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붉게 피는...'이라는 가사는 어디서 온 걸까

하얀 찔레꽃을 더 흔히 볼 수 있는데...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을까

등록 2021.05.20 15:47수정 2021.05.2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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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찔레꽃이 유난히 활짝 피었다. 일제 강점기 상황에서 이런 찔레꽃을 보았다면 누구든 너무 화사해서 오히려 서글프고 처연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 오창경

 
5월은 향기의 계절이다. 찔레꽃과 아카시아 등의 5월에 피는 꽃들은 향기를 잔뜩 지니고 피어난다. 그 향기가 세상을 덮는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찔레꽃을 보면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으로 시작되는 가요가 생각이 난다. 엄마가 카세트 라디오에 테이프를 넣고 듣던 노래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노래였다. 음치에 가까웠던 엄마가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유일한 노래였다.

엄마는 박자를 못 맞추면서도 틈만 나면 그 노래를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피아노를 배우던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은 건반을 두드려가면서 엄마의 박자를 잡아주곤 했지만 박자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엄마는 끝내 그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찔레꽃을 실컷 볼 수 있는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게 되면서 음치였던 엄마가 좋아했던 그 노래, 찔레꽃을 어느새 나도 따라서 흥얼거리게 되었다. 엄마의 음치 유전자를 그대로 받은 나도 노래를 잘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노래는 잘 부르지는 않는 편이다. 이상하게도 음치 유전자는 나만 물려받았다.

동생은 계속 피아노를 치더니 전공까지 했고 막내 동생은 성악가 수준의 노래 실력으로 모임 자리를 빛내는 인물이다. 나는 노래를 잘 못하는 대신 가사에 담긴 메타포(은유)와 분위기를 즐기는 쪽으로 일찌감치 관심사를 돌렸다.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를 오래 듣다보니 의문이 생겼다. 시골 마을 들판에는 붉은색 찔레꽃은 없고 흰색 찔레꽃만 만발한데 어쩌다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는 가사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검색을 하다 보니 '찔레꽃 붉게 피는'에 대한 사연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았지만 이유를 밝혀놓은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


<찔레꽃>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담긴 노래이다. 내가 본 대부분의 찔레꽃은 흰색으로만 화사하게 피었고 5월의 한낮에 벌들이 가장 많이 꼬이는 꽃이기도 했다. 찔레꽃 속에서 벌들이 잉잉거리는 소리도 듣기 좋았고 로맨틱한 향기는 아련하기까지 했다. 어느 여름날에는 그 향기가 아까워 산자락 밑에 핀 찔레꽃을 따다가 꽃차를 만들어 병에 담아두고 향기만 맡은 적도 있었다.
 

고향 마을 어느 집의 담장을 덮은 찔레꽃 이런 찔레꽃을 보면 누군들 떠나온 고향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으리라. ⓒ 오창경

 
5월의 햇살 아래 찔레꽃의 슬프도록 화사한 느낌이 떠나온 고향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것은 맞는데 붉은 찔레꽃은 보이지 않았다. 원주민들에게 붉은 찔레꽃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애기 찔레'라는 품종은 붉은 색의 꽃이 피었으나 노래가 나왔던 그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품종 같았다. 그 신품종 붉은 찔레는 꽃송이가 너무 겹겹으로 다닥다닥하게 피어서 노래 가사처럼 처연한 맛도 나지 않았다.

노래가 나왔던 1940년대에 들판에 무심하게 피었던 찔레꽃은 지금도 어느 들판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색 토종 찔레나무의 꽃뿐인 것 같았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은 작사의 소재가 되기도 쉬웠을 것이다.

어쨌든, 찔레는 꽃이 피는 1년 중 일주일은 시골 들녘을 환하게 해주고 향긋한 향기에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나머지 358일은 골칫거리 잡초에 지나지 않는다. 마당에 자리를 잡으면 계속 뽑아내야 하고 가시가 있어서 다루기도 어렵다. 오래 묵어서 목질화가 되면 톱질을 해서 없애야 한다. 톱질을 해서 없앤 후에도 곁가지가 나오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잡초들은 꽃이 피는 기간에는 대접을 받다가 세력이 왕성해져서 농작물을 침범하게 되면 제거 대상이 된다. 나도 올해는 집주변에서 오래 묵어서 보기가 싫었던 찔레들을 마음먹고 톱과 전지가위로 다 잘라버렸다. 꽃이 피는 일주일보다 잡초로 있는 나머지 기간 동안 마구 자란 찔레 덤불은 집을 폐허처럼 보이게 하는 주범이었다. 오월의 찔레꽃은 시골 들판 눈길이 머무는 곳 어디든지 피어나기 때문에 지나는 차창 밖으로 감상을 해도 충분했다.
 

어느 마을을 지나가다가 발견한 붉게 피는 찔레꽃 찔레꽃 노래를 작사한 작가는 살짝 붉은 빛이 도는 이런 찔레꽃을 보고 당시 일제강점기 식민지 상황을 투영해서 그런 가사를 쓴 것 같다. ⓒ 오창경

 
항상 다니던 길이 아닌 곳을 갈 때가 있다. 그날도 어떤 볼 일 때문에 그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마을의 진입로에서 흰색에 섞인 분홍빛이 진한 찔레꽃을 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하얀색이 아닌 자연산 유채색 찔레꽃을 보았다.

가만히 보니 찔레꽃은 피어나는 꽃송이일 때 훨씬 붉은 느낌이 나는 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피었다가 지고 있는 꽃에서는 볼 수가 없었지만 피고 있는 꽃송이들에서는 유난히 붉은 빛이 많이 돌았다. 작사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고 강조해서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필 때의 에너지가 꽃봉오리에 최대한 집중이 되어서 붉은 빛이 살짝 돌게 되는 것을 보았던 작가의 의지를 최대한 투영해서 붉게 피는 찔레꽃을 탄생시킨 것 같았다.

식민지 정책으로 국민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일제 강점기에 나온 노래였기 때문에 가사도 곡의 분위기도 처연하고 애달플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붉은 찔레꽃을 탄생시킨 것 아닐까. 식물학자의 논리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글 쓰는 사람의 상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이다.
 

꽃봉오리일때 붉은 빛이 도는 찔레꽃 꽃이 필때의 에너지가 최대한 집중이 되는 봉오리일때 훨씬 붉은 색이 집중이 되는 찔레꽃 ⓒ 오창경

 
이맘때쯤, 시골 마을 어디에서나 너무 환하게 피어서 식민지 상황의 고향이 더 애달팠던 마음을 그렇게 투사한 것이리라. 사랑, 그리움, 이별, 잃어버린 정체성 등을 모두 표현하기 위해서는 하얀 찔레보다 붉은 찔레꽃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강렬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모든 작가는 감정을 사물에 이입하는 단계를 넘어서 해체하고 조립해서 재창조하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하얀 찔레꽃을 붉은 찔레꽃이라고 했다고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다.

다시 5월이 왔고 들판에 찔레꽃도 피고 있는 중이다. 찔레꽃에 담긴 모든 기억과 감상들도 향긋한 그리움으로 재생 중이다.
#찔레꽃 #찔레꽃 붉게 피는 #부여의 시골마을 #고향 생각 #향긋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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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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