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매립지 때문에 십여 년간 쪼개졌던 마을, 공동체 회복 '첫발'

창원마산 수정마을... 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 나서 '마을회복추진위' 대화 자리 마련

등록 2021.03.27 15:43수정 2021.03.27 15:43
0
원고료로 응원
a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마을 표지석. ⓒ 윤성효

a

창원마산 '수정마을공동체회복추진위원회'는 3월 27일 마산회원구 구산면 수정마을에 있는 구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마을주민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주민들이 '단합'을 결의하며 주먹을 쥐어 보이는 모습. ⓒ 윤성효

 
십수년 전 조선소 건립 여부를 두고 찬성과 반대로 쪼개져 공동체가 파괴되었던 마을이 드디어 치유·회복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창원마산 구산면 수정마을 주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한때 찬성-반대 주민들은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수정만 매립지를 두고 갈등을 겪은 것이다. 옛 마산시(현 창원시)는 1990년대 수정만을 매립해 서민아파트 공급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가 옛 마산시는 2006년 STX와 '조선소 기자재 공장 설립 약정'을 맺은 것이다.

마을에는 '수정뉴타운추진위'와 '수정마을주민대책위'가 각각 만들어졌다. 옛 마산시는 마을발전기금과 위로금을 제시했고, 주민투표도 벌어졌다.

반대주민들은 2007년부터 2011년 사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주민들은 옛 마산시청 앞과 STX 서울 본사 앞 집회에서 1인시위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STX는 '수정만 조선소 유치 포기'를 선언했고, 당시 박완수 창원시장은 '수정산업단지 폐지'를 공식화했다.

현재 매립지(7만여 평)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이 비어 있다. 이 땅은 STX 소유로 있다가 채권단인 농협이 매각을 시도했지만, 3차례 유찰되었다. 매립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현재 남아 있는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다.


이런 가운데 갈라진 마을주민들의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경남도의 온라인 정책제안 플랫폼인 '경남1번가'를 통해 '수정마을 공동체 회복 정책지원 요청'이 들어왔던 것이다.

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이 나서 전문가와 주민들까지 참석해 몇 차례 '워크숍'이 열렸고, '수정마을공동체회복추진위원회'가 결성된 것이다.
  
a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마을 매립지. ⓒ 윤성효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수정마을공동체회복추진위는 26일 전문가 워크숍에 이어 27일 오전 수정마을에 있는 구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주민 등 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을주민과 대화"가 있었다.

이날 주민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원탁회의'를 열었고, 이어 전체 참석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과거 매립지의 조선소 공장 건설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했던 주민들이 함께 했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단합', '소통', '치유', '발전'을 강조했다. 주민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먹을 쥐고 다짐하기도 했고, 한 주민은 "자꾸 과거 일 들추면 안된다"며 다그치기도 했다.

김말연(81) 할머니는 "우리 마을은 홍합을 생산에 먹고 사는데 이를 활용한 시장이 조성되었으면 하고, 고추와 마늘 등 밭농사가 잘 되도록 시장이 섰으면 한다"고 했다.

김 할머니 등과 이야기를 나눈 박은희 제주대동호텔비아아트 대표는 "함께 이야기를 나눈 주민들은 이런 자리 마련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며 "미래 아이들이 모여들고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생겨나기를 바라고 있으며, 숲을 가꾸어서 사람들이 모여 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주민 이갑영(65)씨는 "동네에 수입이 늘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건강도 생각해야 하고, 산과 바닷가로 해서 둘레길을 만들었으며 한다"고 했다.

주민 성영이(62)씨는 "매립지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 마을의 미래가 중요하다. 매립지를 그대로 둔다면 마을은 '유령동네'가 될 것이다"며 "후손들이 이곳에 와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 주민들이 했던 사물놀이를 다시 했으면 하고, 마을에 있는 목욕탕을 '마을 기념관'으로 꾸며 사진 등 기록을 전시했으면 한다"고 했다.

주민 채막이(64)씨는 "침체되어 있는 초등학교에 다시 활기가 돋아났으면 한다"고 했다.

