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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이모는 왜 '미아리 텍사스'에 정착했나

[인터뷰] 이미선 약사 "온라인 앵벌이?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등록 2020.12.01 12:21수정 2020.12.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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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텍사스'로 불리는 하월곡동 88번지. 청소년 출입 제한 팻말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돈다. '미아리 텍사스'라는 이름은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작은 동네로 성매매 업소가 밀집한 성매매 집결지에 붙여진 이름이다.

화장하는 여성들이 있는 낡은 건물들을 지나쳐 걷다 보면 한 약국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 약국엔 2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약사가 있다. 건강한 약국을 운영하는 이미선 약사다. 

따뜻한 약사 이모
      

성매매 집결지 골목에서 '건강한 약국'을 운영하는 이미선 약사 ⓒ 안가영

  
미아리 텍사스촌은 과거 청량리역 일대와 함께 강북에 있는 대표적인 윤락가였으나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으로 차츰 쇠락했다. 올해 3월, 환경영향평가 재심의가 통과로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현재는 투자 유망지로 조명받고 있다. 그럼에도 하월곡동 골목엔 여전히 영업 중인 성매매 업소가 여럿 있다.
  
세월이 흘러감과 동시에 많은 이가 떠났지만, 이미선씨는 25년 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6년 때부터 그 골목의 유일한 약사로 그들과 시간을 보내온 그는 이곳에서 '약사 이모'로 불린다. 성매매 여성, 골목의 주민을 포함해 하월곡동 담당 택배 기사까지 모두가 그를 '이모'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얼마나 동네의 친숙하고 따뜻한 존재인지를 증명해 준다.
   
이미선씨는 바쁘다. 약국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따 무료 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직업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하는 그들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힘드니까 와서 자기 얘기 많이 하고 가죠. 이야기를 쭉 들어주고 나에게 있어서 최선의 조언을 해줘요."
       
또 약국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한쪽엔 '건강한 문고'라는 팻말과 함께 자리 잡은 서재가 눈에 들어온다. 동네 사람들의 작은 도서관인 이곳은 전부 이미선씨가 직접 읽고 산 책들이 쌓여있다. 실제 도서관처럼 책 한 권 한 권 번호가 적혀있었다. 어둡고 아픈 역사를 가진 마을에 '건강한'이라는 투박하고도 따뜻한 수식어를 둔 약국, 상담센터, 도서관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여러 활동으로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고 있다. 추석, 설날과 같은 명절부터 크고 작은 행사 때 성매매 여성을 비롯한 노숙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후원금을 모으고 후원 자리를 연다. 

이씨는 그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으는 행동을 '온라인 앵벌이'라고 칭했다.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암묵적 동의를 하면서 후원금이나 후원 물품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께 도움을 받는 거죠. 이름하여 온라인 앵벌이."


"부끄럽지 않다" 그가 당당한 이유
   

'건강한 상담센터' 팻말이 붙여져 있는 하월곡동 88번지의 <건강한 약국> ⓒ 안가영

 
지난 10월 추석, 이씨는 '온라인 앵벌이'로 250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그 후원금으로 취약계층 200인을 위한 양말, 송편, 한과, 음료수, 마스크 등을 준비했다.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가족조차 없는 이들은 이씨 덕분에 따뜻한 명절을 보냈다. 그는 명절뿐만 아니라 시기가 맞을 때마다 틈틈이 후원금을 모으고 그들을 위한 자리를 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그의 인생관은 '평등'이다.

"가난한 자를 티끌에서 건지고 궁핍한 자를 두엄더미에서 들어 올리는 것. 그것이 주님의 나라고, 그것이 곧 평등의 나라예요. 그리고 나는 그 평등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죠.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하는 거예요.

누가 나한테 그랬어요. 앵벌이(후원금을 모으는 것) 하는 게 쪽팔리지 않냐고. 15년 뒤면 땅으로 묻힐 몸인데 그게 무슨 쪽팔릴 일인가요? 내가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다 그 사람들(취약계층) 돕자고 하는 건데. 나는 하나도 안 쪽팔려요"


이미선씨는 일생의 절반 이상을 도우며 살아왔음에도 아직도 아픈 이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고 답했다. 점차 사라져가는 이 동네에서 '약사 이모'로 25년 넘게 약을 지어준 그는 약사라는 직업을 넘어 아픈 이들을 마음으로 안아주고 있었다.

다들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성북구 하월곡동의 작은 동네. 그곳에 자리 잡은 한 약국의 약사 이야기. 그는 오늘도 조용히 약국 문을 열고 아픈 이에게 마음을 다해 약을 지어주고 있다. 

"내가 기운이 있는 한 나는 계속 온라인 앵벌이를 할 것이고, 나 하나 쪽팔리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이거보다 더한 앵벌이도 할 수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건강한약국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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