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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자 아쉬워 하는 아이들, 이게 무슨 일?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 멘토링 하는 중학생 동아리팀 ‘스토리텔러’ 지도를 마치고

등록 2021.07.05 09:14수정 2021.07.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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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빠랑 윤규랑 이렇게 만들었어요. 동시도 썼어요. 들어보세요."
 

뜨거운 부채
- 박찬희(진포초등 3)


시원한 부채가 시원했는데
햇님이 쨍쨍해서 뜨거워져서
뜨거운 부채가 됐다!

부채가 뜨거워져서
손이 불이났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수박을 먹었다


초등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동시를 짓고, 그림도 그리는 중학생 동아리팀 '스토리텔러'의 상반기 활동이 끝났다. 벌써 5년째 하는 중학생 봉사활동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서점을 가고,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를 멘토링 해보자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해마다 이 봉사활동을 중학생들에게 공지하면, 평균 15명 정도의 학생들이 지원을 하고, 짝꿍이 되는 어린이들도 같은 수가 모인다. 중학생과 초등 저학년 학생들 짝꿍은 뽑기로 정한다. 내가 뽑기 상자에 중학생 멘토들의 이름을 써 넣으면 어린이들이 뽑는다.

소위 어린이들이 중학생 봉사자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순간의 긴장을 말할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즐겁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도 13명의 어린이들이 신청했고, 봉사자들은 15명이 신청했다. 짝꿍이 없는 봉사자는 활동시마다, 사진과 기사 작성을 담당하며, 나의 지도를 돕는다. 4월부터 7월까지 총 4회의 활동을 했고, 어제는 여름을 맞이해서 부채만들기와 동시짓기를 했다.

동시의 키워드로 여름과 부채를 제시했다. 이제는 중학생들과 친해져서 활동할 때 장난도 잘하고, 형, 언니, 소리에 부끄럼이 없다.

이 스토리텔링은 어린이들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핵가족시대에 살고 있는 중학생들 형제들도 많아야 둘이다. 형제니, 자매니, 동생, 언니, 형, 이런 말의 사용빈도가 현저히 낮아진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모임에서 새로운 동생을 만나서 자신들의 어린시절을 생각하기도 한다. 뜻밖에도 이 활동을 좋아하는 중학생들이 많다. "너도 지금 밖에 시간이 없어. 중학생이 되면 바빠서 재밌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라고 제법 어른스러운 충고를 해준다.

어제는 상반기의 마지막 활동인데, 어린이들이 너무 바빴는지, 5명이 참석했다. 각 어린이 당 두 명의 멘토를 두고 활동 내용을 설명했다. 각자, 멋진 부채를 만들고 이에 어울리는 동시를 짓는 거라고. 각자의 동시를 발표할 거라 우수작은 선물이 있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의 부채 동시 박찬희(진포초등3)학생의 동시 '뜨거운 부채' 박유빈(진포초등5)학생의 동시 '차가운 부채' ⓒ 박향숙

 
중학생들은 어린이들에게 어떤 색이 좋은지 묻고, 어린이들은 형, 언니의 생각을 물었다. 색을 칠하는 어린이의 손을 잡아주며 색칠이 비틀어지지 않게 도와주었다. 너무 긴장해서 손에 땀이 배면 중간중간 부채질을 해주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부채에 그림그리기와 동시 짓기가 끝났다. 어린이들의 낭송이 시작됐다.

  시원한 부채
- 박유빈(진포초등 5)

무더운 여름에 나에게 힘이 되는 부채
시원한 바람으로 무더위를 날려주는 부채
짜증나는 여름에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부태
사막같은 여름에 오아시스 같은 부채
부채는 여름의 필수적인 물건


5학년다운 어휘와 목소리로 당당하게 낭송을 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1학년 윤규의 동시는 멘토링 누나들이 도와준 흔적이 가득했다. '어디선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내 여름의 추억'이라니! '중2 사춘기 누나들의 마음이 담겼구나'라고 말하니, 수줍은 소녀들의 웃음이 넘쳤다.

5명의 동시 발표도 끝나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활동을 하도록 장소를 제공해주는 한길문고 책상을 깨끗이 청소했다. '이제 가을에 만나는 거다'라고 말하자, 모두들 아쉬움의 소리가 나왔다. 한 어린이는 "형아, 잘 지내, 가을에 또 만나"라고 하고, 한 중학생은 "재밌었어. 여름에 아이스크림 너무 많이 먹지마. 배탈 나"라고 답했다.  

스토리텔러팀의 여름부채 상반기 마지막 활동으로 여름부채 만들기와 동시짓기 ⓒ 박향숙


중학생들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에서 스토리텔링은 나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입시에 쫒기는 우리 학생들이 한 번이라도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경험하길 원한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책만이 아니고, 만화책이라도 좋으니 학생이 읽고 싶은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직접 찾게 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지도하는 것이 얼마나 큰 배움이고 공부인지 알게 해주고 싶다.

이제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이다. 방학 중 봉사활동으로 중고생들에게 필사시화엽서나눔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 엽서나눔에 대한 소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읽었다고 나의 모교인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전화를 주었다. 동아리를 구성해서 여고생들의 감수성을 표현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나도 역시 스토리텔링 팀의 중학생들에게 함께 시를 필사해보자고 권유해 보련다.
#부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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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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