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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감자요리 덕에 올해도 연탄 기부합니다

텃밭의 하지감자를 사준 지인들의 인증사진... 고맙습니다

등록 2021.06.27 17:47수정 2021.06.2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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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기부금을 모아준 감자꽃과 감자요리. 필자가 키워서 수확한 감자를 봉사단 지인들이 구매해줬다. 그 돈은 기부하는 데 썼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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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처음으로 수확한 감자... "오마나, 이럴 수가" http://omn.kr/1u3j8


"당신이 감자꽃을 피워내더구먼, 사람들이 연탄꽃을 피워 올겨울은 추위 걱정할 일이 없겠네. 내 각시지만 당신 참 대단하네. 재주 중에 상 재주가 인복을 베푸는 것인데 당신 최고여."

"아무리 각시 편들어주는 얘기라도 너무 남사스럽지 않나요. 재주만 믿는 원숭이는 나무에서 쉽게 떨어지는 법이고, 나는 감자 장사한 것 밖에 없는데요. 감자가 당신 덕분에 상급이 많이 나왔어요. 험담은 안 듣게 돼서 다행이고, 당신이 고생했지, 뭐. 원래 농부가 좋은 거 파느라고 제대로 된 작물은 구경도 못 한다더만 우리도 이쁜 감자는 하나도 못 먹고 그랬네요."
 

감자밭 두 개의 두둑에서 나온 감자가 무려 100kg을 넘었으니, 진짜 농군보다 농사를 더 잘 지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원협에 가서 산 10kg짜리 감자 상자에 감자를 담을 때, 진짜 농군이었다면, 크기와 무게를 구별하는 컨버에어벨트가 돌아가듯 뚝딱뚝딱 상자에 감자들이 담겨야 했다. 시댁의 복숭아를 상자에 담을 때 그렇게 하는 걸 봤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일손도 부족했지만 요령이 없고, 땅에서 나온 줄기와 뿌리마다 달린 감자알에 현혹돼 감탄사만 지르기 바빠서, 상자에 들어갈 감자들의 크기와 무게가 대중없었다. 어떤 상자에는 10kg도 안 됐을 것이 의심될 정도로 눈대중이 저울이 되어 감자를 담았다.

대부분의 감자가 필사시화엽서나눔 운동을 함께하는 봉사단들이 사주었다. 원래 장사치가 아쉬우니 직접 배달까지 해야 되는데도,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대니 학원에 와서 직접 가져갔다. 미안한 마음에 감자조림하기 좋을 만한 크기, 메추리알 정도의 감자들을 소분해서 서비스로 드렸다. 크기에 따라 요리법도 다르니 맛있게 드시라고, 사진으로 보여달라고 했다.

감자 수확 첫날, 학원의 선생님들에게 시식하라고 삶은 감자와 감자전을 준비했다. 먹을 것을 나눠 먹을 때처럼 행복한 시간은 없는 것 같다. 학원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내 일터의 주인이자 내 가족이다. 맛난 것 있으면 내 부모 자식이 먼저 생각나듯, 좋은 일, 맛난 음식이 있으면 언제나 그들과 나눠 먹어야 속이 편하다. 맛있다고, 고생하셨다고 지지해 주는 동료들의 감자 사랑에 우리 부부는 자화자찬하느라 정신없었다.
 

감자요 리4종 함께 필사봉사를 하는 이숙자님, 이안나님, 김정연님과 나의 요리 ⓒ 박향숙

 
다음 날이 되니, 감자를 사간 문우들이 감자요리 사진을 보내줬다. 덕분에 감자요리 했다고, 토실토실 감자가 진짜 좋다고, 고맙다는 칭찬 릴레이가 시작됐다. 김정연씨의 감자 치즈구이, 감자 카레, 감자 강된장, 이안나 선생님의 치즈 감자와 감자샐러드, 정선화씨의 감자 햄 볶음, 이숙자 선생님의 담백한 맛의 삶은 완두콩과 감자 등을 당신들의 식탁에 올렸다.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남편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만 산다면 세상살이가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아마도 감자 받은 분들이 내 성격을 알아차렸나 봐.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을 하는 성격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정말 갖가지 요리를 보여주니, 내 마음에 안도감이 흘렀다.

수업을 마감하는 시간은 거의 밤 10시를 넘는다. 저녁을 별도로 먹을 수가 없어서 간식으로 빵을 준비하는 편인데, 이틀 동안 삶은 감자를 대령했다. 직접 수확한 감자라서 그런지 남다른 애정이 쏟아지고 맛도 풍미도 더없이 좋았다. 내일 아침엔 색다른 감자요리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농촌봉사에 갔는데 그곳에서 나온 햇보리가 출하돼 소매로 팔고 싶은 어떤 할머니의 보리를 팔아주었다. 올여름엔 우리 부부의 식단으로 1일 1보리밥을 정하면서 "이번 기회에 뱃살 좀 빼봅시다. 애들한테 살 빼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지"라고 했다.

보리밥과 채소 식단 3일째, 마른 생선을 꺼내어 고추장 양념을 두르고 약간 삶은 감자를 넣어서 조림을 했다. 감자 뿌리에 붙어나온 엄지 한마디만 한 알맹이 감자들은 조림했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을 깨워서 아침밥상에 앉았다.

"오호, 이 감자가 그 유명한 감자구나. 으흠, 맛있어요. 포슬거리는 식감도 좋고."
"지원아, 네 엄마가 그렇게 크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감자 한 두둑만 캐고 오자고 나갔는데, 어찌나 많이 달려 나오는지, 자리를 뜨질 못하더라. 상자 포장하고 이리저리 옮기는데 힘들었을 텐데, 다 캐서 얼른 감자 팔아야 된다고 난리였다. 비가 온다고 해서 더 그랬지."

남편과 딸이 감자 캐던 날을 회상하며 내 모습을 주고받았다.

딸은 항상 나의 편을 들어 말을 한다. 엄마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거라고. 올해도 엄마가 하고 싶은 기부금의 목표가 있고, 처음 나온 작물을 팔아서 기부금으로 채워야만 엄마의 일을 다 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엄마의 소중한 삶의 가치니까 응원해야 된다고 대답했다. 역시 내 딸이다.
 

필사시화엽서 '감자꽃' 그림 시인 이상영의 시 '감자꽃'과 봉사자 김정희님의 필사시화엽서글 ⓒ 박향숙

 
봉사자 김정희씨의 필사엽서에 서상영 시인의 '감자꽃'이란 시의 일부가 쓰여 있었다. 처음 본 시이기도 하고 감자꽃 그림이 예뻐서 이 엽서를 내 맘대로 갖고 싶다고 부탁했다.
 
감자를 캔다
뭐라 내보이기도 수줍은 한 생을 캔다
꽃 진 자리 쭈그렁 열매도 없던 아비가
땅 아래서 살뜰히도 영글었다

 
 
살뜰히도 영근 감자가 그냥 감자로만 끝나지 않아서 참 좋았다고 나는 나에게 위로를 주고 힘을 얻는다. 한 개의 감자 싹이 자라 수십 개의 감자알을 얻고, 그 감자로 만들어진 요리가 많은 이의 기쁨이 되어 고맙다. 지인들의 감자요리는 추운 겨울날 피워 오를 연탄구멍을 가득 채워주는 또 다른 씨앗이 되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모두 고맙습니다.
#감자요리 #감자꽃 #연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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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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