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학교 기다리는 아이들이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는 이유

학생들의 '게임 과몰입'에 대한 단상... 이렇게 풀어보면 어떨까

등록 2021.01.12 09:01수정 2021.01.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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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채팅창에서 하는 끝말잇기 놀이 Zoom으로 하는 온라인 실시간 수업 전 채팅창에서 끝말잇기 놀이 ⓒ 조성모

  
"우와~ 사람이 없네"
"사람이 진짜 없어"
"끝말잇기 할래"
"그랭, 너부터 하슈"
"비행기"
"기차"
"차표"
"표범"   
"범계동"
"동사무소"
"소문" 

Zoom 채팅창이 바빠진다. 한두 명씩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 플랫폼에 들어오면서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말잇기 놀이 삼매경이다. 놀이에 푹 빠져 있으니 오늘은 아무도 음악 듣자고 말하지 않는다. 
 
"수업 시작 1분 전이네, 비디오 켜고요, 선생님이 출석 확인 좀 할게요."
 
Alt+M을 눌러 음소거를 한다. 오름 차순으로 정열된 학생들 이름을 보니 아직 안 오신 두 분의 고객님이 레이더망에 포착된다. 이 시간은 온라인으로 사회 수행평가 보는 시간이니 짬 내서 전화해 봐야겠다.
"끝말잇기 재밌었어? 채팅창에서 불나던데?"
"괜찮았어요", "오랜만에 해서 잼났어요", "뭐, 그럭저럭요", "시시해요", "어려웠어요", "더 하고 싶어요"
"너희들이 시작하고 같이하니까 재밌어 보이더라, 요즘은 무슨 게임하니?"
"자동차 운전게임이요", "총싸움이요", "편 먹고 싸우는 거요"
"재미있겠네, 다음에 선생님도 같이 한번 해보면 좋겠다"
"선생님은 어릴 때 무슨 게임했어요?
"음, 선생님은 동네 골목에서 애들이랑 나이먹기, 짬뽕공, 오징어, 돈까스까스, 구슬치기, 딱지치기, 귀신놀이, 고무줄 놀이, 술래 잡기, 우리집에 왜왔니 이런거 하고 밤새 놀았지, 구슬이랑 딱지로도 놀 수 있는 게임이  수두룩했고"
"아 맞다, 선생님은 국민학교다. 선생님 국민학교 나왔죠?"
"아마 초등학교였을 걸?, 자 오늘은 저번에 예기한 것처럼, 일제 강점기 시대 한 인물을 조사해서 신문기자가 되어 육하원칙에 맞춰 기사 쓰기를 하겠습니다. 채팅창에 주소 올렸으니까 클릭해서 접속하면 됩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예전에는 등교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걷어 놓았다가 하교 때 나눠주던 때도 있었다. 분실 문제 때문에 이제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나는 수업 시간 정보 검색, 사진이나 영상 촬영, 앱(application)의 사용으로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한다. 하나의 도구로 쓰고 있다. 수업 주제가 흥미로우면 그 주제와 관련된 활동에 몰입되지 스마트폰 화면만을 쳐다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올해는 학생들이 방과 후 활동을 못했지만, 예전엔 학교에서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 주르륵 일렬로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게임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 걸 자주 봤다. 수시로 화려한 색깔이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화면과 아드레날린이 나올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소리는 누구라도 쉽게 빠져들 것만 같았다.

내가 뭐라고 한 소리 해도 그때 뿐, 지나가면 소용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떨 때는 참견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딱히 할 게 없는 아이들에게는 그게 어쩌면 유일한 유익한 활동인지도 모르겠다.

'게임 중독'까지는 아니라도 요즘 '게임 과몰입'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에 동반해서 '게임 리터러시(Game Literacy)'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리터러시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게임 리터러시는 게임이 갖고 있는 정보· 의미·가치를 이해·분석하고 생산까지 해 보는 개념이다.

TV가 누구에겐 바보상자이고 누구에겐 정보상자이듯, 또 칼도 요리사가 든 것과 강도가 든 것이 다르듯, 사실 게임 자체보다 어떻게 이해하고 이용하는가가 중요하다. 혼자 하는 게임도 마찬가지겠지만 여럿이 하는 게임에서 우리는 서로 의사소통 해야 하고, 누군가는 이끌어야 하고, 누군가는 도와줘야 하고,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고, 협력해야 하고, 같이 장애물을 넘어야 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하는 때가 있다. 게임에서 이런 역량들을 키울 수 있도록 게임을 이용하되 게임에 빠지지 않도록 잘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 


이전 근무했던 학교에서 학급 반 아이들을 4모둠으로 만들어서 각각의 모둠마다 보드게임 기획, 설명서, 게임판 만들기와 발표회를 했다. 우선 자기 모둠 보드게임을 해보고 순서대로 다른 모둠의 보드 게임을 놀이했다. 그 때 아이들은 실제 모둠원들과 같이 스스로 기획하고 소통하며 만드는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내가 수업시간에 말로 하는 것은 흘려보낼 수 있지만 이런 활동으로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체화한 것들이 더 깊었으리라 생각한다.

올해 등교 수업 때 여러 가지 게임 활동을 하고 싶었으나 역시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게임들을 빼다 보니 할 게 없었다. 그래도 공부에 지친 머리를 간단한 게임으로 풀어주려고 했는데 얼마나 마음에 닿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올해는 아이들이 몸으로 부딪치고 땀을 흘리며 신나게 놀 수 있는 게임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2021년이 되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요즘 애들은 우리 때 '깍두기'를 알까?'
#교육 #교실 #학교 #게임 과몰입 #게임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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