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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가 비싸도 보는 건 싸야죠", 노회찬의 '문화'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⑦-2 :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등록 2020.12.28 06:51수정 2020.12.2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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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을 선보인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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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첼로와 악보. ⓒ 노회찬재단

 
[지난 기사] 감옥 속 되레 자유로웠던 노회찬, 어떻게? 에서 이어집니다

'문화인 노회찬'의 '문화' 엿보기  

문화란 뭘까? 문화라는 단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문화는 맥락에 따라 아주 다양한 의미를 갖고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창조한 사회적, 역사적 산물을 두고 인간들이 벌이는 권력 다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주로 정신적이거나 지적이고 예술적인 산물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신문의 문화면은 문학, 예술, 종교, 학문, 교육, 패션, 방송, 영화 등의 주제로 구성되며, 이는 신문의 다른 면을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영역과 구분된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범 김구는 문화의 힘을 강조한 사람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김구는 '나의 소원'에서 우리나라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소망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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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힘. ⓒ 캘리그래퍼 강병인

 
노회찬은 문화의 힘을 강조한 백범 김구 선생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배지현, '[인터뷰]'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를 만나다', Story of Seoul, 2016). 

"사람이 행복하려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문화라고 생각해요. 문화는 여유 있는 사람만이 향유하는 사치가 아니에요.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려야죠." 
"문화적 가치로 고급과 저급을 나누는 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모나리자 같은 그림이 비싸도 보는 건 저렴해야죠. 비싸다고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아니 마약은 얼마나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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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 서거 64주기.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치며 백범기념관 김구 선생의 영정 앞에 선 노회찬(2013.6.26). ⓒ 노회찬 트위터 갈무리

 
노회찬과 음악 그리고 첼로

'첼로를 연주한 정치인' '영화를 사랑한 정치인' 노회찬의 문화적 감수성은 문학과 예술, 음악을 사랑하고 즐겼던 부모님의 영향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쌓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와 문학을 사랑한 도서관 사서 출신의 아버지와 교사이던 어머니는 함경도 출신으로 전쟁 통에 월남한 피난민이었다. 부산 초량동 산동네에 다섯 가족이 세들어 사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오페라 공연이 있으면 빼먹지 않고 갈 정도로 예술을 사랑했다고 한다. 

노회찬은 "그때(중학교 시절) 음악에 눈을 뜨게 해준 분이 아버지였다"며 베토벤의 '운명'을 100번 이상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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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첼로와 악보. ⓒ 노회찬재단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불렀다. 그때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머리를 빡빡 깎고, 교복을 입고, 그러면 어린애에서 준성인이 되는 걸로 인정받았다. 아버지가 딱 오라고 하더니 '이제 너도 중학생이 됐으니 이런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들은 게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었다. 저는 처음에 그거 듣고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꾸 들으니까 좋더라. 제가 그것을 100번 이상 들었다. 토스카니니라는 이태리 출신으로 저명한 미국의 지휘자가 있는데, 그에 관해 30분간 강연을 들어야 했다.

베토벤에 관해서는 1시간. NBC 심포니라고 꽤 유명한 교향악단과 함께 연주한 거였는데 제가 그것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나중에 카라얀 등 딴 사람이 지휘한 베토벤의 '운명'은 어색해서 잘 안 들렸다. 지휘자에 따라서 음악이 조금씩 다르거든. 그때 음악에 눈을 뜨게 해준 분이 아버지였다."


'악기 하나는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부모의 권유 속에 중학교 때 첼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노회찬은 솔직하게 말한다. 

"제가 초등학교 입시 마지막 세대여서 6학년 12월 달에 부산중학교에 입학을 했어요. 3월 달까지는 할 게 없잖아요. 놀아야 되는데. 어머니가 원칙이 있었어요.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악기는 하게 한다.

이래가지고 악기 하나씩은 하게 된 건데. 누나가 피아노. 넌 뭐할래? 그래서 누나가 피아노 하니까, 바이올린이나 첼로 중에 하나 골라라. 해서 보니까 바이올린은 작고 첼로는 크잖아. 그때 나는 그걸 기구로 봤으니까. 작은 것은 다루기 힘들 거다 생각하고, 큰 거는 다루기 쉬울 거다. 그래서 첼로 하겠다고 그랬지." (김어준, '회찬 씨, 농담도 잘하셔',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24쪽).


훗날 첼로 선택에 대해 노회찬의 말이 살짝 바뀐다. 

"음악전문가들이 얘기할 때 첼로는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가깝다고 합니다. 바이올린보다 몇 옥타브 낮죠. 인간의 말할 때 높낮이와 비슷해요. 음악 좀 듣는 사람은 첼로를 좋아하죠. 우리 드라마에 보면 첼로가 바이올린보다 더 많이 나옵니다. 바이올린은 굉장히 치열하다면 첼로는 울림이 있고 분위기 있게 다가서니까."

