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엄마는 연명 치료를 받지 않을 거야" 아이에게 말했더니

존엄하게 죽고 싶어서... 40살이 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습니다

등록 2021.07.05 07:29수정 2021.07.05 07:29
3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020년 6월 어느 날, 나는 우리 동네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찾았다. 내가 우리나라 나이로 딱 40세가 되는 해였다.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몇 년 전 언론보도를 통해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해 들었을 때 우리나라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죽음'에 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아직은 죽음을 준비하기 이르다고 생각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나에게 2019년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생겼다. 어떤 일을 계기로 남편과 우리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도 아이들을 위해서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남편은 나보다 더 빨리 등록을 마쳤고 나도 더 늦기 전에 등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등록 절차를 위해 만난 직원분은 나를 보고 조금 놀라시며 '이렇게 젊은 분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그 순간 내가 너무 빨리 결정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름대로 고민을 했고 확신에 찬 결정이었기에 등록 절차를 밟았다.

'나'로 존엄하게 죽는다는 것 
 

내 가방에서 일년 만에 꺼내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 ⓒ 김주희

 
내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게 된 건 어느 지인의 어머니 사연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인의 어머니를 돕고자 내가 연락을 했던 또 다른 지인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자세한 사정을 밝힐 순 없지만 이들의 사례가 죽음에 대한 생각과 준비를 하게 도움을 준 셈이다.

두 분 어머니들의 질병명이나 질환의 중증도를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뿔뿔이 흩어져 살던 자식들을 한데 모이게 할 정도로 많이 위중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결과적으로 한 분은 이미 고인이셨고 한 분은 중환자실에서 조금 나아지셔서 일반 병실로 옮기신 후 요양병원에서 지내게 되셨다.


두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전해 들은 건, 자녀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머니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 많이, 그리고 깊이 고민하였다는 것이다. 그 고민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에 대해 자녀들이 느낀 감정과 생각 그리고 어머니의 평소 철학과 가치관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모든 가족이 살아온 배경이 다르듯 그들의 선택과 결정이 결코 같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생과 삶을 고민할 수밖에 없던 한 가족의 선택에 대해 감히 평가하거나 가치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던 지인은 너무 행복해했다. 거동도 못 하시고 말씀도 못 하시는 고령의 어머니이지만, 당신 곁에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직장에서도 늘 정시에 퇴근해, 매일매일 어머니가 계신 병원부터 찾아가는 것이 당신의 일과라고 여기며 전혀 고단한 줄 몰랐다. 

그뿐만 아니었다. 어머니의 욕창이 심해지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기도 했고 급여를 많이 주더라도 무조건 좋은 간병인을 구하는 것이 어머니를 위한 최선이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 ⓒ 김주희

 
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늘 부끄러웠다. 그를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딸로서 내가 효심이 그리 깊지 못한 것이 애석하고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정작 내 딸이 나를 위해서 효녀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말리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인은 자신이 열심히 번 돈으로 어머니의 간병비, 병원비 등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큰 복으로 여겼다. 사실 생명이라는 존엄한 가치와 준엄한 선택 앞에 물질, '돈'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참 속물 같고 처절하리만큼 싫지만, 현실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사람들마다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너무 다양해서 어느 것이 옳고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인간의 삶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간 생각해보지 않았던 연명의료의 의료비 문제에 대해 알게 된 순간, 참으로 어렵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결정한 이유는 결국 '나'라는 사람을 성찰해본 결과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삶의 철학과 가치를 지닌 사람인가. 과연 어떤 삶, 어떤 죽음이 나에게 더 가치있는가. 결국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몫이고 부모로서 그것을 반드시 결정지어 놓는 것이 내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제도적이고 합법적인 장치로 그것을 보장해주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가 먼저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자녀에게 그 어려운 결정이나 짐을 지우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다행스럽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고 싶다, 정말로 

단언컨대, 나만의 삶의 철학과 가치에 의해서 나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 같다. 나는 늘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나의 죽음도 응당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이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계속 그렇게 유지할 것이다.

어느 날 문자가 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도 집으로 도착했다. 나는 그것을 받은 날, 첫째 아이에게만 이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엄마는 의식이 없고 기계에 의존해서 병실에 누운 채 아주 작은 기적을 바라는 일은 하고 싶지 않거든... 무엇보다 그 과정 속에서 너희에게 마음의 짐을 주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기는 싫어서... 엄마가 지난번에 결정한 거야... 근데 미리 상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엄마의 선택이고 결정이니까 혹시라도 네 눈앞에 그런 일들이 닥쳐도 엄마에게 전혀 미안해하거나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엄마가 이야기하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별로 슬프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왈칵 눈물이 날 듯 하였다. 예상 외로 매우 이성적이고 냉철하기만 한 첫째 아이가 금세 붉어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더 울컥했던 것 같다. 아이가 나에게 놀라면서도 슬픈 듯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만약에 나는 엄마가 그렇게라도 살아있는 것이 좋을 수도 있잖아. 그럼 어떻게 하지?"

그 순간 아주 잠시 내 머리에 물음표가 그려지면서 혼돈스럽기도 했지만, 아이의 감정보단 아이의 삶에 초점을 둔다면 내 진심을 정확히 알리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금세 스쳤다. 그래서 확실한 나의 의사 표시를 해야만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엄마가 그렇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거니깐 엄마가 원하는대로 해주는 것이 더 맞는 거라고 생각해. 엄마는 가장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고 싶다. 정말로..."

그리고 나는 연명치료거부가 충분히 생명 연장이 가능한 사람에 대한 단순한 의료행위 중단이 아니라, 의료 행위로도 회생 가능성이 없을 때 하는 것임을 아이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내가 늘 메고 다니던 가방의 안주머니에는 지금도 등록증이 들어있다. 가끔 운전을 하다가 생각했다. 혹시라도 나 홀로 사고를 겪거나 잘못되는 일이 생긴다면, 이것이 여기 있는지 아무도 모를 테니 언젠가는 가족 중 누군가에게 주어야겠다고... 

아직은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안 되겠고, 우선 남편과 이야기해서 어디엔가 잘 보관하겠다 다짐도 했다. 그런데 참 말이 쉽지, 그 카드를 꺼낼 자신도 없고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내내 두었다가 1년 만에 처음으로 꺼내보았다.

우리 사회는 웰빙(well-being)과 함께 언제부터인가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 전 나는 지인으로부터 중학생 자녀가 학교에서 '웰다잉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전해들었다. 

나에게도 이 단어가 참 생경하거늘, 중학생에게는 더욱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웰빙'과 '웰다잉'은 어쩌면 불가분의 관계라는 생각도 든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 글을 쓰니 왠지 마음이 무겁고 싱숭생숭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지인의 자녀가 추전해준 '웰다잉'에 관한 책들부터 찬찬히 한번 읽어봐야겠다. 그럼 이 무겁고 복잡미묘한 감정이 일부분 정리가 되지 않겠나 싶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죽음 #웰다잉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 속 크고 작은 이야기를 전하는 행복예찬론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40대의 방황이 주는 의미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