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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경쟁, 졸업도 없는 학교... '거꾸로 캠퍼스'의 실체

비인가 실험학교 '거꾸로 캠퍼스'를 다녀오다

등록 2020.11.18 14:14수정 2020.11.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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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면서 노는 학교> 속 초등학교는 제목처럼 쉬든지 놀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학교다. 수영장, 등산로, 축구장, 도서관, 만화방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으로 가득하다. ⓒ pixabay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독후감 숙제가 있었다. 교장 선생님인 작은 아빠가 우리 집에 오신 날, 마침 책을 주고 가셨다. <쉬면서 노는 학교> (김자환 지음). 제목부터 맘에 쏙 들어 단숨에 읽었다.

단종되어 구할 수 없는 진귀한 책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주인공 은구는 닦달하는 엄마로 인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손자를 사랑하는 부자 할아버지가 초등학교를 세운다. 제목처럼 쉬든지 놀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학교. 매점은 공짜, 오락실, 수영장, 등산로, 축구장, 도서관, 만화방, 기숙사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으로 가득하다. 정해진 시간표 없이 자기가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다.

실컷 놀다가 정 공부하고 싶으면 일대일 과외처럼 자기의 수준에 맞는 공부를 요구할 수 있고, 배우고 싶은 게 있는 아이들은 팀을 이루어 수업에 참여한다. 시험은 없다. 용돈을 줘서 돈도 마음대로 써보고 저축도 한다. 오로지 자율성을 맡긴 학교에서 은구와 친구들이 성장하는 내용이다. 은구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엄마로 인해 꿈이 꺾였다가 계속 놀다 지쳐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배우다 그림을 다시 그린다는 이야기다.

'이런 학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스라이 설레었다. 어린이 소설다운 허구 같은 이야기였다. 잔소리, 경쟁, 숙제가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한다는 자체가 비현실적인 생경한 이야기였다. 난 그런 학교를 꿈꾸며 독후감을 썼다. 그런데 나와 다른 명문 초등학교 다니는 친구가 금방 베껴갔는데, 한참 뒤에 소식을 들었다. 그 독후감으로 친구가 최우수상 탔다는 사실까지. 내가 쓴 원고지는 학교 서랍 어딘가에 박혀 있다 흔적도 없이 불타버렸을 텐데. 당시 나는 가질 수 없는 꿈의 학교, 인정받고 싶은 상장, 도둑맞는 독후감 등 그해 여름방학을 잊을 수 없었다.

거꾸로 캠퍼스
 

'거꾸로 캠퍼스'는 아이가 스스로 배워가려는 의지와 친구들과 협력할 수 있는 마음, 입학 전 수업을 참관하면서 자신이 학교와 맞는지의 과정을 거친다. 오전에는 기본적인 수업을 듣는다.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토론과 모둠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 PIXABAY

 
최근 학부모 독서동아리에서 '거꾸로 캠퍼스'를 방문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사단법인교육실험실21이 운영하는 대안교육기관으로, 보통 17세부터 입학하는 비인가 실험학교이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별칭으로 불리는데, 이날은 '에코'라고 불리는 교장 선생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2017년 학생 12명으로 시작하여 4년 만에 9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투명한 폴더 유리문에 비치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얘기를 나누었다. 노트북으로 검색하고, 웃고, 토론했다. 웅성웅성하지만 서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에코는 학교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무엇을 좋아하니?"로 시작되는 면접은 아이가 스스로 배워가려는 의지와 친구들과 협력할 수 있는 마음, 입학 전 수업을 참관하면서 자신이 학교와 맞는지의 과정을 거친다. 오전에는 기본적인 수업을 듣는다.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토론과 모둠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팀별로 사회적으로 문제의식이 되는 주제를 고른다. 아이들끼리 학습 계획서를 짠다.

학기별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부족한 지식이 있다면 채워가고, 모르면 아이들끼리 알려주고,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역할을 분담하고, 전문가를 초빙하고, 논문을 찾아보는 등 배움의 주체가 된다. 실패도 하다가 진학, 취업과 창업 등 스스로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면 시험, 경쟁, 졸업 없이 엑시트(exit)를 한다.

쉽게 말해 정해지고 차려진 밥상을 내가 꾸역꾸역 떠먹느냐 아니면 무엇을 먹을지 함께 고민하고, 장을 보고, 밥상을 차리기 위해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나누고, 같이 먹어보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발표한다. 그러기 위해 아이들은 기본적인 지식,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주제의식과 방향, 발표할 수 있는 코딩 기술, 협력 등 아이들이 주체자가 되어 배움을 개척해나간다.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책 내용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아이들이 모여서 자신이 원하고, 배우고 싶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다. 에코의 설명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시험, 성적으로 힘겨웠던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 쓰라렸고, 이상이 현실화되는 세상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울렁거렸다. 이제는 내가 기성세대라는 게 실감이 났다.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변화하고 있는 현실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덮치는 기분이 들었다.
   
거꾸로 캠퍼스에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례하지도, 주눅이 든 아이도 없다. 씩씩하고, 차분해 보였다. 그중 유기동물 보호소에 드디어 간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우연히 보았다. 같은 시간에 학교에서 영어 단어, 수학 문제 하나라도 풀고 있는 학생들과 대조적이다.

미래에는 인구가 줄기 때문에 조직에서 7~8명이 하던 일을 3~4명이 해결할 수 있어야 사회가 지탱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잠재력을 키워서 진짜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알다시피 방대한 지식을 가진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성과 통합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성공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삶을 위한 공부
  

아이가 날 이길 날이 머지않았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 PIXABAY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성공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삶을 위한 공부. 몇 시간의 방문으로 거꾸로 캠퍼스를 이해할 수 없지만, 교육의 지향점은 수긍하게 되었다. 그런 시스템이라면 나조차 입학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암기 공부가 아닌 사회를 이해하고 연구하고 싶었다.

최근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삶을 위한 수업>(마르쿠스 베른센 지음 / 오연호 편역)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김누리 지음)를 읽으면서 인간 중심이 되는 교육을 다시 꿈꾸게 되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중시되는 교육. 거꾸로 캠퍼스처럼 내가 주체가 되는 배움. 경쟁이 아닌 협력이 되는 세상.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로 살아가기 위해서 교육이 달라져야 했고, 달라지고 있었다.

난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착하게 살지 마. 너답게 살아. 네가 선택해. 엄마를 꼭 이겨 먹어. 엄마가 쉽게 지진 않을 거야. 그런데 꼭 이겼으면 좋겠어." 수동적으로 따라 사는 게 아니라 나답게 사는 인생. 내가 가진 언어로 말할 수 있는 표현력. 지역사회의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세분화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아이가 날 이길 날이 머지않았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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