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정책, 더 늦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주장] 비급여의 체계적·집중적 관리 절실

등록 2021.03.23 17:16수정 2021.04.0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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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인류의 희망인 '건강'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몸과 마음의 참살이(well-being) 추구를 통해서 인류의 행복과 공존을 위한 다양한 일을 추구할 수 있는 완전한 상태(세계보건기구)로 정의(定義)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형태로 정의되는 건강을 추구하기에는 보장의 수준이 많이 부족하다. 역사적으로 건강은 국가차원의 정책·제도적 노력으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이지만, 일부 복지선진국들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수준이하의 의료보장과 건강불평등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중의 건강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건강의 본질과 괴리된 상태가 지속되고, 결국 관련 집단의 이해관계가 고착되어 바꾸기 어려워진 경우가 많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국민건강보험과 상충되는 실손의료보험이 국민보험처럼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렇다. 또한 이론상으로 국민건강보험에 보완적인 암보험 역시 우리의 현실에서는 '간접치료'라는 의학적 근거가 없는 용어를 내세워 주치의도 인정하는 암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건강한 사람도 하기 힘든 투쟁을 암환자들이 사보험사를 점거하고 2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에서 2017년 8월,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문재인 케어'를 선언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후 누적되어있던 국민건강보험 적립금을 '비급여의 급여화'에 지속적으로 쏟아 부었으나, 현재 65%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장률이다.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취약계층의 가계부담 증가를 줄이기 위한 의료비통제의 차원에서도 비급여의 관리는 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의 존립을 위한 핵심적인 과제였다. 이후 코로나19 감염병의 국가적 위기로 인한 대다수 국민들의 피해를 고려할 때에 현재의 보험료 부담은 소수를 제외하면 적정수준을 넘어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으며, 감염자 수의 증가 또한 지속되고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비급여의 체계적·집중적 관리가 더 절실하다.

의료산업화의 흐름속에서 과학적 또는 임상의 경험적 근거가 부족한 의료행위와 약, 그리고 의료기기의 규제가 완화되어 '비급여'로 제공되고있는 경우가 많다. '급여'로 대체가 가능한 부분에 대한 '비급여'의 활용으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는 얇아지며, 급여가 되는 영역에 비해서 환자건강상의 부작용이나 피해가 크기 때문에 문제다.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의 제공시, 국민건강보험의 급여행위와 비급여행위를 혼용하더라도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비급여가 줄고, 국민건강보험의 급여범위가 확대되더라도 실제 의료비는 크게 절감되지 않는 한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비급여가 줄어들어서 공급자의 수입이 줄어들면, 부족한 수입을 늘리기 위해 급여화가 되어있지 않은 다른 비급여들을 더 늘리게 되는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한 결과다. 비급여의 남용은 의료비로 인한 부담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실손의료보험과 의료급여가 없는 저소득층에게는 악영향이 크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의료급여가 보장하는 인구집단의 범위가 매우 좁다.

모든 비급여를 제거하지 못하고 '비급여의 급여화'만 기약없이 지속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우리나라의 비급여 항목은 적게 잡아도 15000항목이 넘는 매우 놀라운 수준인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하고 있는 것은 몇백 개뿐이다. 우리나라는 의료공급자가 자유롭게 비급여 항목을 만들고 가격을 정할 수 있는 비급여의 자유방임국이다. 그것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을 올리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이며, 문 케어 이후 지금까지의 결과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들이붓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관련해서 국민건강보험 '급여'에 추나요법과 첩약의 일부가 추가된 한방의료는 극히 일부로 보이는 다른 문제도 있다. 첫 진료 전에 사전검사와 한약이 '비급여'인 것을 인지하였음을 문서에 서명한 환자만이 한의사를 만나서 진료를 받을수 있는 비급여 행위가 대부분인 사실상의 영리한의원이 존재한다.

더 큰 문제는 한의원에서 자체적으로 여러 약재를 혼합하여 만든 비급여 한약의 재료가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있는지를 알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성분 및 원산지, 그리고 부작용을 찾아 볼 수 있는 처방전을 제공하지 않으며, 여러 약재가 어떤 비율로 혼합되어 복용될 것인지에 대해서 당사자인 환자가 한의사에게 물어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한편 경제정의실천연합의 2016년~2019년 건강보험보장률 조사결과를 보면, 보장률이 높은 상위의 5개 병원은 서울대학교병원을 포함하여 모두 국립이며, 하위 5개 병원은 모두 사립이다. 표면적 결과는 국립과 사립의 차이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비급여의 활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확실한 해석일 것이다. 한번 진입된 진료행위의 퇴출경로나 재평가가 없고, 대체가능한 신규행위가 진입되더라도 항목수가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는 비급여 항목이 적게 잡아도 무려 1만5000개가 넘어간다. 공공의료기관이 아니면 비급여를 많이 활용했을 때에 보상이 주어지거나, 개원의 경우는 스스로 보상하는(비급여 활용을 늘리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전체 급여비용의 70%가 넘는 비용이 '진료행위료'이며, 1977년 의료보험 도입이후 '진료행위의 수'는 크게 증가했다. 대부분이 행위별수가제의 적용대상(요양병원정액제와 포괄수가제 제외)이다. 의료기관종별, 진료과목별 보상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진료행위가 증가되고 세분화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관리방식은 복잡해 질 수밖에 없으며, 진료행위의 남용 또한 억제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의료보장의 거시적 효율성이 확보될 수 있는 총액관리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부분의 의료공급자들이 공공의료에서만 의료를 공급하게 하는 극단적인 방법도 이론적으로는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시킬 수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거나 옳은것도 아니다.

더 늦기 전에 '급여'로 대체가 가능한 '비급여'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특단의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통합' 전후로 구분되던 우리 국민건강보험(의료보장)의 역사가 2022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새롭게 구분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아직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해당사자 집단들의 협동과 협력의 수준이 성공적인 개혁을 지속적으로 담보할 만큼 높게 형성될 수 없는 경우에 정치적인 힘이나 전략에 따른 결정보다는 이해당사자 집단들의 노력이 일상적인 사회·정치적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통해 형평성 있게 분담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상과 비슷한 수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해당될 것이다.

제도화된 공론의 장을 통해서 집단적 성찰의 과정을 거친 지속적 혁신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지지가 일상적으로 형성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어려운 사회적 문제들의 해결이 더 이상 난제(難題)라는 이름으로 남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천부적(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하는) 존엄성을 확인시키는 의료보장이 추구하는 공익과 공공선에 대한 강력한 정치·사회적 합의가 형성된다면, 이어지는 뚜렷한 목표에 따른 체계적인 계획을 통해서 관련 정책·제도의 성공은 현실에서 '가능한 미션'이 될 것이다.
#의료보장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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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정책학 박사. 저서로 <참여정부는 아직, 미완이다. 격변의 소용돌이를 넘어서, 거대한 인류사적 변화를 주도하자!>, <보건의료정치학 2022>, <미래 인구·사회 변화에 따른 행복국가 체제로의 지구적 전환>, <보건의료의 정치학 2018>, <한국 현대의료의 발자취>, <우리나라 근·현대 여성사에서 여의사의 활동과 사회적 위상>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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