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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만 하면 돌변하는 나에게 내린 특급 처방

시동을 걸 때 "따듯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문을 외웁니다

등록 2021.07.04 18:17수정 2021.07.0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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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겪은 일이다. 두 대의 승용차가 1, 2차선에서 같은 속도로 나란히 가고 있었다. 추월을 할 수가 없어 비켜달라고 경적을 울렸다.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미동도 없었다. 경적을 한 두 차례 더 울린 뒤 상향등을 연거푸 깜빡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OOO! 왜 저따위로 운전을 하지? 백미러도 안 보나?"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때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이가 되레 나를 타박했다. 응급환자 후송하는 것도 아니고, 약속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서두르냐며 나무랐다. 앞 차 운전자가 초보일 수도 있는데, 얼마나 불안하겠느냐며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순간 뜨끔했다. 아이가 눈으로 힐끔 쳐다본 속도계 눈금은 110km/h를 가리키고 있었다. 두 대가 나란히 달리고 있을지언정 고속도로 제한 속도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깜빡거리면서 앞차에 제한 속도를 넘겨 과속하라고 부추긴 셈이다.

핸들만 잡으면 달라지는 나
 

운전대만 손에 쥐면 나도 모르게 성격이 변하는 것만 같다. ⓒ elements.envato


이런 적도 있었다. 편도 1차선 도로에서 운전 연수 차량의 꽁무니를 한참 따라갔던 경험이다. 굽잇길이 많은 외진 곳이라서 운전 연수를 하기에 적당한 도로가 아니었다. 물론, 한적한 시간 초보운전자의 다양한 주행 경험을 위해서 부러 선택한 길일 수는 있다.

주황색 실선이 그어진 추월 금지 구간이기도 했고, 이따금 반대쪽 차선에서 오는 차량 때문에 섣불리 앞지를 수도 없었다. 곧은 도로가 나올라치면 어김없이 반대편에서 차가 나타났다. 능숙한 운전자라면 추월해 가라며 오른쪽 깜빡이를 켜줄 텐데, 답답한 마음에 짜증을 냈다.


"추월할 수도 없고, 경적을 울릴 수도 없으니 정말 난감하네. 멀쩡한 4차선 도로를 놔두고, 이런 좁은 길에서 운전 연습을 할 게 뭐람."

그때도 조수석에 탄 아이는 앞뒤 간격을 유지하라며 채근했다. 그렇게 바짝 붙어 가면 그러잖아도 진땀 흘리고 있을 운전 연수생이 얼마나 긴장되겠느냐는 거다. 그는 능숙한 운전자일수록 초보운전자를 배려하고 보호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날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애꿎은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다. 1차선에서 바로 앞에 달리던 택시가 갑자기 멈춰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는 것이었다. 그곳은 두 줄의 주황색 실선이 그어진 좌회전할 수 없는 곳이었다. 건너편엔 택시를 기다리는 듯, 한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손님을 태우기 위해 불법 유턴을 하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반대쪽 차선에 차량이 많아 저만치 앞 네거리의 신호가 바뀔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 택시가 유턴할 때까지 뒤에서 꼼짝없이 멈춰 서 있었다. 출근 시간 차량이 많아 2차선으로 끼어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화가 나서 길게 경적을 눌렀다. 그 소리에 택시 기사도 화가 났던지, 유턴하면서 창문을 열어 나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내보이며 욕을 퍼부었다. 출근 중이었던 데다 신호가 바뀌어 직진할 수밖에 없어서 망정이지 자칫 그의 뒤를 쫓아가 한바탕 싸움을 벌일 뻔했다.

애초 경적을 누르지 말았어야 했다. 택시 기사가 잘못한 건 맞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그냥 잠시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그런다고 내게 손해될 일은 딱히 없지만, 그에게 길 건너편 사람은 밥벌이를 위해 불법을 자행해서라도 선점해야 하는 손님일 테니 말이다.

2분 먼저 출근하려고... 이건 아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엔 길 위에서 두리번거리는 외지 차량이 문제였다. 교통 신호가 연동되는 구조라, 첫 번째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지 못하면 다음 신호가 바뀔 때까지 몇 분을 멈춰 기다려야 한다. 이따금 교통경찰이 수신호를 하는 경우엔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될 때도 있다.

