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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0세 어르신들이 늦게라도 한글을 배우면 좋은 이유

성인문해교실을 토대로 한 박재명의 '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를 읽고

등록 2021.05.21 08:10수정 2021.05.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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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박재명의 '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카시오페아

 
70~90세 나이든 분들이 글자를 배우고 초등학력 인정도 받는다. '성인 문해교실'을 통해서다. 대부분 어릴 적 배움의 기회를 놓친 분들이 참여한다. 그에 대한 어려움은 없을까? 주변 사람 눈을 의식하지 않을까? 그래도 꾸역꾸역 나가는 이유가 뭘까? 배우고 난 이후의 성취감 때문일 것이다.
 
"글을 배우고 나면 가장 먼저 생기는 변화가 자신감이다. 겁내고 있다가 한 번 시도해서 성공하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에 대해 만족하게 된다."
 
박재명의 <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에 나온 내용이다. 성인 문해교실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많이 망설이지만, 막상 배우고 나면 스스로 만족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 책은 성인 문해교실에 참여하게 된 과정들, 배우면서 힘들었던 점들, 그리고 배우고 난 이후의 성취감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을 쓴 지은이는 성인 문해교실 강사로 활동한 이라 그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나 좋은 한글을 왜 배우지 못했을까? 이 책엔 여러 사연이 나온다. 공장에서 잔업과 야근을 하면서 번 돈을 고향의 남동생들에게 보내야만 했던 여성분들도 있다. 식모살이로 남의 집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위해서는 돈 한 푼 쓰지 못했던 분도 있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희생당한 인생을 산 분들도 있다.

그런 사연들은 대부분 여성들이 안고 살았던 부분이다. 과연 남성들은 어떤 사연을 안고 그 교실에 들어오는 걸까? 굶어도 아들은 공부시키던 옛날에 비춰보면 그곳의 할아버지들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많단다. 물론 그걸 알아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고 한다. 더욱이 할아버지들은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들어왔다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간다고 한다. 많은 여학생들 앞에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까닭이란다.

그런 애로사항을 뒤로 하고서도 꾸역꾸역 문해학교에 참석하는 이유가 뭘까? 많은 여학생이든 소수의 남학생이든 글을 알아야 세상을 알고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곳에서 글을 떼기 전에는 은행에 갈 때면 팔걸이를 하고 간 분도 있었단다. 팔을 다친 척 해야 창구 직원이 대신 글을 써 줄 수 있기에 말이다. 또한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남긴 부의금 봉투도 그때서야 꺼낸 분도 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식당에 가면 그림만 보고 주문했지만 이제는 글을 읽으며 당당하게 주문한다고 한다.

그렇게나 좋은 글을 깨우치지 못한 분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이 책에 나오는 2017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조사에 의하면, 성인 중 7.2%인 311만 명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문해도 안 된다고 한다. 성인 100명 중 7명 정도는 읽기와 쓰기가 전혀 안 되고, 100명 중 16명은 읽기는 읽어도 뜻은 모른다고 한다. 특히 70대 이상은 28.7%가 문맹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 보면, 성인 문해교실을 통해 얻는 또 다른 이점도 있었다. 치매 예방이 그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 환자의 16%는 그 원인이 문맹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문맹이 치매를 부른다는 뜻이다. 문해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인지능력과 기억력 감퇴 속도가 느리다고 하니, 이 땅의 어르신들은 문해교실에 참석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 책은 복지관에서 시행한 성인문해교실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곳의 한글교실은  첫걸음반,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단계가 있다고 한다. 한글기초가 끝나면 중급반으로 진급하고, 중급반은 배운 한글을 이용해 직접 글을 쓰거나 문학을 접하는 단계로 나아간단다.

그 중에 한글을 갓 뗀 한글교실 학생들에게는 시를 가르친다고 한다. 처음에는 많이 짜증도 내지만 읽고 쓰기를 반복한단다. 그러면 형식이나 맞춤법은 떨어지지만 내용만큼은 연륜이 깊어 쉽게 감동하고 감격해 한단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70~90대 어른들에게 일기를 쓰게 한다고 한다.

그곳의 복지관은 1년에 한 번 놀라운 일을 벌인단다. '한글도전골든벨대회'가 그것이다. 그동안 공부한 것을 정리하고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함이란다. 그때 학생들은 자그마한 칠판과 필기도구를 들고, 이름표를 붙인 노란 모자를 쓴 채,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한단다.

그러다 상이라도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분들에게 수상 소감을 물으면 다들 울먹인단다. 설움이 복받쳐 운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도 스스로 놀라운데, 공부하면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나이든 학생들을 가르칠 때 아쉬운 점은 없을까? 지은이는 그런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성인 문해 과목이 제한적이라는 것. 더욱이 '큰 글씨 도서'가 있지만 어른들이 주도적으로 배우고 익히기에는 한계가 있는 게 그것이다. 그만큼 노인 문해 학습자를 위한 도서가 따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쪼록 나이 들어 문해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자식들과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야 하니 말이다. 더욱이 그 나이 때가 되면 어떤 질병이 찾아들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참석하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답답했던 문자를 익힐 수 있고, 그걸 통해 일상생활의 문제를 스스로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문해자에게 문해란 그만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개인적인 출생을 넘어 사회적인 출생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땅의 성인문해교실에 참석하는 모든 어르신들을 힘차게 응원한다.

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한글교실에서 만난 시와 치유, 꿈에 관한 이야기

박재명 (지은이),
카시오페아, 2019


#박재명의 〈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7-90세 어른들이 한글을 배우면 왜 좋을 #왜 그 당시 어른들은 한글을 못 배웠을까? #여학생보다 남학생 수가 적은 이유는 #성인문해교실은 치매를 예방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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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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