이렇게 시작한 첼로로 노회찬은 이화여고 개교기념일 날 초대돼 유관순기념관 강당에서 출연료를 받고 독주를 하기도 했다. 이화여고 개교기념일이 5월 30일이니까 아마도 1975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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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를 연주하는 고등학생 노회찬. ⓒ 노회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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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화' 악보 원본. ⓒ 노회찬재단

 
"고2 때 (경기고등학교) 개교기념일 날(1974.10.3.) 연주했죠. 무대 위에서. 그게 소문나니까 정신여고, 이화여고 개교기념일 때."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 강당 가서 또 연주하고. 연주하고 나니까 3천원 받았나? 옆에 이딸리아노인가 하는 음식점이 있었어요. 교문 옆에. 저녁 때 대접받고. 최고의 그거였지. 최고의." (김어준, '회찬 씨, 농담도 잘하셔',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29-32쪽).

노회찬이 미당 서정주의 시('머리에 석남꽃을 꼽고')에 곡을 입힌 '石南花(석남화)'라는 노래를 작곡한 것도 바로 이때다(1974.8.1.). 

2018년 7월 26일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는 노회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의 곡. '솔베이지의 노래'. 서글픈 멜로디와 애잔한 가사로 시대를 넘어선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도 이 곡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던 정치인. 지난 2005년, 그가 대중의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도 바로 이것이었으니까요."

2005년 그 날에 대해 노회찬의 미공개 '난중일기'(2005.5.1.)는 이렇게 적고 있다.

"부산한 아침이었다. KBS1 '아침마당'팀, KBS2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팀, SBS '임성훈의 세븐일레븐'팀이 1시간 간격으로 집을 방문하여 좁은 방안을 휘젓고 돌아갔다. 메이데이 집회 참석차 출발해야 할 시간인데 '임성훈의 세븐일레븐'팀은 사전 예고도 전혀 없이 첼로를 들고 나타났다. 강제로 켜는 첼로. 아우슈비츠에서도 없던 일이다. 망설이다 활을 잡았다. 20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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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6일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 화면. ⓒ jtbc 갈무리

 
혁명가를 꿈꿨던 시절에 대해 훗날 노회찬과 김어준은 이런 대화도 나눈다(김어준, '회찬 씨, 농담도 잘 하셔', <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2010, 32쪽.

김어준 : "아니, 대표님 경력을 봐서 누가 부드럽게 살았다고 하겠어요? 저 사람은 틀림없이 음악도 모르고 오페라도 모르고 문화적 소양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기 십상이죠."

노회찬 : "과거에 '러시아 혁명사' 같은 거 읽으면서 굉장히 감동했던 건 뭐냐 하면... '이스끄라'라고 혁명가들이 만든 신문 있잖아요? 편집진이 당시 핵심 혁명가들이었는데, 서술한 내용을 보면 문학과 예술에 대한 조예가 상당히 깊었어요. 사실 봉건시대 이전의 교양인은 귀족이었죠. 그런데 봉건시대 이후의 교양인은 혁명가였어요. 문학, 과학, 예술, 철학, 이런 것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풍부했고, 그런 것들이 혁명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런 걸 굉장히 중시해야겠다. 혁명가가 되려고 음악 좋아한 건 아니지만."

문화인 노회찬의 꿈은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간다. 그것은 '샹제 라 비'(Changer la vie, 삶을 변화시키자)를 선거 구호로 내건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의 공약이기도 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재임 시절 수많은 치적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은 문화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2010년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 공약집 '노회찬의 약속'에는 "모여라, 천만인 오케스트라"라는 제목 아래 문화예술정책의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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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이 공약집 <노회찬의 약속>에서 선보인 '모여라, 천만인 오케스트라'라는 문화예술정책 내용. ⓒ 진보신당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서울, 그래서 천만인이 제각각의 삶으로 위풍당당해지는 서울, 그 청사진'의 하나로 노회찬은 이런 내용을 약속한다. 

"우선 지금처럼 시설 중심의 예술가 지원정책에서 '생활지원형 사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과 지역의 소규모 예술교육이 병행돼야 하는 거죠. 한 예로 '우리 동네 예술가' 사업을 제안합니다. 미술가에겐 '동네 아뜨리에'를 만들어주고, 사진작가에겐 '동네 사진관'을 만들어 드립니다. 연극가와 음악가에겐 지역 문화센터의 공연장을 활용할 수 있게 해드리는 거죠.

그리고 공공문화시설의 '요금상한제'를 실시할 것입니다. 작년에 독일을 다녀온 친구는 유명한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를 단 8유로에 보고 왔습니다. 시민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는 공공문화시설은 시장과 구청장의 액세서리에 불과합니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⑦-3]로 이어집니다(바로 읽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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