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과도한 경쟁교육, 이제는 손을 써야 한다

등록 2021.06.26 16:46수정 2021.06.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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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한국교육이 너무 오랫동안 과도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환경을 거대한 산처럼 느끼면서 손을 쓰려는 의지를 스스로 단념하는 것이다.

과도한 학습경쟁에서 아이들이 그들의 노력을 보상받는가? 그렇지 않다. 승자독식의 경제에서 학생들 대부분은 루저가 된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할지라도 일례로 하버드대 신입생 수가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불안, 스트레스, 편집증과 허탈감에 빠지기 쉽다. 그들은 미래의 기업주를 위해 돈과 정력을 낭비하는 셈이다(뉴욕타임스 2017.11.6 : Opinion | Competition Is Ruining Childhood. The Kids Should Fight Back. 참고)

교육경쟁 관련 지켜야 할 기본원칙

우선 입시경쟁과 관련하여 고수해야 할 기본원칙이 있다. 첫째, 학생선발이 교육자체를 망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선발에 대비한 시험공부로 인해 삶을 위한 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종되어 있다. 초중고 교실에서 학급토론을 통해 다룰 주제는 참으로 많다. 즉 우정(友情), 기부문화, 자연장과 같은 장례문화, 안락사 및 존엄사, 비트코인, 성적 정체성, 자본주의와 주식의 가치, 개성공단의 가치에 대해 등 학생들의 현재 및 미래의 삶의 주제들이 교실 문턱을 넘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둘째, 경쟁을 하려면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되며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하는 학생들끼리 실력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매년 5,6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IMD 교육경쟁력에서 2020년 한국의 순위는 27위다. 2018년의 국제비교 결과는 핀란드 3위, 캐나다 4위, 스웨덴 10위, 오스트리아 12위, 미국 21위, 프랑스 24위, 한국 25위다. 한국의 대학교육 순위는 48위로 하위권이다.

셋째, 국가적 관점에서 보면 어떤 학생이 어느 대학을 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 대학을 가든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서열화는 공고하다. 대학서열화 그 연장선에 직업서열화가 있으며 사회경제적 불평등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경쟁교육을 포기하면 얻어지는 이익


첫째, 100조의 사교육비를 10조 이내로 절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돈이 사회로 환원된다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둘째, 교사업무량이 획기적으로 경감된다. 모의고사, 성취도 평가 등 경쟁환경에 따라다니는 각종 평가와 시험관련 행정업무가 줄어들면서 수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과다한 국영수 교과목의 비중을 줄일 수 있으며 이는 정상적인 교과운영을 가능케 한다. 시험중심의 공부는 국영수 과목에 집착하게 만들며 예체능, 역사지리, 철학 등 인문학 및 예술적 감성을 함양할 수 없게 만든다. 지금도 인성교육, 인간교육이 실종되고 있다는 탄식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넷째, 교육주체들의 관계가 정상화된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부모와 학생간의 관계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하면 학교와 지역사회 발전에 대한 논의보다는 자신의 자녀의 성적관리와 진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동체주의보다는 다분히 가족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다.

다섯째, 학교가 유연하게 교과운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학교마다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입시환경에서는 과학고, 외국어고, 예술고, 체육고가 입시기관화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지금도 이들 학교에서 일부 교사들이 입상실적을 통해 교장승진을 챙기는 관행 또한 교육행정과 의식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경쟁을 시켜서는 안되는 이유

첫째, 학생들의 지능, 신체, 정서적 발달에 큰 왜곡이 생긴다. 경쟁이 강화되면 국영수 과목이 강화되기 마련인데 특히 점수계산이 딱 떨어지는 수학의 비중이 높아진다. 빌딩마다 수학학원이 들어찬 나라는 한국 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수학이란 학문이 모든 이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12년의 학교생활을 통해 빈약한 팔다리, 메마른 감성, 지독한 개인주의 외에는 입시경쟁 교육을 통해 얻는 게 없다.

둘째, 경쟁을 통해 얻은 지식은 실용적이지 않으며 표피적 지식에 불과하다. 호기심에 의한 내적동기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라고 하는 외적강제에 의해 얻은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단편지식은 휘발성이 강해 일시적으로 기억된 다음 사라진다.

셋째, 경쟁을 통해 소수의 자리를 획득한 사람들은 그 지위를 타인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근래에 보아왔던 사법사태나 의료인들의 행태가 그 예다. 공동체적 유대감을 생소하게 느끼며 이기주의에 친숙해진 것은 무기경쟁 같은 교육경쟁의 인위적 산물이다.

