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에 얽힌 역사 이야기, 참 재밌네요

세종지혜의숲, 30일까지 ‘세계 희귀 북마크 전’ 열어

등록 2021.05.24 10:44수정 2021.05.2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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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세종지혜의숲에서 '세계 희귀 북마크전' 스페셜 도슨트가 열렸다.

권오준 생태동화작가가 모은, 흔히 보기 쉽지 않은 북마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 희귀 북마크전'(5월 4일~5월 30일)을 찾은 사람들이 북마크에 얽힌 역사 이야기와 어울리는, 흔치 않은 자리였다.
  

쇼팽 ‘즉흥환상곡’으로 문 연 '세계 희귀 북마크전' 스페셜 도슨트 / 피아니스트 이화정 ⓒ 변택주

 
적지 않은 세월 강연을 해온 나는 강연을 공연처럼 펼쳐, 듣는 이와 깊이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피아니스트 이화정이 도슨트 마당에서 어우러지며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강연과 어울리는 피아노 연주라니 궁금해 견딜 수 없어 벽제에서 세종시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도슨트는, 강연을 들으려고 온 사람들을 부드럽게 아우르는 쇼팽 '즉흥환상곡'으로 문을 열었다.

"얘들아! 내가 너희에게 줄 선물을 좀 가지고 왔는데 보여줄까?" 하고 분위기를 띄우려는 권오준 작가. 조용하다. "왜 대답이 없지?" 하며 귀를 청중에게 대면서 물으니 가까스로 답이 나온다.

"예에~"
"대답이 작아요!"
"네에!"

 

허드슨과 풀턴 / 6번 왼쪽이 헨리 허드슨 오른쪽이 로버트 풀턴 위에 은장으로 된 북마크를 상징하는 인물들 ⓒ 변택주

 
그제야 힘차게 반응한다. 첫 만남은 늘 낯설다. 분위기를 풀어낸 권오준 작가, 예쁜 수납함과 숟가락을 에코백을 꺼내면서 이야기하는 틈틈이 선물로 주고, 강연을 마치고 나서 동화주인공 얼굴을 그려주고 사인도 해주겠다고 한다. 먼저 은제 북마크를 꺼내 와서는,

"여기에는 사람이 둘 보이지? 이 사람들 이름을 맞추는 거야. 뉴욕을 흐르는 강 이름이 허드슨강인데, 이 강을 발견한 사람 이름이 뭘까? 허씨 가문이야."
"허드슨"
"딩동댕!"


순간 답을 한 아이 얼굴이 빛난다. 영국에서 온 허드슨(Henry Hudson, 1550년~ 1611년)이라는 사람이 400년 전에 이 강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은 로버트 풀턴 (Robert Fulton, 1765년~ 1815년)으로 증기기관으로 가는 상업 증기선을 200년 전에 처음 개발한 사람이다. 허드슨강 발견 300년과 상업 증기선 개발 100년을 기려 100년 전에 만든 북마크라고 알려준다. 또 다른 북마크를 꺼내 들고는.


"이 사람은 영국 사람입니다. 정치가이고요. 나이가 들어서는 엄청 뚱뚱했고요. 늘 시거 담배를 입에 물고 다녔어요. 누구지?"
"처칠?"
"딩동댕입니다. 나오세요. 얘들아, 처칠을 맞혔다고 해서 1등이라는 얘기는 아냐. 이 북마크는 바로 처칠 경을 기리는 북마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수상 이야기를 들려주며 책갈피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함멜부르크합창단 30주년 기념 북마크 / 1951년에 창립하여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함멜부르크합창단에 기증하려는 북마크다. ⓒ 변택주

   
리본으로 된 북마크도 있다. 1951년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는 작은 도시 함멜부르크 합창단 창립 30주년을 기려 만든 책갈피다. 함멜부르크 합창단은 올해 창립 100주년이어서 더욱 뜻깊다.

