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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보수언론의 위선적인 '공정 프레임'

기득권 카르텔에는 노골적으로 관대... 진보는 '위선'으로 공격·능력주의는 과대 포장

등록 2020.12.31 23:23수정 2020.12.3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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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동아 ⓒ 오마이뉴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 언론사들의 사유화가 심각하다. '공정성'이 핵심인 언론이 족벌경영과 세습 경영의 양상을 보인다. 이는 재벌 기업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북한에서는 정치 권력이 세습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경제 권력이 세습되고 있다. 특히 대표 언론사들이 족벌 경영을 하고 있다. 2015년 보도된 <미디어오늘> '누가 대한민국 언론을 지배하는가'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70%의 지분율이 있는 방씨의 나라이고, 중앙일보는 60%의 지분율을 가진 홍씨의 나라이며, 동아일보는 김씨의 나라이다. 

언론사는 일반 기업과 달리 국민의 여론 조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그러므로 사유화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 공기(公器)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의 족벌적 사유화로 인해 사주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이런 이유로 언론사의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정치적 입장이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공공성'이 중요한 사학도 동일한 족벌 구조 때문에 사학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요즘 공영형 사립대학으로의 전환이 뜨거운 이슈가 된 이유이다. 

'공정성' 훼손의 대표적인 사례는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의 딸이 2020년 공개채용에 지원해 동아일보에 입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해당 내용에 대해 보도는 <미디어오늘> 등 미디어 관련 전문지에서만 확인 가능하다. 더욱이 김재호 사장의 딸은 검찰이 수사중인 '하나고 부정 편입 혐의 고발 사건' 당사자이기도 하다.(관련기사 : '동아 기자 합격' 김재호 사장 딸은 하나고 '부정 합격 의혹' 당사자 http://omn.kr/1qx0z)

이러했던 동아일보가 조국 자녀 입시 부정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 발 단독 보도를 쏟아냈다. 공정성을 위반한 위선적 행태라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경우에 따라 변하는 보수 언론의 공정 프레임

보수 언론사와 그 기자들의 낯 두꺼운 행태가 안타까운 이유는 언론사로서 지켜야 할 보도의 객관성 유지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민주 인사에 대한 공세를 위해서는 침소봉대의 전략을 구사한다. 이 기술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공격할 때에도 나타났다.
  
무엇보다 이들은 보수 인사들의 노골적인 반칙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가짜 뉴스성 보도를 일삼는다. 보수 언론의 공정 프레임은 현 집권 세력의 위선을 부각하는 용도일 뿐이다. 반면에 자신들의 반칙과 남용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보수 언론의 공세와 나경원 전 의원의 엄마 찬스에 대한 의도적인 침묵에서 공정 프레임의 문제점이 잘 드러난다. 

반면에 연세대 부총장의 지시로 교수 7명이 공모한 입시 비리에 대해서는 조용하고 관대하기만 하다. 게다가 나경원의 엄마 찬스에는 '엄마의 눈물'로, 김성태 전 의원의 아빠 찬스에는 '울어버린 김성태'라는 제목을 달아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보수 언론의 의도는 불평등을 개혁하려는 인사들을 공격하고 결국 제도화된 불평등을 옹호하여 보수 세력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보수 언론은 공정 프레임은 '공정이라고 쓰고 반칙'이라고 읽어도 무방하다.

공정성의 본래 의미는 능력주의가 아니라 약자를 위한 규칙 만들기이다. 특권이 허용되는 제도화된 불평등한 규칙 아래서의 기회의 균등이 아니다. '평등', '공정', '노력', '능력'은 존 롤스의 <정의론>(1971년)에 등장하는 핵심 개념이다. 

롤스가 말한 원초적 입장이란 자신의 개인적 특성이나 사회에서의 위치를 모르는 무지의 베일을 덮어쓴 상태에서, 서로에게 무관심한 합리적 당사자들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분배 원칙을 선택하는 가상적 상황을 말한다. 

각 당사자는 원초적 입장에서 무지의 베일을 덮어쓰고 있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난다. 이 상황에서는 자신이 가장 열악한 계층이 될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 아니면 적어도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에게는 이득이 되도록 정의의 원칙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원초적 입장에서 무지의 베일을 덮어쓰는 집단적 행위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롤스가 제시한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는 현실적이 아닌 가상적 계약의 산물이다.  

보수 언론의 공정 프레임이 롤스가 말한 공정성과 거리가 먼 특권 논리에 가깝다는 게 금방 드러난다. 또한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공정'이 얼마나 '불공정'인지 파악할 수 있다. 

5개 영역 집단의 연합인 기득권 카르텔

현재 보수 언론의 공정 프레임은 두 가지로 비판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위선 프레임입니다. 북한의 정치 세습도 논란의 거리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세습도 마찬가지로 큰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 그런데 공정으로 민주 인사를 비판하는 보수 언론의 공정 프레임이 말 그대로 위선적이다. 결국 경제 세습의 핵심 일원인 보수 언론이야말로 기득권 카르텔의 연합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의 추태는 검찰 편을 들다가도 삼성가의 수사 이야기가 나오면 오히려 검찰을 비판하고 삼성가를 옹호한다. 기득권 카르텔은 5개의 영역 집단의 연합이다. 즉, 군부 독재 후신인 보수 야당+재벌+정치 검찰+보수 사법부+보수 언론이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특권의 영원한 세습이다. 이들의 의도는 기득권 카르텔을 비판하고 바꾸려는 사람들을 공정을 위배한 위선의 프레임으로 몰아 공격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정 프레임의 역할은 능력주의의 포장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능력의 독재'라는 말처럼 이러한 공정 프레임의 목적은 일종의 불평등의 제도화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를 불공정하다고 한목소리로 외치는 보수 언론의 행태이다. 