넷째, 초중고 12년간의 지속된 경쟁에서 90% 이상의 청년들은 탈락하게 되고 여기서 받는 자존감의 상처는 깊을 수 밖에 없다. 이 자존감의 추락이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될 리 없다.

다섯째, 경쟁교육에서는 실속있는 교육과정 운영이 불가능하다. 교과시험 경쟁에서 뒤쳐진 중학위권 50%는 버려진다. 안타깝지만 손을 쓸 방법도 없다. 예를 들어, 특성화 고교의 수학교재를 보라. 입시에 맞춰져 있어 인문계 교육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하기 빼기도 서투른 학생들에게 이 교재를 가지고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종의 학대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만 바로 그 학교에서 방치된다. 교사는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다 3년이 흐르면 자동졸업이다.

여섯째, 경쟁교육에서는 고교시절에 내면을 성찰하고 자기 진로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기도 하거니와 논쟁거리가 없어 고민의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대학진학이 인생의 큰 그림 속에서 결정되지 않고, 소위 서열과 점수에 따른 진학으로 순식간에 결정된다. 이를 후회하는 학생들이 80%에 이른다. 이런 시간낭비, 국고낭비가 없다.  

학생들이 스스로 내면을 성찰할 기회가 없으니까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마땅히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 인터넷 성 착취물의 유포 등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도 내면성찰의 기회가 실종된 결과가 아닌가? 삶을 위한 교육의 공백, 배움의 실종이 가져온 필연적인 귀결인 것이다.

수능개편의 큰 방향

일단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첫째, 수능의 내용은 국영수 과목이 아니라 공동체의 어젠다를 다뤄야 한다. 즉 언론의 문제, 지역갈등의 문제, 이기주의 문제, 통일노동환경 등이 그것이다. 현행 교과서도 단편지식을 나열하는 형태, 특정대학 출신들의 동문회를 연상케 하는 집필진 구성도 모두 바꿔야 한다. 일단 교과내용을 거의 절반으로 줄이고, 교과서 없는 과목도 있어야 삶을 위한 교육에 더 다가갈 수 있다.

학교에서 삶의 내용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될 때 사회는 획기적으로 바뀌며, 공동체의 합의를 이루는 것이 수월해진다. 이런 문제들을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존의 영어교사들이 이승만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영어로 토론하고, 국어교사들이 구한말 눈물겹도록 한국을 사랑한 미국의 언어학자요 신학자 및 선교사인 호머 B. 헐버트(Hulbert) 박사에 대해 글쓰고 발표할 수 있다. 수학은 절반이상 줄여 다른 미래지향적 과목이 들어오는 길을 터줘야 마땅하다.

정치시민교육, 성교육 등 예민한 문제는 학생들의 논쟁과 토론, 교사들의 논의에 맡기고 학부모와 사법권력은 학교울타리를 쉽게 넘지 않도록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 때 교장들이 적극적으로 교육활동을 격려하고 조장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수능등급제를 제안하는 바, 위에서 치러진 수능의 결과에 따라 5등급으로 나누고 그 등급에 따라 추첨제를 실시한다. 추첨제의 기본철학은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공교육이 이런 인간관에 기초하도록 재논의가 필요하다.

셋째, 성적대 하위 60%인 학생들에 대해 국가의 지원을 강화한다. 기술 및 기능교육을 확대해 가르치고 이들에 대해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이에 사회부총리로서 교육부장관이 기업인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넷째, 0.1%의 영재에 대한 판단은 교사들에게 판정과 추천의 권한을 맡긴다.  

경쟁교육 개혁의 전제조건

입시환경의 개선은 필연적으로 직업간 임금차별 및 복지혜택의 극심한 차이를 없애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지금껏 입시제도의 개혁을 비롯한 교육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대학서열화와 사회불평등을 방치하고 체념했기 때문이다.

대학서열화를 완화 혹은 폐지시키지 않기 때문에 정치권 및 기업에서는 특정대학 출신이 실력이 좋다는 인식에 따라 이들을 선호한다. 소수 엘리트에게 배타적으로 혜택이 주어지고 비정규직에게 갑질과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산업재해가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누군들 소수 엘리트를 배출하는 입시경쟁에 뛰어들지 않겠는가?

문제는 교육의 외부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교육외부를 손대지 않으면 고교학점제 뿐만 아니라 입시경쟁도 완화할 수 없다. 따라서 교육외부의 모순을 얼마나 손대는가에 따라 교육부장관의 유능함이 판별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의 시작은 교사들, 그 중에서 교사들의 연대에 의한 움직임에 달려있다. 이는 광장의 정치적 의미의 촛불집회가 교육분야로 파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입시경쟁 #경쟁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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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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