권 작가는 이 합창단에 편지를 띄우려고 한다. 이 북마크를 가지고 있느냐고.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함멜부르크 합창단에 기증하겠단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있을 북마크 전시회에는 복제본을 만들어 함멜부르크 합창단에서 보낸 편지와 함께 전시하겠다고 뜻을 밝힌다.

미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은 말인 "I know not what course others may take, but as for me,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다른 이들이 어떤 길을 고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뜻은 이렇다. 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패트릭 헨리)!"가 담긴 북마크, 1937년 세계 최대 비행선인 독일 힌덴부르크호가 불이나 떨어지는 모습을 담은 책갈피, '홈 스위트 홈'(1871) 가사와 악보가 그려진 책갈피, 해리포터 안경 모양 책갈피, 그림책 작가 벵자맹 쇼가 남긴 메모나 '날아라 삑삑이' 공연입장권, 미아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상영필름 세 도막을 잘라 만든 북마크들이 눈에 띈다.

도슨트에는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 엄마와 딸, 선생과 학생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권오준 작가가 던지는 물음에 아이·어른을 가리지 않고 손을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들면서 어울렸다.
  

"이 아기가 '미'라고 했어요!" / 참가한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는 권오준 작가 ⓒ 변택주

 
미키마우스 인형이 달린 책갈피를 들고 "이거 맞춰보자. 얘가 누구?" 하고 묻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미키마우스!" "미키마우스요" 하고 쏟아낸다. 권 작가는 "잠깐만요" 하더니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가리키며 "얘가 '미'라고 했어요" 하면서 어린 아기를 데리고 도슨트에 온 엄마 마음을 아우른다.

달착륙선 아폴로 11호에서 닐암스트롱이 사다리는 타고 달에 내려서는 그림이 있는 북마크를 들고는 달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렸겠느냐고 묻는다.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문제라면서 답에 가장 가깝게 얘기한 사람에게 에코백을 주겠다고 한다. 한 달, 일주일, 석 달, 하루, 보름, 사흘, 이틀, 오 일, 구 일, 두 달 여기저기서 답을 쏟아낸다. 답은 열사흘로 보름 걸렸을 것 같다는 답이 가장 근삿값이다.

이번 도슨트는 지난해 10월 도곡정보문화도서관에서 처음 펼친 '세계 희귀 북마크전 도슨트'와 달리 그림책 작가 전설이라는 모리스 센닥 이야기가 곁들여져 더 풍성했다. 모리스 센닥을 좋아하는 권 작가가 모리스 센닥 동화에 나오는 캐릭터 인형을 비롯해 병풍집, 1986년 미 백악관 부활절 행사 팸플릿 표지 그림과 같은 희귀자료를 펼치는 자리, 모차르트 오페라 '이도메네오' 서곡이 감돌아 더욱 빛났다.

오는 30일까지 이어지는 세종지혜의숲 '세계 희귀 북마크전'을 찾는 분들이 북마크 하나하나에 새겨진 역사를 들춰내 곱씹는다면 권오준 작가 못지않은 얘기꾼이 될지도 모른다.
  

꼴찌에게 박수를 / 아홉 번 가위바위보를 하여 지는 이에게 상을 ⓒ 변택주

 
강연회는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절정에 이른다. 늘 아이들이 하던 꼴찌 겨루기는 이날만은 어머니들에게 돌아갔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꼴찌에게 권 작가가 에코백에 그림과 사인을 해주는 놀이인데, 치열한 경쟁 끝에 꼭 에코백을 가져가야 하겠다고 굳은 뜻을 밝힌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토요일 낮을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한마당으로 빚어낸 '세계 희귀 북마크전' 스페셜 도슨트는 '아들리느를 위한 발라드'가 울려 퍼지며 막을 내렸다.
#세계희귀북마크전 #스페셜 도슨트 #세종지혜의숲 #권오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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