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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의식 없던 젊은이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분"

[인터뷰] 함석헌기념사업회 목성균 이사장

등록 2021.03.22 09:56수정 2021.03.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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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함석헌 ⓒ 함석헌기념사업회

 
올해는 사상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함석헌(1901-1989) 탄생 120주년이다. 나는 10년 전 그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함석헌이 이 땅에 남긴 정신적 유산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 "나는 이제 기독교인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흘렀다. 함석헌은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70~80년대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고 장안에도 소문한 자자한 '유명인'이었다.

그러나 요즘 세대 중 함석헌 이름 석 자를 아는 이들은 아주 드물다. 양초가 자기의 몸을 태워 어두움을 밝히듯 어떻게 보면 함석헌 이름 석 자를 아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함석헌이 자기의 삶을 바쳐 이 땅에 이룩하고자 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감별해 보는 것일 것이다. 지난 10일부터 20일까지 함석헌기념사업회 목성균 이사장이 본 함석헌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함석헌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계기는? 그리고 당시 함석헌의 어떤 면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나?
"대학 2학년 때인 지난 1973년, 고등학교 동기이자 친구인 조소야를 통해 함석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씨알의소리>를 보기 시작했는데, 특히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되었다.

하루는 마음먹고 그 친구와 함께 함석헌 선생 원효로 집을 찾아갔었다. 마침 점심때였는데 처음 찾아온 사람인데도 함께 점심을 먹자 하시어 아마 마루에서 함께 먹게 되었다. 내가 원래 수줍음이 있어, 내게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함 선생 댁 방문이었고, 그러기에 그때 장면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지난 1972년 대학에 입학해 다니면서 보고 느낀 함석헌은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1972년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했는데, 당시는 1971년 10월 위수령과 1972년 10월 비상계엄에 이은 유신체제이어서 시국에 대한 표현은 극도로 억제되었을 때였다. 그런데 1973년 10월 2일 문리대 앞 교내 마로니에 광장에서 이 긴 정적을 깨는 신호탄으로 시위가 일어났고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학내로 강제 진입한 경찰에 의해 그 자리에 있던 그저 들풀이었던 많은 학생이 연행되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그들 중에는 1974년 민청학련사건까지 연관되었던 친구도 있었다.

당시 운동권 친구들이 행동근거로 삼았던 것은, 경제를 기반으로 한 노동자주와 사상을 기반으로 한 민족자주였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경제와 사상보다는 더 근본적인 이유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기에, 이후 내적 성찰 과정을 거치며 함석헌 선생의 뜻을 더 찾게 되었다.


실제 경제와 사상의 기반 위에 행동했던 친구들이 나중에 민중이 아닌 독재의 편에서 정치를 하는 모습을 지금까지도 보고 있다. 경제와 사상 밑에 숨어 있는 개인의 욕심이 우리들의 뿌리에 있는 뜻(참)을 누르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당시 읽었던 <씨알의소리>에 실린 함 선생의 글 중 아직 50년 가까이 내 중심에 남아 있는 인비목석(人非木石)이란 글이 있다.

삼일만세 직전 '이 사회가 지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다 하겠습니까? 하며 울부짖던 사촌 형의 친구 안씨라는 사람이 만세 후 일경의 고문에 정신이 나가 길거리를 헤매는 모습이 눈동자 되어 50년 넘게 나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목석이 돼버린 것이 안타까워 울고 발버둥을 치던 사람이 그 결과로 목석이 돼버렸습니다. 아마 그 대신 목석이던 사회는 살아난 것일 것입니다.'라고 쓰신 글이다. 그 안씨는 욕심이 아닌 참을 찾으려 하였기에 세상이 살아난 것이다.

함석헌은 자신의 올곧고 뿌리 깊은 힘으로, 시대 의식도 없이 평범하게 생활하던 나 같은 젊은이를 생각하는 씨알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분이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함석헌을 단순하게 기념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그러한 변화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이 내가 느낀 함석헌이다."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깨닫게 한다"
 

목성균 이사장 ⓒ 목성균

 
-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이유는? 수학자가 본 함석헌은? 함석헌의 삶이 지금까지 이사장의 삶에 계속해서 미친 영향이 있다면?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수학의 원리를 배우면서 스스로 재미를 붙여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수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대학 진학을 한 것이다.

그리고 대학 1학년 때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주 관심사가 종교와 수학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철학, 역사, 사회비평과 참여까지 그의 인생의 영역을 넓혀간 것을 보며 수학전공의 이유를 더 찾게 되었다. 그의 인생 전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세상의 변화에 용기 있게 대응했다는 면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을 드러내 표현하는 대표적 학문인 수학과 철학이 그리는 세계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둘 다 시작은 직관 또는 선험으로 인정하는 참으로부터 많은 현상을 도출하고, 현상에 대한 우리의 경험으로 다시 그 참을 검증하고 발전시켜 간다. 함석헌의 행동과 사상은 근원에 해당하는 뜻, 즉 참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함 선생이 뜻에서 생각으로 또 생각에서 행동으로 전개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수학은 내게 도움이 되었다.

함석헌은 이렇게 뜻이라는 뿌리에서, 생각이라는 기둥과 가지를 거쳐, 사회공동체라는 열매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함석헌의 삶은 이제까지도 내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려면 내가 실행하고, 또 나의 실행이 동료와 후대에 영향을 미치어 그들이 또한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안다. 이것은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숙제다. 이는 알찬 뜻과 올곧은 생각을 참으로 간구할 때,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 20세기를 살았던 함석헌의 삶과 사상이 21세기를 사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1901년생인 함석헌이 살았던 20세기는 패배적 구한말에 이어, 참담한 일본제국 지배, 남북 민족상잔, 군사독재, 지역감정, 빈부격차의 아픈 시대였다. 현재 살아 있는 많은 중장노년층은 이 20세기 후반의 주인공이다. 함석헌은 비탄에 잠겼던 20세기 후반 세대에게, '우리에게 세계구원의 사명이 있다'라는 희망의 소리를 전했다.

