들과 상담을 하며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정성을 들여야 한다. 이야말로 교육의 본령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교사와 아이가 서로 마주 앉아 있어도, 전혀 접점이 찾아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저 세대 차이라며 스스로 위안 삼지만, 십인십색 아이들의 말에 공감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교칙에 적혀 있는 대로 하는 게 편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결국, 민규의 모난 행동에 대해 교사들끼리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담임 교사는 그동안의 상담 내용을 소개하며 마음의 상처를 시급히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와 교사 등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이 커 담임 교사와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그를 보듬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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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가 그 증거다. 전학 조처와 같은 강력한 처벌 위주의 생활지도는 결과적으로 그의 상태를 점점 더 악화시켰다. ⓒ ㈜안다미로

 
그는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등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그때마다 전학 조처가 내려졌다고 한다. 규정상 가해 사실이 명백하고 피해자가 요구하면 가해자를 전학 보낼 수 있다. 그러잖아도 사춘기인데 내쫓기듯 옮긴 학교에서의 생활이 원만했을 리 없다.

부모도, 교사도, '죄인'인 그를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다.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책망하기 급급했고, 교사는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던 듯하다. 민규는 시나브로 자제력을 잃어갔고,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은 이따금 분노와 무기력이라는 상반된 감정으로 표출됐다.

수업 시간 깨우는 교사를 향해 토끼 눈을 뜨는 게 분노의 표현이라면, 일과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건 무기력함의 방증이다. 그는 지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다. 부모의 바람 역시 어떻게든 고등학교만 졸업하라는 게 전부다.

담임 교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도위원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규로 인해 교실 내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진다는 이유에서다. 학년 초에 견줘 학급의 교과별 평균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덩달아 결석자도 늘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급기야 교권 침해라는 이야기까지 제기됐다. 이유야 어떻든, 수업하는 교사에게 대들 듯 행동하는 건 피교육자로서 용서할 수 없는 행태라는 것이다. 이를 방치했다간 다른 선량한 아이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일벌백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드러난 모습만 놓고 보면, 교권 침해가 맞다. 과연 그에게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할까. 처벌 규정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나 선도위원회의 처벌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교내봉사나 사회봉사, 출석 정지나 전학 등의 조처를 내릴 수 있다.

선도위원회나 교권보호위원회가 결정한 처벌을 받고 나면 민규는 개과천선하게 될까. 아닐 것이다. 처벌은 그를 위한 게 아니라, 학급 내 다른 친구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미 민규는 중학교 때부터 온갖 처벌로 단련된 몸이다.

가해자인 그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영원히 학교에서 내쫓을 게 아니라면, 교육을 통해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게 학교의 의무이자 교사의 숙명이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우리가 끝내 보듬어야 할 아이들일진대, 가해자라고 내팽개쳐서는 곤란하다.

학교폭력이든, 교권 침해든, 가해자에 대한 일률적인 전학 조처는 '폭탄 돌리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 환경이 달라지면 습관과 행동이 변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말짱 흰소리다. 전학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강제 격리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교육적 효과는 없다.

민규가 그 증거다. 전학 조처와 같은 강력한 처벌 위주의 생활지도는 결과적으로 그의 상태를 점점 더 악화시켰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라면 모를까, 어떻게든 가정과 학교가 머리를 맞대고 더 나은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문제아' 모두 내친다면, 학교는 왜 필요한 걸까
 

우선, 가정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가 학교폭력에 연루되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가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의 욕망을 고스란히 짊어졌거나, 반대로 방치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의 공통적인 후유증이다.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을 학교에서 교사가 대신할 수는 없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교사가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하는 건, 그들에게는 학교가 마지막 '기댈 언덕'이기 때문이다. 되바라진 행동에 발끈하기보다, 더한 모욕에도 아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교사가 많아져야 한다.

무엇보다 교실 내에서 '문제아'만 도려내면 해결될 거라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서둘러 상자 안의 썩은 사과를 골라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교실을 사과 상자에 빗대는 건 애초 잘못된 접근이다. 아이들은 가만히 그 자리에서 함께 썩고야 마는 정물 사과가 아니다.

학급 내 다른 친구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아'라는 낙인은 교사보다 또래 아이들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언제부턴가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든, 친구들을 괴롭히는 드센 아이든, 소 닭 보듯 하며 서로 어울려 지내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학교는 아이들을 올곧은 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사회화 기관이다. 다양한 성향의 아이들이 뒤섞여 지내는 가운데 벌어지는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훈련을 하는 곳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교칙을 꺼내 들고 처벌로 일관하는 건 갈등 해결의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일이다.

마구 써내려 가다보니, 교사로서 교사를 책망하는 '제 살 뜯기'가 됐다. 아이들의 성정이 날로 흉포화하는 강퍅한 학교 현실에 눈감은 천진난만한 주장이라는 날 선 지적이 나올 줄 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문제아'들을 죄다 도려내고 나면 학교는 존재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된다는 점이다. 교사는 그들을 위한 직업이다.

해가 갈수록 통제 불능의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공교육 붕괴의 지표이자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것이 온전히 학교 책임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외부로 탓을 돌린다고 해서 나아질 건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흡사 담벼락에 대고 욕설을 내뱉는 꼴이다.

이걸 말하려고 에둘러 왔다. '문제아'는 없다. '문제 가정'과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 교사인 우리부터 학교생활을 힘겨워하는 그들에게 '희망의 끈'이 되어주자. 모두가 교사를 향해 무능하다고, 철밥통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끝까지 그들을 보듬어주며 그래도 학교만이 희망이라는 걸 보여주자.

민규는 오늘도 자퇴하겠다면서 강짜를 부린다. 그가 걸핏하면 자퇴를 입에 올리는 건, 그만큼 주변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있다는 방증이다. 그를 깨우다 봉변을 당했지만, 언젠가는 그 스스로 자신의 모난 행동을 성찰할 때가 오리라 믿는다. 모름지기 교육은 기다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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