윤인혁(84) 할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니 반갑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모였는데, 그렇게 하면서 무엇보다 '단합'이 제일 중요하다. 단합이 안되면 아무리 좋은 발전 방안을 내더라도 안된다"며 "홍수피해대책이며 하천 복구, 주차장과 인도 설치, 도로 확장 등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우선 주민 소통이 돼야 한다"는 말부터 한 박외동(70)씨는 "매립지 7만 평 땅을 당장에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그냥 놀리지 말고 해바라기나 유채꽃을 심어 축제라도 열면, 인근 관광지와 연계를 할 수 있을 것이다"며 "사람들 사이에 인정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옛날처럼 서로 '할매' '할배' '형님' '아우'라 부르며 지날 때가 좋았다.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a

창원마산 '수정마을공동체회복추진위원회'는 3월 27일 마산회원구 구산면 수정마을에 있는 구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마을주민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 윤성효

a

창원마산 '수정마을공동체회복추진위원회'는 3월 27일 마산회원구 구산면 수정마을에 있는 구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마을주민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 윤성효

 
구영옥(주민)씨는 "서로 마음을 열고 단합했으면 한다. 무슨 일이든 합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 마을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외부 (전문가) 경험도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김구열(주민)씨는 "할 말이 많다. 매립지에는 환경 오염 없는 최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야 한다. 공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안되면 인근에 연륙교나 드라마세트장, 로봇랜드와 연계한 관광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매립지 문제에 대해서는 마을주민이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경남도와 창원시가 나서야 한다"며 "마을공동체를 만들어서 무조건 잘 되면 좋겠지만, 무엇이든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발언이 끝나고 나면 모두 두 팔을 들어 '양손 들고 반짝반짝'하면서 "수정 다시 빛나리"를 외쳤다.

'주민과 대화'를 진행한 정은희 경남대 교수는 "주민들이 대체로 밝힌 말은 안전, 관광, 일자리, 교통, 도로 확장 등이다"며 "이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소통, 단협, 협조를 통해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시작했으니 10회, 100회가 걸리더라도 논의하면서 합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주민들이 있어야 관계전문가도, 응원가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난실 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장은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행정이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토론하고 합의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게 긴 고통의 시간으로 된 거 아닌가 싶다"며 "행정을 불신하고 정치하는 사람들을 못 믿겠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단합과 소통을 주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단장은 "매립지 문제는 긴 숙제다. 당장 해결이 안될 것이다.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우리한테 있다는 걸 확인했다"며 "오늘 나누었던 이야기를 경남도에 보고하고, 고통을 털고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을 나누도록 행정과 경남도의회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정마을공동체회복추진위는 오는 4월 17일에 이어 계속해서 '주민 워크숍'을 갖기로 했다. 김석호 경남대 교수는 "주민 공동체 워크숍을 계속 열어 늦가을에는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며 "수정마을 발전을 위한 좋은 생각들이 한데 모아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송순호·이옥선 경남도의원, 지상록·전홍표 창원시의원, 창원시청 관계자 등이 함께 했다.

김경수 지사 "공동체 회복해서 주민이 주인돼야"
  
a

김경수 경남지사는 3월 26일 마산 수정마을에서 열린 '마을공동체 회복, 전문가 워크숍'에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 경남도청

 
한편 첫날 '전문가 워크숍' 장소를 방문했던 김경수 도지사는 인사말에서 "외부나 개발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 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상처받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 수정마을"이라며 "행정이 나서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방식으로는 수정마을 주민들의 상처가 치유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 김 지사는 "전문가들이 해주시는 말씀이 수정마을이 어디로 가야될지에 대해서 중요한 지침이 되고 나침반이 될 것"이라며 "마을 주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회복해서 주민들이 주인이 돼서 마을을 살려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a

창원마산 '수정마을공동체회복추진위원회'는 3월 27일 마산회원구 구산면 수정마을에 있는 구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마을주민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윤난실 단장. ⓒ 윤성효

a

창원마산 '수정마을공동체회복추진위원회'는 3월 27일 마산회원구 구산면 수정마을에 있는 구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마을주민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 윤성효

#수정마을 #수정만 #마을공동체 #경상남도 #김경수 지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4. 4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5. 5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