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띠기가 헤뜨기고 헤뜨기가 횟대기지, 뭐"

우리 말 사전은 어떤 말을 실어야 하는가

등록 2021.02.28 15:21수정 2021.02.2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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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띠기와 꺽정이와 꺽지 ⓒ 이무완

 

헤띠기라는 물고기

헤띠기라는 물고기가 있다. 동해 바다에 사는, 노란빛이 나는 물고기다. 표준어로는 횟대인데 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 사람이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쓴다. 시인 이동순은 <가자미 식혜>, <게구석 가는 길>에서 '횟대기'로 썼다.
 
엄마 손길은
꼭두새벽부터 바쁘시네
가마솥에 좁쌀 씻어 안치고
펄펄 끓는 부뚜막 옆 단지 속엔
가자미 횟대기 녀석들이
차곡차곡 들어가네
무엇 만드시나

해는 바지런히 저무는데
좁쌀밥에 무채에 고추양념 버무려 내면
도란도란 모여 앉은
동네 아낙네들
저마다 손가락으로 맛보았지. (뒤줄임)

그런데 같은 시집에 실린 <물망치>에서는 "시장 좌판에 곤지랑 횟대랑 물망치 늘어놓고/ 날마다 깡통에 피워 놓은 / 모닥불 쬐셨지"에서 보듯 '횟대'를 썼다. 동해안 바닷가 식당이나 생선을 파는 가게에 써놓은 이름들도 제각각이다. 횟대, 횟대기, 헤뜨기, 헤띠기, 헤떼기, 해뜨기, 해떼기, 햇때기, 햇뜨기……

헤뜨기(횟대)는 우럭, 삼식이(삼세기), 노래미(놀래미)와 같이 쏨뱅이목에 든다. 등 쪽은 붉은빛을 띤 회갈색이 나고 배 쪽은 하얗다. 노란빛 나는 가슴지느러미에는 검은 갈색 줄이 세 개가 있다. 100미터 안팎 얕은 바닥에 살면서 새우나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식해를 담가 먹는 물고기

흔히 물고기 이름에 붙는 뒷가지로는 숭어, 방어, 청어, 전어, 복어, 고등어의 '어'(魚), 멸치, 꽁치, 갈치, 삼치, 넙치, 새치, 준치, 쥐치의 '치', 참서대, 박대, 성대, 횟대의 '대', '열기, 조기, 삼세기'의 '기' 따위가 있다.

'횟대'는 어떻게 만들어진 말일까. 횟대는 '회(횟)+대' 꼴이다. 이때 '대'는 서대, 성대, 박대 같은 물고기 이름에서 보듯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그렇다면 앞에 쓴 '회(횟)'은 어떤 뜻일까. 가령, '서대'라는 바닷물고기는 생김새가 마치 혀와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혀'를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서'라고들 하지 않나. 서대를 한자로는 '설어'(舌魚)라고 한다. '성대'라는 놈은 위를 옴츠렸다 늘렸다 하면서 곧잘 구욱 꾸욱 하고 소리 내는 데 여러 마리가 울면 시끄러울 정도라고 한다. '울음소리'(성·聲)를 내는 물고기라고 '성대'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횟대는 '식해를 담가 먹는 물고기'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젓갈을 뜻하는 '해'(醢)에 물고기를 뜻하는 '대'를 붙여 만든 이름으로 보면 '횟대'라는 표준어는 다소 생뚱맞다. "해(醢)+대 → 햇대→ 햇대기→ 해뜨기"처럼 소리가 달라진 것으로 추측해보면 엇비슷한 이름을 얼마든지 설명할 만도 하다.

헤뜨기 식해는 아가미와 속을 빼고 깨끗이 손질한 다음 토막 쳐서 소금을 뿌려 밑간을 하고, 살짝 절여 건져 둔 무와 고슬고슬하게 지은 조밥, 엿기름, 고춧가루, 다진 생강과 마늘 따위와 버무려 하룻밤 재웠다가 먹는데, 헤뜨기식해는 잘 무르지 않고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남다르다. 곁가지 말이지만 앞에서 본 이동순의 시 제목이 <가자미 식혜>인데 '가자미 식해'로 써야 한다. '식혜'는 우리가 마실 것으로 먹는 감주, 단술을 달리 일컫는 말로 '식해'와는 아주 다른 음식이다.  

사전 말 다르고 쓰는 말 다르고

지역말을 살펴보면 삶에서 쓰는 말과 사전에서 풀어놓은 말 사이에 차이가 크다. 사전에서는 '횟대'라고 하지만 바닷가 사람들 입에 붙은 말은 '헤뜨기'고 '헤떼기'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횟대'의 비슷한 말로 '두부어'(杜父魚)라고 들어놨다. 우리 말 사전을 보면 '두부어' 같은 한자말은 찾아서 적어주면서 지역에서 쓰는 말은 아예 싣지도 않는다. 두부어 말고 헤뜨기, 횟대기, 헤떼기를 적어준다고 해서 문제가 될까. 더구나 '두부어'는 '볼락, 횟대, 꺽지' 따위를 싸잡는 말이지 바닷물고기인 횟대만 일컫지 않는다. 유희가 쓴 <물명고>(1820)에서는 '두부어'를 '꺽디'라 적었다. 서유구가 <난호어명고>에서 '두부어'를 설명한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산골짜기 시내에 사는 작은 물고기다. 모래무지와 같지만 작으며 길이는 겨우 2∼3치다. 입이 넓고 머리가 크다. 꼬리가 갈라졌으며 비늘이 잘다. 색깔은 누른빛을 띤 검은색이고 아롱진 무늬가 있다. 등마루엔 억센가시가 있어 사람을 찌르고 쏜다. 다닐 때는 반드시 무리를 이루고 빠르게 도약하는 것이 나는 듯하다. 사람을 보면 물결을 치면서 소리를 내는데 처음 쫓을 땐 달아나다 급하면 주둥이로 진흙을 파고 들어가 배가 닻을 내리듯 숨는다.

여기서 말한 '꺽디'나 '두부어'는 바닷물고기가 아니라 민물고기를 설명해놓은 것이다. '꺽디'라고 했지만 '꺽지'라기보다 모래가 깔린 곳을 좋아하는 '꺽정이'를 말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꺽지는 돌이 깔린 냇물에 주로 산다. 혼자 살기를 좋아하고 꼬리가 갈라지지도 않았다.

우리가 굳이 우리 말 사전을 펼쳐보는 까닭이 무엇인가. 말뜻이 무엇이고 쓰이는 자리가 어디며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 알려고 본다. 그런데 사전을 찾으면 더 아득해지고 본디 말뜻에서 더욱 멀어진다고 하면 무엇하러 사전을 찾겠는가. 일상에서 쓰는 말은 눈을 까뒤집고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 사전이 무슨 소용인가. 올림말 수가 수십만을 자랑하고 수백만을 자랑한다한들 내가 찾는 말이 없다면 종이뭉치일 뿐이다.

우리 말 사전이라면 표준말뿐만 아니라 지역말들도 홀대 말고 실어야 한다. 배운 사람 말, 있는 사람 말, 글에만 있는 말만 실을 게 아니라 나날이 제 몸을 놀려 일하는 사람들 말, 집에서 일터에서 나날이 쓰는 말을 찾아주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저절로 말을 만들어내고 전해주고 전해받은 말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글에 끌려다니다가 짓밟혀 시들어가는 우리 말을 더 기름지고 풍성하게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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