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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위에 "나가자" 시위하는 사남매, 아빠가 내린 결단

[폭염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 '여름이니까, 땀 좀 흘리면 뭐 어때' 생각을 바꾸니 편해졌다

등록 2021.07.23 13:16수정 2021.07.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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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이 휴대용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연일 폭염주의보 안내 문자가 날아오는 요즘이다. '푹푹 찐다'는 표현을 누가 만들었는지 제격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잠시만 밖을 나가도 어느새 내 몸은 잘 익은 호빵이 된 듯 열기를 잔뜩 머금고 축 내려 앉는다.

하지만 이 순간, 아무리 대단한 표현의 달인도 에어컨을 만든 사람보다 존경 받을 순 없다. 에어컨은 여름이 되면 숭배하게 되는 축복 수준의 성물. 뜨거운 여름의 원인에 이 성물이 뿜어내는 열기도 한몫 한다는데, 애써 모른 체하며 에어컨을 틀 수밖에 없는 것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곳에 모여 숨만 쉬어도 산소가 모자란 느낌의 우리 집은 여섯 식구가 함께 산다. 네 아이의 힘찬 들숨 날숨이 얼마나 격한지, 거기다 열기는 덤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은 에어컨을 일찍부터 가동시켰다. 아파트 1층에 터를 마련한 터라 창문을 열기도 부담스럽고 열어둔들 밤새 어린 이슬에 습도만 높아져 체감 온도만 올라간다.

사실 습도가 더 문제다. 에어컨을 세게 틀면 너무 춥고 적당히 틀면 눅눅한 공기 탓에 냉방 효과도 줄어들고 감기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제습기 없이 에어컨만 틀다 집안 곳곳에 생겼던 곰팜이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에어컨과 제습기의 콜라보레이션이 필요해진다. 냉기를 퍼트리는 동시에 습기를 잡아야 그나마 안전하게 냉방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에어컨을 사용할 땐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조금만 세게 틀어도 콧물을 흘리는 아이들과 무릎이 시려오는 나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집 강골은 역시 아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혼자만 쌩쌩하다. 아무래도 아이 넷과 어른 아이 하나를 돌보는 엄마여서 그런지 그 강인함이 남다르다. 

아무튼, 에어컨은 최고 강력한 모드로 온 집안을 얼려버리겠다는 기세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냉기가 돌면 27도를 맞추고 풍향을 30도 각도로 천장을 향하게 한다. 그리고 제습기를 가동시켜 냉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습기를 제거하면 내가 찾은 우리 집 최적의 냉방 시스템이 완성된다. 적당히 시원한 쾌적한 상태. 이만하면 살만하다.

"나가자" 시위대 탄생

그런데 요즘 이 최적의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이다. 등하굣길에 뜨거운 뙤약볕에 그렇게 그을리고 겨드랑이에 샘물을 만들어 오면서도 기회만 되면 나가자고 시위를 한다.

한쪽에 앉은 둘째가 "나가고 싶다... 나가고 싶다.." 그러고 나면 저쪽에 드러누운 셋째가 "공원 가서 자전거 타고 싶다..." 그리고 분위기에 편승한 막내가 동그란 눈을 뜨고 "공원에서 물놀이 하면 재미떠요" 한다. 이 환상의 콤비들.

하지만 이런 시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는 그 뒤에 있다. 너무 더워 안 된다는 말에 장착하는 '지나치게 서운하다는 듯 시무룩해지는 표정'. 이게 진짜다. 아... 마음이 이상해진다. 괜히 안돼 보이고 미안해지고 대신에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측은지심이 마구마구 일어나고 만다.

이럴 땐 첫째의 동조가 필요하다. 때마침 열사병과 일사병을 배워 온 아이에게 너무 더운 여름날 나가 놀면 위험하지 않느냐고 간절한 눈빛으로 묻는다. 하지만 아이는 "물 많이 마시고 모자 쓰면 되지 않을까요?"라는 대답으로 내 힘을 빼고 만다. 도와줄 줄 알았던 첫째의 배신이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얘네 모두 한통속이다!