한마디로, 보수 언론의 공정 프레임은 진정으로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을 포장지로 내세워 여론을 유리하게 조작하려는 것에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문제만이 아니고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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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폭탄이라는 말이 얼마나 특권층 봐주기인지 알 수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보도된 <중앙일보>의 '주택 아닌 곳 사는 37만 가구... 15만 가구는 고시원 거주>에 따르면,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 월평균 소득 200만 원 미만인 비율이 51.3%이다. 그들의 평균 월세는 32만 8000원이다. 고시원·고시텔이 33만 4000원으로 월세 부담이 가장 크고, 판잣집·비닐하우스의 월세가 22만 2000원이다.

이에 반해 2020년 종부세 50만 원 내다가 250만 원 내게 된 래미안 대치팰리스 34평은 7년 전 13억 원이었다. 지금 31억 원이다. 그들의 종부세는 월평균 20만 8000원이다. 판잣집도 22만 원 내는데 대치팰리스가 이보다 적은 20만 원을 낸다.  
  
종부세 폭탄이라는 말이 얼마나 특권층 봐주기인지 알 수 있다. 이러니 보수 언론의 공정 프레임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미국 언론의 문제점을 '동의 조작(여론 조작)'이라고 비판한 노엄 촘스키가 지적이 있다. 지식인의 사명은 19세기 미국 수필가인 에머슨의 말처럼 "민중이 우리의 멱살을 잡지 않도록 민중을 교육해야 한다"는데 있다. 이러한 동의 조작이 보수 언론이 던진 공정 프레임의 숨은 진정한 의도이다.

위선적인 '공정' 프레임과 기득권 비리에 대해서는 침묵의 카르텔로 여론을 조작하려는 언론사에 대한 개혁이 절실하다. 언론 개혁의 핵심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기초한 언론사의 지배 구조를 제도화하여 사주의 데스크의 편집권을 독립시켜야 한다. 또한 언론사의 공정성과 공공성 강화를 위해 공영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가짜 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만들 때 언론사뿐만 아니라 뉴스를 유통하는 포털도 포함해야 한다. 

진정한 공정이란 약자 보호하기

이미 밝혔듯이 공정성이란 '약자를 보호하는 규칙 만들기'이다. 규칙 자체가 불평등하면 기회의 균등이나, 능력주의 모두 불평등을 재생산할 뿐이다. 

예를 들어, 재벌의 자녀나 노숙자의 자녀가 모두 대학에 갈 기회가 있다. 이것이 기회 평등의 요지이다. 현대인이라면 출생에 따라 분배하는 신분제를 불합리하다고 여긴다. 출생은 우연의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존 롤스나 마이큰 샌델은 능력도 출생만큼이나 우연과 행운의 요소에 기인한다고 본다. 물론 자기 노력도 있지만 좋은 부모와 사회 속에서 살아야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프로리그에서 외면받아 일본 프로에서 뛰던 박지성 선수도 히딩크와 퍼거슨이라는 감독을 만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축구가 글로벌 비즈니스화된 세상을 만나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만약 똑같은 위치에서 무지의 베일을 덮어쓰고 신분제 사회와 평등 사회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평등 사회를 선택할 것이다. 누구나 노비가 태어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입시나 채용 제도를 과연 선택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스펙을 많이 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엘리트 계급에 속할 확률보다는 서민에 속할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스펙 위주의 입시와 채용 제도는 불공정하다고 규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절대적 기준으로 여기는 객관성도 바로 공정성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하면 공정성이 확보되는가?

수학자인 캐시 오닐의 <대량살상 수학무기>는 편견을 가진 인간과 달리 감정이 없는 기계가 객관적인 수치를 사심 없이 처리하는 객관성에 대해 맹신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2008년 월가 발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수학과 금융이 결탁하여 만든 파괴적 힘에 환멸을 느낀다. 장밋빛으로 보이는 빅데이터 경제가 실은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빅 데이터 경제의 원동력은 수학 모형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도 인간의 선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악한 의도건 선한 의도건 간에 인간의 선입견과 오해 및 편향성이 반영되어 코드화로 이뤄진다. 지은이가 몸담았던 금융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선택이라는 주관적 평가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대다수 수학 모형 알고리즘으로 인해 인종과 부, 민족과 문화와 얽힌 편견을 코드화하여 다수의 빈자와 약자를 더욱 가난해졌고 소수의 부유층을 더욱더 부유해졌다.

더욱 문제인 점은 수학 모형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이 신의 결정처럼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반박 불가능하고 수정 불가능하게 여겨진다. 현대의 수학자와 컴퓨터 과학자가 성경과 신의 뜻을 독점한 종교 사제가 되었다. 요즘 편향적이라고 비판을 받는 다음과 네이버의 뉴스 알고리즘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정은 약자를 보호하는 규칙 만들기이다. 객관성도 아니고 능력주의도 아니다. 다시 말해 공정은 깨인 성숙한 촛불 민주 시민과 함께 만들어야 나가야 하는 원칙이지, 보수 언론처럼 특권층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 언론의 공정 프레임은 진보 언어로 진보를 비판하는 보수 카르텔의 위기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수 언어로는 시민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보수 언어는 그 힘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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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성지이자 공영형 사립대학을 추구하는 상지대학교 교양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철학과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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