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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데이 앞두고 도축장 들어가는 돼지를 만나다

[돼지 비질 후기] 살아있는 그들에게서 그곳의 냄새가

등록 2021.03.02 08:14수정 2021.03.0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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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은 삼겹살 데이다. 축협이 양돈농가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 삼겹살을 먹는 날로 정했다. 축협뿐만 아니라 한돈, 마켓컬리, 오뚜기 등 온갖 식품 업체들은 삼겹살 데이를 맞이해 삼겹살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돼지는 도축에서 소비까지 45일까지 걸린다고 한다. 3월 3일을 맞이해 할인돼 판매되는 삼겹살은 길게는 45일 전, 짧게는 하루 전에 살아있던 돼지의 살점이었을 것이다.

26일 '서울애니멀세이브'에서는 삼겹살 데이에 희생될 돼지를 만나기 위해 도살장을 찾았다. 한 달 전과 비교해보면 같은 시간대에 도살장으로 오는 트럭의 수가 더 많았다. 도살되는 돼지의 수가 많다는 의미다.
 

트럭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 이현우

 
트럭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고 트럭 안에는 돼지들이 가득 실려있었다. 도살되는 돼지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돼지를 더욱 가까이에서 오래 함께 할 수 있었다. 트럭에 가까이 다가가자 마스크를 뚫고서 냄새가 코를 타고 내 몸을 한 바퀴 돌았다. 

똥과 오줌, 구토, 그리고 흙이 섞인 오물의 냄새.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창밖으로 향한 돼지의 엉덩이에서 똥이 나오기도 했고 서로의 오물을 뒤집어쓴 돼지들이 얼굴과 몸을 털어내면 트럭 바깥으로 오물이 튀었다. 나는 뒷걸음치며 오물을 피했다. 피하려고 피한 건 아니었다.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철창을 물어뜯는 돼지와 트럭 바깥으로 똥을 싸는 돼지 ⓒ 이현우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오물 냄새가 아니라 돼지고기 음식점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환상 속 냄새 같았다. 오물 냄새로 가득한 장소에서 동시에 음식점 냄새라니. 스스로를 의심했다. 함께 비질(도축장 등을 방문해 목격하고 기록해 공유하는 행동)에 참여한 시민의 말에 따르면 '수육'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환상이 아니었다. 돼지들이 붙어 있으면서 열이 나고 열 가운데 살냄새가 났던 것이었다. 실제로 돼지가 실린 트럭에 손을 가까이하면 사우나에서 증기를 내뿜는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배가 고팠는지 땅의 오물과 흙을 핥아먹는 돼지도 있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돼지는 도축 전 12시간 이상 굶겨야 한다. 운송 중에는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유일하게 허락된 물도 마시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갈증을 느끼는 돼지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동료 돼지들의 살을 비집고 때론 누워있는 돼지를 짓밟고 다가왔다. 짓밟힌 돼지들은 비명을 질렀다. 물을 주는 것조차 선뜻 망설였다.

트럭기사와의 대화


한창 비질을 하는 우리에게로 한 트럭 기사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심적으로 움츠러들면서 긴장됐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동물보호단체예요?"
"음... 보호단체는 아니고요. 돼지들을 만나러 왔어요."
"아니, 돼지들이 비명을 지르는 건 트럭이 너무 좁아서 그런 거예요. (물을 주던 우리의 모습을 지켜봤던 것 같다) 물 조금 준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중략) 안타까워서 그래요, 안타까워서. 우리야 먹고살기 위해서 이 일을 한다지만 당신네는 돈 써가면서 여기까지 와서..."
"맞아요. 물이라도 주려고요... 마지막 가는 길이잖아요."


트럭 기사의 말은 사실이다. 무기력했다. 한 마리의 돼지도 구조하지 못하는 우리의 '비질'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돼지의 눈을 자세히 보면 돼지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보인다. 돼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이현우

 
이름 없는 생명의 죽음은 잊힌다

헬씨, 똘이, 해피... 나와 함께한 반려견과 반려묘의 이름이다. 사람들은 반려견과 반려묘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비질에서 본 돼지들은 이름이 없다. 도살장에서는 이름 없는 돼지들이 죽는다. 우리는 '돼지'라는 두 글자에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압축하고 있는가. 이름 없는 존재들은 기억될 수 있을까.
 

트럭에 실린 수많은 돼지들 ⓒ 이현우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그날 만난 모든 돼지를 잊을 것이다.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만난 돼지들을 떠올려본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돼지, 눈이 작은 돼지, 이목구비가 뚜렷한 돼지, 코에 검은 반점이 있는 돼지, 눈가가 검은 돼지. 외모가 다 달랐다. 똑같은 돼지는 한 마리도 없었다.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성격과 성향도 각기 달랐다. 지쳐서 옆으로 누워있는 돼지, 엉덩이만 붙이고 좌식 상태로 앉은 돼지, 바깥공기를 마시기 위해 적극적으로 창밖에 코를 내미는 돼지, 물을 마시길 원하는 돼지,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돼지. 끊임없이 비명을 내뱉는 돼지.

정형 행동을 보이는 돼지들도 있었다. 트럭 뒤 철창을 위아래로 흔드는 돼지. 쇠창살을 입으로 무는 돼지. 함께 실린 다른 돼지의 다리를 무는 돼지. (정형 행동은 의미와 목적 없이 반복하는 행동으로 동물원이나 농장에 갇혀 사는 동물들에 흔히 나타난다.)
 

지쳐서 쓰러진 돼지 ⓒ 이현우

 
단 한 마리도 편안해 보이는 돼지는 없었다. 돼지들에게 지옥은 죽은 뒤에 가는 곳이 아니다. 살아서 네 발로 딛는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이다. 나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지옥을 지켜봤다. 영화 <혹성탈출>의 장면들이 스쳐 갔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이 트럭 안에는 어떤 동물이 갇혀 있을까. 

* 비질(vigil)은 Animal Save Movement 단체에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활동입니다. 비질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한 번 참여해보길 권합니다. 비질은 서울애니멀세이브(Seoul Animal Save)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애니멀세이브의 임무는 모든 도살장을 지켜보며 모든 착취당하는 동물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비질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페이스북 서울애니멀세이브 계정(https://www.facebook.com/seoulanimalsave)으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 계정에 동일한 글을 발행하였습니다.
#서울애니멀세이브 #동물권 #돼지 #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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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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