코로나 핑계도 하루 이틀, 어쩔 수 없이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영화 시청과 팝콘 제공. 평소 TV를 자주 보여주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딜에 응했고 하루는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어디 그날 하루만 여름인가. 한동안 비가 오는 것이 고마울 정도로 날은 더웠고 자연스레 바깥출입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등하굣길 외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아이들의 외출 욕구도 커져 갔다.

땀 한 방울 나는 것이 싫어 집안에서의 동작을 최소화하고 땀 흘린 아이들을 씻기는 것이 버거워(X4) 뛰지 않는 것이 어떠냐며 진지하게 권하기도 했던 나는, 오디오북을 듣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은 원래 더운 거잖아. 더우면 땀이 나는 건데... 나 너무 겁먹은 거 아냐?'

나무 의사 우종영 작가는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에서 말한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현재를 희생하는 건 오직 인간뿐이라고. 도보 여행을 나서며 짊어졌던 많은 짐이 막연한 두려움인 것을 깨닫고 내려놓음으로써 편안해졌다고.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어째서인지 피하고 싶었던 이 무더위를 '아깝게' 날려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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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겁먹는 건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 pixabay

 
사실 그랬다. 땀 흘릴까 움직이지 못한 움츠려듦은 두려움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더위와 땀에 지레 겁먹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제 겁먹는 건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외쳤다.

"나가자!!"

온 집안에 기쁨의 돌고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물총과 여벌옷을 챙겨서 가까운 공원으로 온 식구가 나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 비장하게 물총과 물통(물총이 모자라 구멍 뚫은 페트병 동원)을 든 자못 비장한 식구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비명들. 비명 소리에 웃음이 묻어나는 건 언제 들어도 신기하다.

한바탕 물놀이에 생쥐 꼴이 된 아이들과 나는 언제 피한 적이 있냐는 듯 태양 아래서 땀인지 물인지 모를 물기를 닦아가며 뛰놀았다. 나오기 전까진 몰랐는데, 다 젖고 나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피해 다녔나 싶었다. 생각지 못한 자유로움 때문인지 아이들보다 더 신나하는 아빠가 있었노라는 아내와 어머니의 증언이 있을 정도였다. 이제 이쯤에서 나도 주옥같은 말을 한 마디 남겨도 될 듯하다.

"집콕은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은 집안에선 방치다. 냉방이 되지 않는 데크에 나가든, 온 종일 뛰어 다니며 땀을 내든 그냥 두기로 했다. 여름이니까, 땀 좀 흘려도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샤워 한 번 더 시키지 싶다. 그리고 나도 동참했다. 땀이 날까봐 움츠러들었던 몸을 그냥 마구 굴렸다. 아이들과 함께 뛰고 아내의 요리를 돕고, 그랬더니 땀과 함께 웃음이 배어나왔다. 짭조름함과 달콤함이 함께 하는 단짠단짠의 일상이 상당히 맛깔났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별것 없는 내려놓음을 실천하고 있다. 어른의 걱정을 내려놓고 아이의 즐거움을 생각하기로 했다. 더운 것 말고 재미난 것을 먼저 생각하고, 지레 겁먹는 것 말고 마구 들뜨기로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더위의 두려움과 아이들을 씻겨야 한다는 부담감 위에 즐거움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함께 씻는 동안에 그날 일을 얼마나 조잘대며 말하는지 씻는 내내 조용할 틈이 없다. 돌고래에 이어 앵무새가 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용기란 게 별건가 싶어진다. 더우면 땀 흘리고 땀 흘리면 씻으면 되는 것을 무어 그리 두려워했을까. 마스크를 쓰고 있느라 눈 주위만 벌겋게 익은 아이들의 반달눈이 이렇게 네 아이를 씻기는 힘듦(X4)도 잊게 만드는데 말이다.

올여름, 아무리 더워도 시원하게 찡그리는 것보단 땀에 흠뻑 젖어 미소 짓는 날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여름은 원래가 더운 것이고, 더우면 땀이 나기 마련이고, 땀이 나고 나면 이 무더운 여름도 두렵지 않게 되니까.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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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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