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 다양한 결혼을 배우고 싶습니다

[주장] 사회에 만연한 정상 가족 프레임, 교과서에서부터 깨자

등록 2021.02.19 09:47수정 2021.02.1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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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배제가 만연한 사회다. 교과서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학교, 그리고 교과서는 다양성을 가르치지 않는다. 언제까지 교과서에서 소수자의 삶을 배제할 것인가. ⓒ 픽사베이

미래엔 중학교 기술과정 교과서에서는 부부 관계를 '남녀 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결혼을 함으로써 형성되는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부부 관계는 왜 남녀만의 것인가? ⓒ 미래엔

 
2020년 12월 말, 나는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도 시험기간인만큼 열심히 교과서를 훑어보던 중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배우는 지학사 중학교 기술가정② 교과서에서는 부부 관계를 '성인 남녀가 결혼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동의하기 어려웠다.

다른 교과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래엔 기술가정② 교과서 역시 부부 관계를 '남녀 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결혼을 함으로써 형성되는 관계'라고 정의하고 있다. 모든 교과서를 살펴보지는 않았으나 많은 기술과정② 교과서가 결혼을 '성인 남녀만의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읽는 즉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분명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남녀 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결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결혼 말고도 많은 형태의 결혼이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동성결혼이다. 동성 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결혼할 수도 있는 것인데, 왜 교과서에는 그런 결혼이 없을까?

이런 차별과 배제가 교과서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한 동성 부부가 동성 배우자가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부당하다며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부부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지만 동성 부부는 이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 남들과 조금 다른 사랑을 하면 권리를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모든 사랑은 그 자체로 존엄하며 소중하다.

 학교, 그리고 교과서는 더 다양한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교과서에는 더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소개되어야 한다. 당연히 이성 간의 사랑, 결혼은 중요하다. 하지만 동성 간의 사랑, 결혼 역시 중요하다. 성소수자의 결혼이 교과서에는 왜 담겨있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성이고, 학교는 민주주의의 배움터지만 교과서에는 다양성이 없다. 전국의 수많은 학생은 결혼을 남녀 간의 관계로만 배우게 된다. 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고, 배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학교이지만 교과서는 차별과 배제를 재생산하고 있다. 교과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 가족' 프레임이 떠오른다. 엄마, 아빠, 아들, 딸로 이루어진 핵가족 형태의 정상 가족. 이런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정상 가족'이 되어 차별과 배제를 겪는다. 얼마 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미혼모 시설에서 "정상적인 엄마가 많지 않다"라고 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미혼모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김종인 위원장의 편견이 여실히 드러난 말이다. 교과서는 '정상 가족' 프레임을 충실하게 대변하며 다양한 결혼을 소개하고 있지 않다.

"교과서 한 줄 바꾼다고 뭐가 달라져?"라고 물을 수 있다. 물론 교과서 한 줄 바꾼다고 당장 내일부터 혐오와 배제와 차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교과서 한 줄 안 바꿔놓고 어떻게 혐오와 배제와 차별을 없애는가. 학생들에게 부부란 성인 남녀만의 관계라고 가르치면서 어떻게 동성 부부에 대한 혐오와 배제와 차별을 없애는가.


나는 이런 교과서로 수업을 듣는 학생이다. 교과서는 언제까지 정상 가족 프레임에 갇혀 교과서에서 남녀만의 결혼을 가르칠지 모르겠다. 적어도 교과서라면 세상에 있는 다양한 결혼을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교과서에 다양한 결혼을 소개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상 가족 프레임을 깨고 모든 사랑, 모든 가족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시발점이다. 교과서에서 다양한 결혼을 배우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다양성과 차별 없는 사랑을 배우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교과서에 다양한 부부 관계를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선생님들! 저희는 교과서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 다양한 형태의 부부 관계를 배우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기술가정 #성소수자 #부부관계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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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글쓰기. 문의는 j.seungmi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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