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거리에 턱을 없애주시오", 그 후 37년

비장애인의 이동수단으로 생긴 새로운 장애물... 법사위와 개인의 인권 감수성 증진돼야

등록 2021.05.24 17:48수정 2021.05.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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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거리에 턱을 없애주시오."

1984년 9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었던 김순석씨는 서울시장에게 이와 같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그의 죽음 이후 1998년에 장애인 등 편의법(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장애인의 이동권은 여전히 보장되고 있지 않다. 지난 2017년 10월, 지체장애인 고 한경덕씨가 신길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다 계단 아래로 떨어져 사망하였다. 

그리고 2020년 장애인실태 조사 결과, 코로나는 외출 빈도 감소 등 장애인의 이동에 더욱 악영향을 주었다. 병·의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경우는 2017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상승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공유킥보드 서비스는 코로나 창궐 속에서도 비장애인의 이동을 편리하게 도우며 급격히 성장하였다. 공유 킥보드는 혼자서 이용할 수 있으며, 택시나 자가용의 단거리 이동 수요를 대체하고 있다. 원하는 곳 어디든 세워놓기만 하면 반납 처리된다는 점은 공유 킥보드의 큰 장점이다.

그러나 비장애인에게 '자유로운 반납'이라는 공유킥보드의 장점은 장애인에게 이동권의 위협으로 돌아온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로부터 "점자블록 위에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흰지팡이(시각장애인이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흰 색깔의 지팡이)가 부러지고 다리가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지하철역 입구 점자블록 위 자전거 주차로 걸려 넘어지고 옷이 얼룩졌다"와 같은 민원이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점자블록 위 킥보드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급증하는 실정이다.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바닥에 설치되어있다. 때문에 그 위에 장애물이 설치되어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2018년 2월 서울 송파구가 '점자블록 지킴이선'을 설치하였고, 2020년 11월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이하 4차위)가 '전동 킥보드 쉐어링 서비스 주·정차 운영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침일 뿐 법적 효력이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동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의 공유(대여)사업은 정부나 지자체의 인·허가 및 등록 사업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지·자체에게 관리 감독할 권한이 없다.

따라서 국회에서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하여 관련 제도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개정된 법이 또다시 개정되는 경우가 생기며, 공유 킥보드 이용자들의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 지난 5월 13일부터 새롭게 강화한 도로교통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보도주행 시 인명 피해에 대한 처벌 조항만 있고, 지정 주차장소 위반으로 야기된 인명 피해에 대한 처벌 내용이 없다.


횡단보도, 점자블록 등 지정 주차장소를 위반할 시 부과하는 견인료와 보관료는 이용자가 아닌 운영 업체에 부과된다. 형사나 경찰관에 의해 현장에서 직접 적발되어도,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람에게 부과되는 것은 '범칙금' 이기 때문에 한정된 인력과 업무 과중 등으로 경찰 단속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또한 개정 법안 홍보 자료를 살펴보면(한국 교통안전 공단,서울생활정보) '인도 주행 불가' 만 강조되어있고, 주·정차에 대한 내용과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체 설문조사 결과, 점자블록 위의 전동킥보드가 시각장애인의 보행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40.5%이다.

기업의 경우, 전동 킥보드를 타기 위해선 운전면허가 필요하지만 앱 내에서 '인증 사진'과 같은 시스템으로 면허를 요구 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다국적 기업 '라임'의 경우 면허 인증 없이 이용자 등록 가능하다. 한 기업의 경우 허위 이미지 등록이 가능했다. 허위 이미지 등록이 가능한 업체 측은 "운전면허 진위를 일일이 직원들이 조회하기 때문에 확인이 끝나기까지 다소 시간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보통 업체 측은 조회 기간을 3일 정도로 고지하는데, 확인되기 전까지는 무면허 주행이 가능하다. 또한 원칙상 앱에서 안내하는 가상의 주차장에 주차해야 하지만 그 외에 주차해도 시스템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유킥보드라는 면에서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책임감을 느끼기 힘들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여대 재학생들과 전동킥보드 사용자 등 총 1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공신력을 확보한 설문은 아니지만, 시민들의 일상 속 공유킥보드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여겨진다.

설문은 5월 11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동안 실시하였다. 설문에 따르면, 공유킥보드에 느끼는 책임감을 보통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48.1%(63명), 책임감을 가지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은 16.8%(22명)이다. 반면 공유킥보드에 책임감을 가진다고 대답한 비율은 35.1%(46명)이다.

1984년 서울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휠체어 장애인의 투쟁 이후,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거리의 점자블록 위에는 비장애인의 이동수단으로 인해 턱이 생기고 있다.

이와 함께 공유킥보드 관련 민원과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의 이동권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상생하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법사위와 시민 개인의 인권 감수성이 증진되어야 한다.
#전동킥보드 #공유킥보드 #시각장애인 #점자블록 #장애인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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