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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 살인사건 '무죄'... 뒤늦은 사법부의 사과

21년 억울한 옥살이, 재심 판결 "경찰 고문에 거짓 자백, 증거능력 없어"

등록 2021.02.04 14:19수정 2021.02.0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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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등법원이 4일 경찰 강압수사와 고문에 살인자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살았던 최인철(60), 장동익(63)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발생 31년 만의 일이다. 4일 부산고법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 김보성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이 자리에서 피고인과 가족에게 사과합니다."

법원이 이른바 '낙동강변 살인사건(엄궁동 2인조 사건)' 피해자에게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재판부는 "재심 판결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회복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경찰 강압수사와 고문에 살인자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살았던 최인철(60), 장동익(63)씨에게 사건 발생 31년, 재심 청구 3년 8개월여 만에 '무죄' 결정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4일 부산고법 1형사부(부장판사 곽병수)는 이들이 제기한 재심청구 재판에서 "피고인들 모두 무죄"라고 선고했다.

수사기관의 강압, 불법 수사에 무기징역형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피고인들의 항소심, 상고심 변호인을 맡아 주목을 받았던 사안이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35년 생활 중 가장 한으로 남은 사건"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90년 1월 4일 부산 사상구 낙동강변에서 차를 타고 있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됐고, 이들 중 여성은 성폭행을 당한 뒤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남성 또한 상해를 입었다.

현장에서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당시엔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뒤 최씨와 장씨를 살인 혐의자로 지목했다. 두 사람은 다른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다가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 기소 과정에서 이들은 물고문과 폭행 등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과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1993년 무기징역 확정으로 두 사람은 감옥에서 무려 21년 5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장기 복역을 거쳐 2013년 모범수로 출소한 최씨와 장씨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심판 등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인권의 보루'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들은 이후 박준영 변호사를 만나 2017년 부산고법에 재심을 다시 신청했다. 그러다 2019년 사건을 재조사한 대검 과거사위원회가 조작을 지적하고 재발방지책 마련을 권고하면서 재심 결정에 급물살을 탔다. 과거사위의 권고 발표에 최씨와 장씨는 재심의견서를 다시 제출했고, 지난 1월 6일 부산고법은 "재심 사유가 충분하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재심 결정 과정에서도 재판부는 당시 수사관과 검사에 의해 고문은 물론 허위공문서 작성 등 범죄가 저질러졌음이 증명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 역시 이러한 이유로 최씨와 장씨의 특수강도, 강간, 강도살인, 감금 등의 혐의를 모두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1형사부의 곽 부장판사는 체포과정과 자백 과정 등에 불법을 지적하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사과했다.

재심을 앞두고 잠을 잘 수 없었다는 최씨와 장씨는 긴 시간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아들자 박 변호사와 함께 "믿어주셔서, 함께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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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최인철(왼쪽)씨와 장동익씨, 박준영 변호사(가운데)가 4일 오전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손을 맞잡고 있다. ⓒ 연합뉴스

#엄궁동 2인조 #낙동강변 살인사건 #최인철 #장동익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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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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