그리고 20세기의 고난의 역사를 거치며 그 희망의 메시지를 받았던 20세기 후반의 주인공들은, 이제 비록 함석헌이 이 세상에 없더라도 마치 함석헌이 그들에게 바통을 넘겼듯이, 21세기의 젊은이들에게 다시 그가 받았던 그 참의 바통을 넘겨야 한다.

그 처절하고 아팠던 20세기 역사의 도전을 참이란 뜻으로 응전하였던 함석헌의 모습이, 21세기의 젊은이들이 세상에 공헌할 사명을 이해하고 굳건하게 나아가는 데 힘이 될 것이다. 스승이 있기에 제자는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스승은 선동하지 않는다.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깨닫게 한다. 그래서 스스로 하늘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함석헌이 1976년 4월 <씨알의소리>에서 말했듯이, 무지와 교만과 악독에 얼어붙은 얼굴을 녹이고, 씨알 그 엄마 품에 우리를 던지어 귀 기울여 한없이 인자한 영원한 씨알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초단파인 씨알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함석헌에게서 받은 참의 바통을 21세기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숙원 작업이었던 함석헌 전집, 올해를 기점으로 단계적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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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왼쪽부터 계훈제, 장준하, 김재준, 함석헌, 이병린 ⓒ 함석헌기념사업회

 
- 함석헌기념사업회는 언제부터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
"나는 1980년 7월 5공 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인한 <씨알의소리> 폐간 전까지는 틈틈이 명동 전진상교육관에서의 함 선생님 성경모임에 참석하곤 했지만, 폐간 후부터는 개인 생활에 전념했다.

이후 2005년 우연히 당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씨알사상연구회' 강좌를 연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이 참석을 계기로 <씨알의소리>를 다시 받아보게 되었고, 함석헌 글 읽기 모임에도 가끔 참여했다. 이렇게 '함석헌기념사업회'와 연관을 가지면서, 2010년 이문영 전 이사장에 이어 문대골 이사장이 책임을 맡으면서 나도 당시 중심조직이었던 '실행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 현재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주요 활동에 대해 소개하면?
"현재 기념사업회는 사무국과 함께 3개의 부설기관이 있다. 51년째 이어지고 있는 '씨알의소리',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씨알사상연구원', 그리고 올해 신설된 '씨알출판문화원'이다. 그리고 함석헌 전집출판 작업이 여러 씨알과 단체들이 참여하는 축제의 자리가 되기 위해, 올해 특별히 '함석헌전집출판위원회' 조직이 신설되었다.

기념사업회는 함석헌 생존 시 씨알들과 소통을 위해 창간된 <씨ᄋᆞᆯ의소리>를 1970년 4월 창간호 이후 2021년 3·4월 272호까지 51년 동안 맥을 이어 발간하고 있다. 그리고 함석헌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월간세미나 형식의 '씨알학당'을 운영하고 있고, 이 내용을 결집해 매년 <함석헌연구>를 발간하고 있다. 2021년 2월, 7집이 <절망의 시대에 만난 함석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동안 <씨알의소리>와 <함석헌연구>는 책자 형식으로 발간되었다. 그러나 씨알들의 소통방식이 지면에서 방송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반영해 작년부터 방송통신시설을 준비하고 올해부터는 유튜브를 활용한 소통을 더욱 활발하게 진행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줌 등을 활용한 비대면 강좌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그동안 숙원 작업이었던 함석헌 전집을 올해를 기점으로 단계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이외의 출판업무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 작년 말 함석헌기념사업회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을 마쳤다. 대외적으로는 '씨알출판문화원' 이름으로 출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울러 2020년부터는 그동안 분화과정을 거쳤던 씨알재단,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연구소, 씨알사상연구소, 씨알여성회 등 함석헌관련단체들과 더욱 긴밀한 협력관계를 강화하려 한다. 이러한 협력은 민주화 및 통일관련단체들까지 범위를 넓혀, 남북통일과 세계평화의 꿈을 이루는 씨알 운동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한 현재 청년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함석헌 저작 읽기와 함께 시대적 과제에 대해 참여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함석헌의 사상과 정신이 새롭게 해석되어 참된 계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어느 사업에 우선해 이러한 젊은이들의 자체적인 노력을 지원할 예정이다."

- 올해가 함석헌 탄생 120주년인데 기념사업회에서 특별히 계획 중인 행사가 있나?
"올해 3월 13일 함석헌 탄생 120주년 기념행사는 <씨알의소리> 51주년 행사와 함께 진행하기로 하고, 기념식을 4월 17일(토)에 열기로 했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강연과 함께 함석헌의 생전 영상을 모은 기획 영상을 제작해 기념할 것이다. 그리고 2005년 '씨알재단'을 필두로 점차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연구소', 씨알사상연구소 등으로 분화된 관련 단체들의 회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화합의 마당을 차리려 한다.

또한 해외의 씨알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는 '함석헌사상연구회'라는 페이스북과 탤레그램 단체그룹도 있다. 이러한 국내외의 씨알모임들이 현재 코로나 상황을 반영해, 비대면 회의 도구를 통해 비대면으로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해외 함석헌사상연구회의 대표가 비대면 영상으로 이번 행사에서 축하 인사도 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함석헌 #함석헌기념사업회 #목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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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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