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래종입니다, 뽑아내시겠습니까?

송미란(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 들)

등록 2021.07.07 11:39수정 2021.07.0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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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력이 좋은 망초와 개망초 ⓒ 용인시민신문


날이 풀린 후, 해가 나고 비가 오길 반복하면서 텃밭에 심은 채소와 마당 꽃과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며 흐뭇함을 느낀다. 보고만 있어도 뭐 하나 부러운 것 없는 졸부가 된 느낌이다.


쨍한 햇볕을 피해 집 주변 그늘을 찾아가며 온종일 건달 놀이를 즐기다가 볕이 약해지는 늦은 오후에 시험공부 핑계를 대는 막내를 붙잡아 함께 고춧대에 줄을 매주었다. 하지만 밭 아래를 보니 뿌듯한 마음도 잠시, 얼마 전 낫으로 벤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잡초들이 다시 무성하다.

그중에 망초와 민들레가 눈에 띄니 이 녀석들의 번식력은 익히 알기에 씨를 맺기 전 보이는 족족 손으로 하나하나 뿌리째 뽑아버렸다. 앞서 말한 녀석들이 생김새는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외래종이라는 것이다.

외래종이라 하면 각종 미디어에서 다루는 황소개구리나 배스, 뉴트리아 같은 동물부터 꽃매미, 등검은말벌 같은 무시무시한 것들이 연상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외래종은 식용·무역 등의 목적으로 인위적인 경로를 통하거나, 태풍이나 철새 등에 의해 자연적으로 외국에서 국내로 들어온 모든 종을 말한다.
 

한창 피어있는 개망초 꽃 ⓒ 용인시민신문


이 중에서 우리나라 야생상태에서 스스로 10년 이상 번식해 국내 식물과 융화되어 생존하고 있는 종을 귀화종이라 한다. 귀화종 중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생물을 생태계교란종으로 환경부가 분류해 칭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 의도 또는 비의도적으로 유입되어 야생화 된 외래식물 모두를 통칭해서 침입외래식물이라고 부른다.

외래종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있어도 동물이나 곤충에 비해 생태계의 중간 역할을 하는 식물은 우리에게 저항감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물론 도입의 역사가 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과거 외래 식물은 고려시대 문익점의 목화와 수박 등에 이어 조선시대 고추, 감자, 호박과 같이 생활에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식물들이 주를 이루었다.

구한말 개항 이후 원하든 원치 않든 외래식물의 유입이 급격하게 증가해 지금은 국내 자생 식물 약 5500여종의 10%가 넘어가는 619종(2020년 기준, 국립수목원)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 등 대규모 관광지이거나 인구 밀집 지역 또는 공항, 항만 등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외래종임을 알 수 있는 튤립이나 라일락, 제라늄 같은 것들과 함께,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란 뜻의 망초(亡草)나 개망초, 꽃모양이 연분홍 구름 모양 같다는 자운영(紫雲英), 씨앗 속에 뽀얀 분가루가 들어 있는 분(粉)꽃, 토끼가 즐겨 먹는 토끼풀(clover), 밤에만 꽃을 피우는 달맞이꽃 등의 토착화된 식물의 예쁘고 친숙한 이름도 있다. 척박한 토양에서 먼저 정착하고 죽어서는 토질을 높혀 주는 미국자리공도 귀화식물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뿌리 내리는 곳 어디서든 싹을 틔우는 미국자리공 ⓒ 용인시민신문


그 외 대부분의 귀화식물은 도시의 도로가, 하천변, 황무지 등 일반적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된 곳에서 잘자라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도와주지만, 최근 생태계 교란 식물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얼마 전 경안천에서 제거사업을 벌였던 가시박, 단풍잎돼지풀 등이 대표적이다. 가시박은 오이와 접붙이기 위해, 단풍잎돼지풀은 군수물자에 묻어 왔다는 근거가 희박한 나름대로의 사연은 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자라 다른 식물들을 고사시키거나 꽃가루를 날려 알레르기를 일으키니 우리 이해관계와 매우 상충하는 식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니 상상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교역으로 인해 앞으로 알게 모르게 다양한 식물들이 지속해서 들어올 것이다. 그중엔 사랑스러운 식물도 있겠고, 힘들게 하는 식물도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던 핑크뮬리처럼 경제적·환경적 논리로 인한 가치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이래저래 말들이 많겠지만 우리땅에서 적응한다면 결국 우리와 함께 살게 될 생명체들이다. 외래종이라는 낙인이 찍혀 배척의 대상이 되는 생물들. 그러나 혹한과 혹서를 넘나드는 힘겨운 우리나라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환경에 순응하는 생물들은 결국, 다른 생물들과 더불어 우리의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터이다.

과연 외래종의 개체 수를 조절하고 멸종시킬 수 있다는 인간의 자만과 개입이 가능할까? 무조건적인 제거 방법보다 자연식생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관리방안을 세우는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진 않을까 반문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외래종 #귀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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