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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사주를 타고 난 어머니와 또 싸웠습니다

이겨야 할 곳에서 이기지 못하고, 져야 할 곳에서 지지 못하는 못난 아들 이야기

등록 2021.04.30 07:21수정 2021.04.3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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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옆에 와 서신다. 싱크대에 볼 일이 있으신 모양이다. 뭐 필요하신 거 있냐 물으니, 괜찮다며 그냥 하던 거 계속 하라신다. 옆에 서서 물끄러미 내가 그릇 씻는 걸 지켜보신다. 세제로 음식물 찌꺼기를 닦아내고 흐르는 물에 거품을 손으로 씻어내며 헹군다. 그걸 건조대에 올리는데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신다.


"그게 다 한 거냐. 그리하면 안 된다. 세제 찌꺼기가 그대로 남았을 텐데 그걸로 어찌 밥을 먹냐."
 

우리가 싸우는 이유 설거지 같은 하찮고 사소한 문제로 가족들은 싸운다. 너무 사랑해서다. ⓒ 이상구

 
설거지 방법론

어라, 설거지야 모두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었나, 그럼 어떻게 하냐고 되묻는다. 어머닌 거품도 깨끗하게 빤 수세미로 헹궈내야 한다고 하신다. 난생처음 듣는다. 그냥 못들은 척하고 하던 대로 한다. 어머니는 당신이 할 테니 그 자리에 그냥 놓아두고 비키라고 성화를 하신다. 몇 번 더 짜증내듯 채근하신다. 결국 나는 닦던 그릇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쿵쾅거리며 자리를 비킨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결국 오늘 또 한바탕 한 거다. 어머니는 심장 수술을 하신 환자다. 놀라게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이 못나디 못난 아들은 툭하면 울끈불끈이다. 제 성질 남 주지 못한다는 말은 과연 틀리지 않는다. 누구의 조언대로 화가 나면 숨 죽여 열까지 세어보자 마음은 먹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오면 까맣게 잊고 만다.

어머니는 장군사주를 타고 나셨다고 했다. 그것 아니더라도 내가 겪어 본 당신은 웬만한 남자보다 위다. 할 말은 반드시 하고 따질 것은 꼭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다. 고집도 세다. 나는 그런 분의 장남이다. 그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게다가 사주에 불(火)이 세 개다. 그 성질머리 참 고약하다. 그런 둘이 모여 사니, 집안 분위기는 늘 아슬아슬하다.

싸우는 이유도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니다. 조금 전처럼 설거지 따위로 싸운다. 무조건 내 잘못이려니 하지만, 어머니에게 야속한 심정은 숨길 수 없다. 당신은 도대체 매사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저 못 본 척 넘어가면 될 일을. 사사건건 참견하시고 지적하신다. 당신이 마음먹은 대로 돼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다. 솔직히 나는 그런 게 싫었다.


난 우리만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록그룹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그랬다. "우리(팀원)는 가족이에요. 그래서 싸우죠. 가족은 늘 그래요."(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중) 자신의 방황과 일탈로 팀이 해체 위기를 맞았을 때 다른 멤버를 불러달라고 하자 힘들 것 같다며 걱정하는 매니저에게 했던 말이다. 가족이니까 싸운단다. 정말? 왜?

싸움에 관한 단상

인간은 싸운다. 애당초 날 때부터 그렇게 프로그래밍 돼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타고 난 거다. 특히 누군가와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맹렬하게 싸운다.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누리고 싶어한다. 남의 것을 뺏으려 시비를 걸고, 내 걸 지키려 싸움에 응한다. 이른바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이다. 인간의 역사가 그래왔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다.

재산이 많은 집안도 그런 것 때문에 싸운다. 그 다툼의 양상은 일반적인 상식선의 밖에 있다. 가족이 맞나 싶게 서로를 음해하고, 욕설과 비난이 난무한다. 폭력을 동원하고 급기야 상대방의 비극적 결말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들의 시조 카인이 그랬던 것처럼. 피를 나눈 형제들이면서 단지 돈 때문에 그런다. 가장 고등한 포유류라는 인간의 가장 멍청한 단면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재산이 많은 집안이다. 우리 집은 전혀 아니다. 가진 것도 없고 식구라야 어머니와 나, 달랑 둘뿐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병중이시고, 나는 낼모레 환갑이다. 그럴 일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특히 나는 그러면 안 된다. 그러니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이를 이리 먹고서도 여전히 철이 들지 않은 거다.

핑계 같지만 어쩜 그건 내가 경쟁사회의 생리에 지나치게 잘 길들여져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거기선 늘 내가 이겨야 하고,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어야 하며 여하한 것이라도 내가 주도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보다 우위의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 그런 잔혹한 경쟁의 논리가 몸에 배어 있다 보니 어머니와 대화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런 게 삐죽 튀어나오는지도 모른다는 거다.

나 같은 인간에게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이렇게 조언한다.
 
세상의 큰 문제들은 이기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지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다. (중략) 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져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져야 한다. (중략) 지는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직함이 있고, 여유가 있으며 따뜻함이 있다.
- 중앙일보 4월 7일자 28면, '지는 연습' 중
 
나는 그가 말하는 '지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실은 그저 '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이다. 그렇게 발버둥은 치지만 승률은 언제나 0에 가깝다. 형편없는 선수다. 그런 자는 그런 패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공연히 다른 곳에 풀려 든다. 그럴 때 제일 만만한 것이 가족이다. 나는 그걸 어머니께 푸는 건지도 모른다. 그 나이 많고 병약한 어머니에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설거지를 마치신 어머니가 방에 드시기 전에 한 마디 하신다.

"내 살면 얼마나 살겠냐. 나 가고 너 혼자 남았어도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는 건데. 넌 참."

난 저런 분과 싸운 거다. 이 한심한 아들은 이겨야 할 데서 이기지 못하고 져야 할 데서 공연히 힘자랑이나 한 거다. 이런 인간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러니까 프레디는 틀렸다. 가족이라 싸우는 게 아니다. 인간이 못났으니까 싸우는 거다.
#싸움 #가족 #지는인간 #못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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