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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기록문화재 1호될 조석헌 역사, 무슨 내용 담겼나

"충청도 서북부 지역의 지역사 복원 및 이해에 기여할 소중한 사료"

등록 2021.08.06 10:16수정 2021.08.0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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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식 유족회장이 4대에 걸쳐 보관, 관리해 온 동학 관련 유물을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기증, 기탁했다. ⓒ 김동이

 
문영식 동학농민혁명 태안군유족회장이 4대에 걸쳐 보관하고 있던 소중한 유물을 지난 7월 23일 태안군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기증, 기탁했다. (관련 기사 : 4대 걸친 동학 유물 600여점 기증·기탁… '문영식 가' 전국 유일 http://omn.kr/1ukdr)

문 회장은 선대로부터 보관하고 있던 3·1운동 독립선언서, 순국자 명단 등 총 226점은 기증했으며, 380점에 이르는 유물은 5년을 기한으로 기탁했다.


이번에 기증·기탁된 유물 중에서는 특히 충청남도기록문화재 1호로 지정될 기록물도 포함됐다. 태안 갑오동학혁명 순도자 명단과 태안 조석헌 역사가 그것이다.

실제로 충남도는 지난 7월 12일 충청남도 공고(제2020-1138호)를 통해 태안 갑오동학혁명 순도자 명단(泰安 甲午東學革命 巡道者 名單)과 태안 조석헌 일기(泰安 曺錫憲 日記) 등 2점을 충청남도 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기탁된 조석헌 역사는 현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면 충청남도의 기록문화재 1호로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 김동이

   
그중에서도 동학농민혁명 당시 태안 지역의 대표적인 동학농민군 지도자였던 조석헌(1862~1931)의 역사는 단연 눈길을 끈다.

내포 지역 동학의 주요 지도자로서 경험한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혁명 당시인 1890년대 초부터 1930년대 초까지 충청도 서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의 동향이 상세하게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헌 역사는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충청도 서북부 지역의 지역사 복원 및 이해에 기여할 만한 소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조석헌 역사와 관련해 장경희 태안군 문화예술과 과장은 "충청남도 기록문화재 중 최초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읽을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사료이자 하나의 비망록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태안군도 충남도에 도지정 문화재 지정신청 의견서를 통해 "조석헌 역사는 태안지역을 포함한 충청도 서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의 지역별 사례연구를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1차 사료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어 "동학농민혁명의 지역사례 연구와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성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충남도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전라도로 상징되는 지역성을 벗어나 조선팔도를 포괄하는 전국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조석헌 역사가 중요한 사료라는 것이다.

죽기 전까지 교목, 접주, 교장으로 활동

그렇다면 조석헌 역사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그 전에 앞서 비망록을 쓴 조석헌은 누구일까 알아보는 게 먼저다.

1965년, 문원덕의 주도로 작성된 '갑오동학혁명 순도한 순도자 명단'은 조석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갑오동학농민혁명 당시 참전 후 대접주 상암 박희인 선생 수하로 해월신사 모시고 10여 년 풍운 속에서 수난을 보내시다가 햇빛을 갑진(甲辰)에 보자 예산 지방으로 이거하시여 종신토록 교목, 접주, 교장 등으로 종신(從身)타가 환원(還元)하시다." 

조석헌은 1862년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에서 태어나 1894년 동학에 입도해 접주가 되었다. 1894년 10월 태안에서 기포해 승전곡, 신례원, 홍주성 전투에 참여했다. 1895년 이후에는 도피생활을 하면서 해월 최시형의 은신처를 찾아다니며 물자를 공급하고 연락 업무를 담당했다. 

조석헌은 1896년에는 수접주, 1897년에는 교수에 임명됐다. 1898년 최시형 순교 이후에는 해체 위기에 있었던 교단 조직재건에 혼신을 다했다. 1905년 천도교 창건 이후에는 1907년 천도교 교령을, 1908년 대정을, 1913년 이후 포덕사, 예산교구장, 종리사 등으로 활동했다. 1927년에는 낙암(樂菴)이란 도호(道號)를 받았고, 1931년 70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포덕사와 천도교 종리원, 감사원, 도사 등을 맡았다.

사망 직전까지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회고록으로 남긴 조석헌 역사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일기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보면 이렇다.
 
"갑오년에 태안군수는 신백희이며, 순무사(巡撫使)는 김경제이다. 그 사람이 태안군에 와서 동학교인을 모두 귀화하라고 설유(說諭)한 후에 수두령(首頭領) 21인을 잡아 가두었다.

10월 1일 사시(巳時)에 이 21인을 물고 처참하려고 순무사와 군수가 무사를 나열하며 장(帳)대에 좌기하고 교인을 모두 잡아와 참살하려 할 즈음에 일반 교인이 하룻밤 사이에 수만 명이 모였다. 10월 1일 아침에 운집하여 당시의 순무사와 군수를 묶어 놓고 마구 때려 상해가 된 까닭에 교인이 차차(次次) 단결되어 충남에서 모두 일어나 운동이 됐다."
 
"사람들의 이목이 번다(煩多)하여 다시 사류(沙流) 의천루(義川樓)로 산성리(山城里) 후면으로, 예산 후봉으로 향천사 상봉에 밤새도록 행보하야 쇠진한 기운을 잠시 암석에 의지하니 때는 한밤중이었다.

서로 몸을 의지하여 잠깐 눈을 붙이다가 홀연히 잠을 깨니 해가 동산에 떠 있었다. 허리를 굽혀 산 아래를 바라본 즉 예산군 장대(場垈)였다. 크게 놀라고 겁을 먹고 이산 저산의 응봉고봉(應峯高峰)으로 방향 없이 일직선으로 걸어가니 드른리 동리에 도착했다."
 
이처럼 조석헌의 역사에는 동학농민혁명군들의 동향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일기도 담겼다.

전문가들이 본 조석헌 역사 "사료적, 문화재적 가치 높다"
 

조석헌 역사는 태안지역을 포함한 충청도 서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의 지역별 사례연구를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1차 사료 가운데 하나다. 동학농민혁명의 지역사례 연구와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태안군 제공

 
조재곤 서강대학교 연구교수는 "사돈지간인 문장준의 일지 형식의 기록 '문장준 역사' 및 '순도자 명단' 등과 함께 이 책은 충청도 서북지역 동학농민군 역사와 후기 동학농민운동사, 천도교사 이해와 복원을 위한 중요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894년 10월 태안에서의 동학농민혁명 기포와 전투상황, 1895년 해월 최시형의 도피과정, 이후 동학교단 재건운동, 1906년 천도교 충남서부지역 활동상황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석현 역사의 사료적, 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조석헌 역사는 동학농민혁명에 직접 참여한 동학농민군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고, 조석헌 역사 필사본이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점에서도 문화재적 가치도 높다"며 "관군을 비롯한 진압기록은 많이 남아있지만, 동학농민군이 직접 작성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른바 내포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충청도 서북부의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연구조사부장은 "동학농민혁명 이후 태안지역 및 동학교단의 상황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며 "조석헌이 최시형의 은신처를 찾아다니며 물자를 공급하고 연락업무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이후 태안과 동학교단의 상황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충남에는 동학농민혁명 관련하여 문화재지정이 전무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석헌 역사가 반드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조석헌역사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태안동학농민혁명 #문영식 #태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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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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