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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간 녹음한 소리만 450여개... "민속학자는 내 팔자"

[인터뷰] '공주의 소리 1. 2.' 펴낸 민속학자 이걸재 ①

등록 2021.04.12 16:53수정 2021.04.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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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서 34년 동안 채록한 향토소리 450개와 기존에 파악되어 있던 150여 곡을 합해서 이번에 '공주의 소리 1.2.' 책으로 펴낸 이걸재씨. ⓒ 조우성

 
공주 문화원 부원장을 지낸 민속학자 이걸재(64)는 지난 34년 동안 충남 공주에서 채록한 450여 곡의 소리와 기존에 있던 150여 곡을 합쳐 최근 책 <계룡산의 울림 공주의 소리>와 <금강 여울 공주의 소리>를 출간했다. 이 책은 녹음 상태가 양호한 161곡을 QR코드로 만들어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일반인이나 민속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외에도 민속 관련 책을 8권이나 발간했던 이걸재는 공주시청 공무원 출신으로 18년 동안 문화예술 분야에만 종사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신풍면 선학리 지게놀이' 등 충남 무형문화재 5종목을 등록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필자는 지난 1월에서 4월까지 수차례 걸쳐 이걸재를 만나 이번에 출간한 책 <공주의 소리>뿐만 아니라 파란만장했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만난 판소리꾼 박동진 명창과 인기 소리꾼 장사익, 천재 피아니스트 임동창, 민속학의 대부 심우성과 얽힌 이야기도 나왔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이번에 <계룡산의 울림 공주의 소리>와 <금강 여울 공주의 소리>를 출간하셨죠. 책에 실린 곡들이 무려 600여 개나 되는데, 이걸 모두 직접 채록을 하신 건가요?

"다 한 건 아니고요. 다른 분들이 채록한 것도 포함됐어요. 600곡 중 150곡은 옛날에 채록한 것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만든 것, 기존 도서에 실린 소리들이에요. 나머지 450곡 정도를 제가 직접 공주에서 채록했어요. 기간으로 보면 한 34년 동안 조사하고 채록한 것을 이번에 책으로 발간한 거죠."

- 책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직접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책을 읽다가 QR코드를 스캔하면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게 녹음 상태가 양호한 161곡을 골라서 QR코드를 심었어요. 어떤 분이 그러데요. '나는 책 한 권을 다 읽어 본 기억이 없는데, 이 책은 음악 듣는 재미가 쏠쏠해서 책을 다 읽었다고.' 동요 41곡은 아이들 7명을 모아서 재미있게 놀이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QR 코드를 넣었어요.

민속학자나 향토민요를 연구하시는 분들은 이 책 한 권으로 소리를 다 들어볼 수도 있고, 민요의 흐름을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어 좋다고 해요. 고려대학교 유영대 교수는 '이 책에 향토소리꾼 74명에 대한 인적사항과 이야기가 담겨있고, 악보도 들어있고, QR 코드로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앞으로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고 이야기 해 주셨어요."


- 600곡이 들어갔으면 공주의 향토소리는 거의 다 넣은 건가요.

"아니요. 알고도 넣지 못한 분야가 2개 있어요. 하나는 MBC 라디오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에서 채록하고 정리한 공주 소리 40곡과 시조 100곡 정도를 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향토 소리로 분류할 수 없는 판소리도 빠졌어요. 경기민요, 서도소리, 육자배기, 전라도 소리, 외지에서 들어와 부르는 사람들의 소리 등 현시대에 어떤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를 기록해 두면 좋은데, 거기까지는 못한 거지요."

- 다른 책도 많이 쓰셨는데, 총 몇 권 정도 되나요?

"여덟 권 정도 썼어요. <공주의 두레> 책은 두레 문화가 우리 농촌 사회의 뿌리가 되는 거라 썼구요. 공주시 광정에 기지시 줄다리기만큼 큰 줄다리기가 있어요. 여기 말로 강다리긴데, 이에 대한 책인 <광정 강다리기>가 있고요. 금강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민속이나 생활사 이야기를 묶은 <금강과 사람들>이 있고요. <공주의 소리꾼과 생애>라고 공주소리꾼들 중 지금 살아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썼구요. 공주의 생활용어나 민속어, 사투리를 모아서 <공주말 사전>도 냈습니다. 예산에 채록을 많이 다녀서 <예산의 소리>도 한 권 발간했네요.

- 민속학자가 된 특별한 계기나 인연이 있나요?

"팔자예요. 제 처음 인연은 아버님입니다. 우리 아버님이 면 내에서는 알아주는 소리꾼이셨어요. 농요, 일 노래도 잘했고, 상여 행상 소리도 잘하셨고, 판소리 몇 대목, 단가도 불려 다닐 정도로 잘했어요. 아버님 영향으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소리 잘하는 아이로 컸어요."

- 아버님의 영향이 컸군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방과 후에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지나가던 선생님에게 끌려가 회초리로 많이 맞았어요. 그 노래가 '난봉째' 소리였는데, 가사가 바람 피우는 얘기였어요. 내용이 불온하다고 때린 건데, 저에게는 무지한 충격이었죠. 그때는 학교 선생이 존경 받았잖아요. 선생님이 노래를 하지 말라고 해서 그 뒤로는 우리 아버지가 부르는 모든 노래가 한순간에 싫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동네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집에 들어와서 혼자 울었어요."
  

