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숙여야 볼 수 있는' 것들과 마주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폐기물 감량화와 자원화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등록 2021.01.16 17:52수정 2021.01.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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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        ](이)다.' 


빈칸에 들어갈 말을 고르시오. ①코로나 ②전례없는 ③유례없는 ④나한테 왜 이러나 싶 ⑤카멜레온(변이가 쏟아진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유례없는 감염력으로 찾아온 코로나19는 주변에 대한 관심을 사실상 차단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고,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다. 최근까지 몰아닥친 한파에 마스크+모자까지 뒤집어쓴 '얼굴 없는 사람들'이 산책로를 따라 잠깐의 외출을 즐겼다. 모두 앞만 보고 빠르게 걷거나, 휴대폰을 보며 걷거나 또는 동반한 가족‧친구‧연인과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관심이 차단되자 우리는 '길바닥'에 더욱 무지해졌다. 흔히 "땅만 보고 걷는다"고 해서 땅바닥에 '관심'을 준다는 뜻이 아니듯,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아무 이유 없이' 줍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봉사'라는 이유를 만들어 봉투를 들고 밖을 나섰다.

10분 만에 가득, "고개 숙이니 보였다"


지난 13일 오후 자원봉사자 단체 대화방에 톡이 올라왔다.

"내일은 날씨가 풀려 오전부터 진행합니다!"

그래, 내일이다. 봉사를 신청한 뒤 14일 오전 복지관으로 향했다. 쓰레기 처리 봉사는 거의 8년 만이었다. 파란 봉투와 집게를 건네받고 고개를 숙였다. 복지관 바로 앞에서부터 담배꽁초가 쏟아졌다. 하나를 주우면 한 발자국 앞에 또 보였다. 끝내 줍지 못한 녀석들이 더 많았다. 
 

담뱃갑이 버려져 있다. ⓒ 홍효진

  

비닐봉투가 10분 만에 쓰레기로 가득 찼다. ⓒ 홍효진

  
아파트 뒤로 돌아가니 길고양이 분변이 보였다. 주민들의 민원이 많다고 했다. 그 옆에는 누가 저렇게 대놓고 버렸나 싶은 플라스틱 통이 버려져 있었다.

고개를 숙이니 보이는 것들은 각양각색이었다. 담뱃갑, 눈에 달라붙은 휴지, 물티슈, 찌그러진 종이컵, 라이터, 소화제병, 근원을 알 수 없는 쇳조각 등. "사람 사는 곳에 쓰레기는 있어야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눈만 돌려도 놈들이 나왔다. 빈 봉투는 10분 만에 쓰레기로 가득 채워졌다.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한 아파트 주민은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라며 혀를 찼다. 그러게요. 허허. 어색한 대꾸를 끝으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숙이면 보이는 것들은 아무리 주워 담아도 화수분처럼 나왔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생각했다. 버리는 사람들은 '여기다 버려야지!'하고 버리는 걸까, 아니면 미필적 고의에 의해 버리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순간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던 쓰레기들이 자유를 찾아 떠난 걸까. 잠복했다가 쓰레기를 투기하는 사람들을 다 잡고 일일이 설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필자가 쓰레기를 줍고 있다. ⓒ 홍효진

 
지하철역으로 돌아오는 몇 걸음 사이에도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곳곳에 숨어있었다. 주울까 말까, 고민 끝에 몇 개를 더 주워 주변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줍자니 유난스럽나 싶고, 말자니 괜스레 보고도 못 본척 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오는 얼마 동안 나는 '숙여야 볼 수 있는' 것들과 마주했다. 길에 붙은 (혹은 흩어진) 쓰레기를 줍는 건 강요되지 않는다. 줍고 싶다면 줍고 싫다면 지나치면 된다. 

하지만 '버리지 않는 것'은 강요된다. 현행 '폐기물관리법' 제7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을 청결히 유지하고, 폐기물 감량화와 자원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당연히 쓰레기 투기도 금지된다. 담배꽁초나 휴지 등은 5만 원, 비닐봉지는 20만 원의 과태료도 부과된다. 그럼에도 숙이면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다. 법망을 피하려 애쓰지 않아도 으레 당연한 일인 듯, 오늘도 쓰레기가 버려진다.
#쓰레기 #길거리 #길거리쓰레기 #환경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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