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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민중들은 지배층의 파렴치한 일을 어떻게 견뎠을까

[서평] 조선민중의 삶을 한권에... '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록 2021.02.15 14:35수정 2021.02.1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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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한 사극에서 사람들을 우리에 진열해놓듯 가둬두고 매매를 기다리는 노비시장 모습이 나와 당혹스러웠다. 조선시대, 노비는 맘대로 파고 살 수 있는 물건과 같은 존재였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필요에 따라 아는 사람끼리 거래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처럼 시장을 형성했을 거란 상상조차 못했다.

드라마에서는 전주관찰사가 일반 백성들을 잡아 가뒀다가 노비시장으로 공수해주는 장면도 나왔다. 지배층의 악행으로 노비만이 아닌 사람들의 삶까지 통째로 흔들린 것이다. 드라마라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에 바탕을 뒀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복잡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다.


사실상 일부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만든 신분제도에 불과한데도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대를 물려 핍박받으며 살아야만 했던, 그것으로도 모자라 지배층들에 의해 삶이 통째로 흔들리기도 했던 조선의 민중들. 그들은 신분의 굴레와 지배층들에 의한 시련을 어떻게 이겨내며 살았을까?
 
조선 시대 천민으로 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고, 더더욱 여종으로 산다는 것은 짐승으로 살아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종들은 주인의 소유물이라서 매매를 하거나 사사로이 벌을 내리기도 했다. 그래서 종은 주인이 이유 없이 형벌을 내리거나 팔아도 항변할 수 없었다. 심지어 종은 주인을 고발할 수도 없었다. 여종은 주인에게 겁탈을 당하기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종모법에 따라 아이도 종이 되었다. 다른 집 사내종과 혼인을 하여 아이를 낳아도 역시 어미인 여자 종을 따라 종이 되었다.남편이 있는 여자 종이어도 주인은 함부로 겁탈하고 사통했다. 사통을 거절하다가 매를 맞아 죽는 일도 허다하게 벌어졌다. 여종이 종살이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치면 추쇄꾼에게 잡혀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매를 맞고 얼굴에 노(奴)라고 자자(얼굴이나 팔에 죄명을 문신하는)를 당하기도 했다. 세종 때 문장가로 유명한 권채도 자신의 여종에게 가혹한 짓을 하여 '문장은 아름다우나 사람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16~217쪽
 
 

<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책표지. ⓒ 북오션


성종 때였다. 유효손이라는 자가 자신의 여종 효양에 대해 저지른 짓은 참혹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유하는 수양대군이 권력을 쥐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 당시 내금위로 수양대군 편에 서서 큰 공을 세워 정난공신이 되었다. 이후 단종을 폐위시키고 세조가 왕권을 잡는데도 큰 공을 세워 문산군에 봉해지는 한편 많은 재물과 노비(종)와 첩을 소유하게 되었다.

유효손은 첩이 낳은 자식이었다. 게다가 중인 출신의 첩이 낳은 서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천민 출신의 첩이 낳은 얼자였다. 하지만 여러 명의 노비를 거느리는 등 어지간한 양반보다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았다. 정난공신들이 여전히 활개 치는 그런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효양을 보게 된 유효손은 기회다 싶으면 덮치는 등 호시탐탐 효양을 노렸다. 열아홉 살이지만 이미 혼인까지 한 효양이었다. 그러나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겁탈하는 주인들이 많은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효손은 그럴 때마다 "주인 말을 듣지 않았다"거나, "도망치려고 했다"는 거짓 이유로 심한 매질을 한 후 굶어 죽기 직전에 이를 때까지 며칠씩 광에 가두곤 했다. 또한 걸핏하면 민감한 부분들만을 골라 희롱하듯 매질하거나, 피투성이가 되도록 몽둥이를 휘둘러 효양은 멀쩡할 날이 없었다. 고통을 못 이겨 체념하고 받아줄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효양에 대한 탐욕과 학대는 계절이 몇 차례 바뀔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는데, 그런데도 굴복하지 않자 벌겋게 달군 인두로 몸을 지진다. 그런 후 발목을 뚫어 삼줄로 꿰어 묶어 두거나 개처럼 기어 다니며 살게 한다. 그런데 그로 그치지 않고 걸핏하면 효양에게 침을 뱉어 모욕하는가 하면 걷어차곤 했다고 한다. 동물에게도 해서는 안 될 짓을 당연한 듯 저지른 것이다.


유효손의 포악은 성종의 귀에도 들어간다.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혼인한 여종마저 맘대로 겁탈하는 파렴치한이 지배층들의 상식이긴 했지만, 유효손처럼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목을 뚫어 묶어놓고 개처럼 살게 하는 것은 해도 너무한 악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건 당시 효양의 어머니를 비롯한 효양의 남편 등 일가족이 유효손의 노비로 살고 있었다. 성종은 효양과 그 가족들의 속공(사노에서 관노로 만듦)을 제안한다. 효양처럼 사사로운 탐욕에 희생될 확률이 낮은 관노가 사노보다 대체적으로 덜 힘들었기 때문이다.

성종의 제안은 노비에서 아예 벗어나게 하자가 아니다. 조금 나은 조건의 노비로 살게 해주자였다. 그런데도 대신들의 벌떼처럼 일어나는 반대에 부딪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반대 이유는 "노비를 엄하게 다루지 않으면 사나운 노비들이 주인에게 반발한다"와 같은 논리였다. 그런데 대신들만이 아닌 여러 부서의 관리들까지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에게 영향이 미칠지도 모른다는 계산에서였다.

성종이 뜻을 굽히지 않고 여러 차례 진노하며 강제한 덕분에 효양과 일가족은 속공된다. 이런 유효손 사건은 조선 시대 노비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말해주는 동시에 당시의 지배층들이 자신들의 신분 유지와 사사로운 욕망을 위해 얼마나 파렴치했으며 졸렬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유효손이 효양에게 저지른 포락지형은 중국 상나라의 폭군 주왕이 했던 것인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로 악명 높았다. 그래서 당시 국가에서도 시행하지 않던 금지된 형벌이었다. 말하자면 국법까지 어긴 것이다. 그럼에도 유효손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고 한다.

유효손의 학대로 효양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졌다. 그럼에도 노비에서 벗어나기는커녕 그나마 좀 낫다는 관노로 바뀌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노비를 비록 하찮은 신분이지만 그래도 생명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처사가 과연 마땅했을까?

<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북오션 펴냄)는 효양처럼 조선의 지배층들에게 짓밟히며 살았던 민중들의 고달프고 애잔한 이야기다. 

조선 시대 지배층은 왕족과 양반이었지만 사실상 조선을 이끈 것은 대다수 민중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활상 혹은 삶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배층 위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옛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지배층 위주다. 민중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부속물 중 일부로 비춰지곤 한다. 혹은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조선 민중들의 여러 유형의 삶을 한권에 담았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 남다르게 와 닿는다.

책은 세금을 내지 못해 집을 빼앗기고 떠돌며 아이들과도 생이별해야만 하는 농사꾼의 아내 이야기를 시작으로 종(노비), 여자 백정, 평민 여성, 기생, 악공, 떠돌이 장사꾼, 역관, 의원, 과부 등, 두루뭉술하게 혹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선시대 민중들의 삶을 들려준다.

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수광 (지은이),
북오션, 2018


#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수광(작가) #노비 효양 #포락지형 #속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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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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