바쁜 출근길 그 차는 창문을 연 채 운전자가 도로 양옆을 살피면서 거북이걸음을 했다. 더욱이 양쪽 깜빡이를 수시로 바꿔 켜며 두세 개 차선을 넘나드는데 위험천만이었다. 뒤따르던 차들도 일제히 속도를 줄였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차를 향해 경적을 울려댔다.

미안하다는 뜻으로 비상등을 켰지만, 그 뒤로도 1km 넘게 갈지자 곡예 운전은 이어졌다. 결국 바깥쪽 차선에 완전히 멈춰 선 뒤에야 교통이 원활해졌다. 하필이면 그 차와 같은 방향의 출근길이어서, 부러 조수석 쪽 창문을 내려 듣든 말든 짜증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저씨, 그따위로 운전하지 마세요. 도로 위에 아저씨 차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침부터 스트레스 받으며 출근한 뒤 시계를 보니 평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단지 2분 남짓 늦었을 뿐이다. 잠깐 화장실 다녀올 짬도 못 되는 그 시간 때문에 경적을 울리고 짜증을 내고 욕설을 내뱉은 자신이 순간 부끄러웠다. 분명 외지인이었을 그에게 괜스레 미안했다.

말하려니 쑥스럽지만, 난 주위 사람들로부터 평소 차분하고 무던한 성격에 선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강의할 때 말고는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상대가 불같이 화를 내도 무덤덤하게 대응하는 편이다. 얼마 전엔 전화에다 욕설을 퍼붓던 상대방이 낮은 목소리에 존댓말로 응대하는 내게 비아냥거리는 거냐며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운전대만 손에 쥐면 나도 모르게 성격이 변하는 것만 같다. 그나마 홀로 운전할 때는 잘 깨닫지 못한다. 가족이나 동료 교사가 조수석에 앉아야 비로소 운전할 때마다 돌변하는 또 다른 나를 보여준다. 그들 말마따나, 평상시 나와 운전할 때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차마 부인하진 못하겠다. 도로 위에서 다른 운전자의 서투름을 못 견뎌 하고 느림을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며 짜증을 내는 건 진정 바빠서가 아니다. 단지 잘못 배운 운전 습관의 문제일 뿐이다. 과거 나 또한 초보운전자였음을 망각한, 비유컨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타성 탓이다.

차를 버릴 수 없어서 '마음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시동을 걸 때마다 '따듯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을 건다. ⓒ 서부원


지금 차를 없애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운전할 때마다 성격이 돌변한다면, 애초 운전대를 잡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여의치가 않다. 서울처럼 정체가 심한 곳이라면 모를까, 이곳 광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만만찮은 출퇴근 시간이 아까워 선뜻 결단하기 힘들다.

차를 없앨 때 없애더라도 우선 '마음 훈련'부터 하기로 했다. 시동을 걸 때, '어떤 일이 있어도 화내지 말자', '마음 따듯한 사람이 되자'고 주문을 외는 것이다. 초조해하며 서두른다고 해도 기껏해야 몇 분 차이라는 걸 이미 여러 차례 확인한 터다.

며칠 동안은 되는가 싶었는데, 얼마 못 가 말짱 도루묵이 됐다. 코로나 와중에 출근 전 건강 상태 자가 진단하듯, 출근 시간에 맞춰 스마트폰 알람을 설정해 놓았지만, 생각 없이 눌러 끄기 바빴다. 주문이란 게 다 그렇듯,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면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묘수를 찾았다. 주문을 운전 중에 수시로 되뇔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햇빛 가리개 끝에 주문을 적은 종이를 매달아 놓았다. 이태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을 때 기념품 가게에서 산 큼지막한 책갈피가 제격이었다.

두툼한 한지로 만든 그 책갈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을 담고 있는데, 놀랍게도 지금 내 고민에 맞춤한 경구가 그대로 적혀있었다.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듯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최소 세 번씩 반복해서 주문을 외고 있다. 평상시 나와 운전할 때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란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운전습관 #노무현 #초보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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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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