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 것은

54년차 부부의 일상

등록 2021.07.02 17:24수정 2021.07.0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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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 54년차다. 어떻게 이처럼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아왔는지, 놀랍기만 하다. 나는 선을 보고 4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남편 나이가 32살, 내 나이 26살이었다. 남편의 나이가 노총각이라 마음이 바빴던 이유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32살도 노총각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엉겁결에 결혼을 하고 내가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을 던져진 여행을 온 방랑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힘들어도 살아내야 했다.


지금 내 삶의 궤적을 되돌려 보면 말도 안 되는 그런 시절을 살아냈다. 그때는 그렇게만 사는 줄 알고 살았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매일 삶의 굴레 안에서 일상들을 살아 냈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야 하니까 견뎌낸 세월이다. 고달픈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 날부터는 결혼이란 것이 나를 보호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구나 싶어 마음 한편이 든든해졌다. 

남남인 사람들이 부부로 만나서 자식 낳아 기르고 결혼까지 시키고 반백 년을 살아 냈으니, 긴 긴 세월이다. 말을 하자면 사연이 많기도 하다.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하는 가치와 취향이 다른 사람이 한 집에서 완전히 한 마음이 되어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로 맞춰서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내가 이 만큼 살아보니 부부란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 철로와도 같다. 젊어서는 서로의 생활 패턴이 달라 싸우고, 생각이 달라 싸우고, 취향이 달라서도 싸웠다. 우리 세대 남자들은 절대로 여자에게 져주지를 않는다. 항상 우리 가정의 주도권은 남편이 가졌다. 경제권도 남편에게 있다. 본인이 추구하는 대로 가정을 이끌어 갔다.

누구 한 사람이 져주고 존중할 때 원만한 관계가 이어진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지키려는 자존감이 있으므로 나를 비워 내는 연습을 해야 했다. 오랜 시간 치열하게 다투고 갈등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의 길을 택하는 것도, 같이 살아온 세월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사람을 삶을 이해해 주고 서로 자기 역할을 분담하면서 살아가는 일도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집안일도 나눠 해야 하지, 혼자만 하도록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일은 상대를 힘들게 하는 일이다. 다툼을 피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서로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라서 더 그렇다. 서로가 애틋해진다.


여름의 절정인 7월이다. 말 그대로 더위가 요 며칠 기승을 부린다. 아침부터 날씨는 덥고 우리 집은 여름이 오면 창문을 열지 않고 꼭꼭 닫아놓고 살고 있다. 문을 닫는 첫 번째 이유는 미세먼지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먼지가 집으로 들어온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여름만 되면 숨이 막히는 듯해 집에서 멀리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피난 갈 곳도 없다. 둘째 딸은 매번 자기 집에 와서 지내라고 말은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꽃자리이다. 아무리 더워 힘들어도 내가 살고 있는 집, 내 자리가 제일 편하다. 이 생활도 몇 년을 지나고 보니 이제는 만성이 되어 견딜만하다. 몇 년 전에는 여름만 되면 나는 창문을 열고 닫는 일 때문에 남편과 많이 다투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은 양보를 해야 같이 살 수가 있다.

남편은 호랑이 나는 원숭이. 원숭이가 호랑이를 이기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내려놓고 나를 조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사람 사는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사는 것은 견디는 일이다. 혼자 살 용기가 없으면 같이 사는 사람에게 잘 적응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나는 이제 방관자가 되었다.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살도록 무심하게 두고, 내 할 일만 찾아서 한다. 마음을 비우니 평화롭다. 예전에는 마음대로 못하고 사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는데 이제는 참아내니까 견딜 만하다. 남편이 살아 있는 자체로 감사하고 고맙다. 남편 나이가 팔순이 넘어가면서 주변에서 자꾸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고 아니면 아파서 누워 계신다.

나는 남편이 아침이면 새로 만난 사람처럼 반갑다. 나이가 들면 부부는 서로 의지하는 동반자이면서 친구와 같다. 하루 일과를 거의 같이 보낸다. 말을 하지 않지만 한 공간 안에 사람이 같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사람이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다. 

언제 서로 헤어질지 모르는 나이다. 나는 매일 남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가 편히 지내도록 노력한다. 이날까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마음을 채워주고 싶다. 사람이 살다 보면 왜 마음 상하고 미운 날도 없을까. 그래도 홀로 남았을 때 되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려 한다. 

사람이 남남끼리 만나 부부가 되어 삶을 살다가 마무리하는 것은 인생이라는 연극을 한 편을 남기고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반세기가 지나고서야 나는 부부의 애잔하고 진한 인생을 느낀다. 그가 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부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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