이번에 출간한 '계룡산의 울림 공주의 소리 1'과 '금강 여울 공주의 소리 2'. ⓒ 조우성

 
- 노래 가사가 좋지 않다고 해야 되는데, 노래 자체를 아예 하지 말라고 했네요.

"네. 하지 말아라 그랬어요. 그래서 민요를 아주 싫어하는 아이가 되었죠. 어느 날 아버님이 '내 방으로 넘어 오너라' 해서 갔는데, 아버지가 공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받아 적게 하는 겁니다. 한 곡씩 들려주시며 적어라고 하는데 저는 하기 싫었죠. 선생님이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왜 이러나 싶었어요. 말은 못하고, 하기 싫어서 몸을 배배 틀어가면서 적었는데, 아버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싫었겠어요.

아마 아버님은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서 하신 일인데 나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있었으니... 아버님이 '목련가'라는 노래를 불러주마 하시더니, 내가 하는 꼴을 보시고는 눈물을 주루루 흘리시더니 "그만하자. 넘어가거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데요. 그때는 그게 어떤 일인지 몰랐지요. 어떻게 알겠어요, 그 나이에. 아버님이 그 해 10월에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이게 무지 중요한 거였어요. 그래서 공책을 잘 챙겨 두었는데, 이번 책에 넣었습니다."

- 아버님와 가슴 아픈 추억이 있었군요.

"또 우리집 위에 심우형이라는 사람이 살았어요. 이 분 아버지가 몽양 여운형 선생의 동서인 심진석씨로, 몽양 선생과 독립운동도 같이 했고, 해방후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6.25 때 북한으로 올라가다가 별세했어요. 심우형씨는 당시 유성농고를 나와 빨갱이로 몰린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공무원 시험도 볼 수 없었고, 그냥 음악을 하며 살았어요. 작사 작곡도 잘 하고, 클래식 기타도 잘 쳤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노래를 만들면 나에게 가르치는 거예요. 정성껏 배우지 않아서 노래 2곡만 기억나는데, 이 양반이 34살에 요절했어요. 제가 심우형씨를 통해 얻은 것은, 노래가 주는 위안의 가치예요. 그 분이 '로망스'라는 곡을 클래식 기타로 뜯으며 자기 인생을 노래했어요. '생명의 불꽃은 너무나 희미해. 정열로 불태울 인생을 배우리. 사랑도 눈물도 끝없는 번민도. 마지막 남은 나의 목숨까지도...'. 이 가사가 그 사람의 인생이었어요."

- 공주시청 공무원으로 18년간 문화예술계 일만 하셨다고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문화예술 행정을 담당하며 백제문화제 전반을 맡아서 진행했고, 그 후에는 문예회관에서 기획계장을 하다가 석장리 박물관 관장을 끝으로 퇴임을 했지요. 그렇게 18년을 보냈어요. 제가 문화예술계를 떠나지 못한 것은 백제문화제와 민속예술 두 가지 일 때문에 그랬어요. 백제문화제 업무를 맡고 보니 돈 지급, 공연시간 배정 등 역할이 중요했어요. 그걸 잘하기 위해서 문화예술진흥원 등을 찾아다니며 교육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1996년도에 '내가 이 자리에서 행정주사보(7급 공무원)로 정년을 하더라도 백제문화제를 한국 최고의 축제로 만들어 놓자. 그거라면 내 공무원 생활을 바칠 만하다'고 결심하고 백제문화제에 집중했었죠."

-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를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하셨다고.

"스승 심우성 선생이 '민속을 보존하고 오래 가게 하는 법은 하나뿐이다. 무형문화재를 만들어라'고 가르침을 주셨어요. 제가 첫 번째로 충남 무형문화재를 등록한 것이 '우성면 봉현리 상여소리'입니다. 두 번째가 '신풍면 선학리 지게놀이'. 세 번째가 '의당 집터다지기'. 네 번째가 '하대리 칠석제'입니다. 타지역으로 세종시의 '용암리 강다리기'가 있어요. 총 다섯 개를 등록시켰죠. 무형문화재 등록하는 데 한 5년 걸립니다."

- 민속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지금 하는 일도 세월이 지나 100년 후에는 민속이 되고 역사가 되잖아요. 세월은 끊임없이 흐르는 거구요. 그래서 '민속은 네 꺼다, 당신 꺼다. 당신의 삶이 곧 민속이다'라고 정의하고 싶네요. 그러므로 과거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인 민속을 소중히 생각하고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

- 더 내고 싶은 책이 있습니까?

"꼭 내고 싶은 것이 두 권 있습니다. 하나는 금강에 기대며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배를 띄웠고, 물고기는 어떻게 잡았고, 동제와 기우제는 어떻게 지냈는지 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책에 담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윷놀이 종류 54종을 조사해 놓은 것을 책으로 발간하고 싶네요."

이걸재 주요 이력

- 전 석장리 박물관장
- 전 공주 문화원 부원장
- 공주 향토문화연구소 회원
- 공주아리랑 연구회 대표
- 논두렁 밭두렁. 의당집터다지기 보존회 예술감독
- 전 2016 세종시민속의해 사업 예술감독
#이걸재 #공주의 소리 #목련가 #심우형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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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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