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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아이들은 나의 스승]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 아이들...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삼는 게 맞을까

등록 2021.10.03 11:17수정 2021.10.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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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경북 포항 영일만 일원에서 열린 제73주년 국군의날 기념행사에서 전투기들이 연막을 쏘며 날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아이들은 옛 국군의 날 풍경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시간표에 교련 과목이 버젓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10월 1일은 여느 국경일 못지않았다. 서울에서는 장갑차가 도심을 행진하고 전투기가 곡예비행을 하는 화려한 경축 행사가 있었고, 학교마다 의무적인 기념식이 있었다.

무엇보다 법정 공휴일이었다. 개천절이 10월 3일인데다, 대개 이맘때쯤이 추석이어서 길게는 일주일 동안 연휴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선지 당시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국군의 날로부터 '가을 방학'이 시작된다는 말까지 나돌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부러 오늘이 무슨 날인지 물었더니, 한 아이가 대뜸 지난 시간 배운 내용이라며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대구 항쟁이 벌어진 날이라는 거다. 순간 당황했지만 짐짓 태연한 척하며 그를 칭찬해주었다. 

왜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죠?

10월 1일에 대구 항쟁을 떠올린 아이는 23년 교직 생활 동안 처음 봤다. 그도 그럴 것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기 전까지 대구 항쟁은 교과서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다. 지금껏 배운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현재는 보충학습 자료로 교과서 본문 아래에 수록돼 있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도 비교적 꼼꼼하다. 더욱이 미군정에 맞선 대규모 항쟁이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것에 아이들은 적잖이 놀라는 눈치다. 참고로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을 여기에 옮겨본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시민들의 시위 중 경찰의 발포로 시민 한 명이 사망하자 이를 계기로 대규모 항쟁이 일어났다. 항쟁은 쌀을 강제로 수매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미군정의 강압적 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시민들은 친일파 출신 경찰 임용, 식량 부족, 생활난 등 미군정의 정책을 비판하고, 좌파 인사 구속에 항의하였다. 미군정은 경찰, 군인과 미군 및 우파 청년단까지 동원하여 항쟁을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민 수백 명이 사망하고 7천여 명이 검거되었다. 경찰 측에서도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해냄 에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233쪽>

전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면, 더 도드라지게 보이고 그 기억도 오래가는 법이다. 아이들에게 대구 항쟁이 그랬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대구의 별칭이 '조선의 모스크바'였다는 부차적인 설명까지 기억해냈다. 10월 1일에 대구 항쟁을 떠올린 게 무리는 아닌 셈이다.


대구 항쟁은 해방 직후 미군정의 실정에 대한 민심의 이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미군정에 관한 내용은 해방 후 3년 동안 미군정이 실시됐다는 게 사실상 전부였다. 해방 직후 발표된 '맥아더 포고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룬 것도 처음이다. 

해방 직후 혼란은 신탁통치안으로 인한 갈등으로 비롯된 것이고, 극단적인 좌우 이념 대립 속에 제주 4.3과 여순 사건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아이들이 아는 6.25 전쟁 이전 역사의 얼개다. 미소 냉전이 근본적 원인으로 제시될지언정 미군정에 관한 내용은 통째로 비어 있었다.

아이들은 '맥아더 포고령'을 접하고 대구 항쟁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공부하며 미군정 시기의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다.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제주 4.3과 여순 사건에 미군정의 책임이 작지 않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다. 단언컨대, 교과서의 내용이 풍성해진 성과다. 

지금껏 아이들도 맥아더라고 하면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떠올리고 '구국의 영웅'으로 알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한 미국인'으로 소개하는 아이도 있었다. '맥아더 포고령'은 그들의 오랜 편견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대구 항쟁이 일어난 날이면서, 국군의 날이기도 해."

이렇게 자문자답했더니, 아이들은 앞다퉈 10월 1일이 국군의 날로 지정된 이유를 물어왔다. 대한민국 국군이 10월 1일에 창설됐을 거라는 추측에서부터 6.25 전쟁 당시 압록강까지 진격한 날일 거라는 등의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그런가 하면, 일제강점기 무장 독립전쟁의 상징인 청산리 대첩의 승전일이 아니냐며 질문하기도 했다. 교과서에선 청산리 전투가 1920년 10월에 벌어졌다고만 서술돼 있으니 억측만은 아니다. 

알다시피, 10월 1일은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한 뒤 다시 북으로 진격하며 38도선을 돌파한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군의 날로 지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말하자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한 날을 기억하자는 셈이다. 

그러자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9월 15일이나 서울을 수복한 9월 28일이 제격일 성싶지만, 굳이 38도선 돌파에 의미를 둔 건 왜일까. 한 아이는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침한 것은 '전반전'에 불과하다고 했다. 반대로 우리가 38도선을 넘은 것이니 '후반전'의 시작으로서 기념할 만하지 않으냐고 눙치기도 했다. 

"3.1절은 3.1운동이 일어난 날이고, 7월 17일 제헌절은 헌법이 제정된 날이잖아요. 8월 15일 광복절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날이고, 10월 9일은 한글이 창제된 날이고요. 그런데, 왜 국군의 날은 뜬금없이 6.25 전쟁 중 38도선을 넘은 날로 삼은 걸까요? 그나저나 국군은 언제 창설된 건가요?"

한 아이의 질문에 모두가 맞장구를 쳤다. 기념일은 하나같이 시작된 날이고, 일어난 날이며, 세워진 날인데, 왜 국군의 날만은 그렇지 않으냐는 물음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를 어디에 두느냐에 대한 시각이 천양지차라는 내 답변을 아이들은 두루뭉술하다며 비아냥거렸다. 

급기야 교과서에선 일언반구조차 없는 국방경비대와 국방경비사관학교까지 설명해야 했다. 국방경비대는 미군정이 창설한 군사 조직이다. 미군 장교들을 중심으로 꾸려졌기에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로 삼기엔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 국방경비대 창설일은 1946년 1월 14일이다. 

국방경비대가 간부 육성을 위해 창설한 곳이 국방경비사관학교다. 국방경비대가 육군의 전신이라면, 국방경비사관학교는 육군사관학교의 뿌리다. 친일반민족행위를 일삼던 만주국 군인들이 대거 입교하면서 '신분 세탁'이 이뤄졌고, 그들은 6.25 전쟁을 거치며 애국자로 둔갑했다. 국방경비사관학교의 창설일은 1946년 5월 1일이다. 

곧, 이들을 대한민국 국군의 연원으로 보긴 민망하다. 그렇다면 우리 국군이 미군정의 예하 부대로 시작됐다거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손에 의해 창설됐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국군의 날이 생뚱맞게 6.25 전쟁 중 38도선을 돌파한 날로 지정된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만이라도 9월 17일을 기억해요"

솔직히 국군의 뿌리가 없는 게 아니라, 지금껏 주류 정치인들과 학계에서 그걸 애써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명실공히 국군의 뿌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창설한 한국광복군이다. 우리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토 박아 놓지 않았는가.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중심이 된 한국광복군은 조선독립동맹의 조선의용군, 만주에서 활약한 동북항일연군 등과 함께 해방 때까지 항일 전쟁을 전개했던 독립군 부대다. 한국광복군을 기반으로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미군정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인하면서 입지가 좁아졌지만, 독립운동사에서 한국광복군 창설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아이들은 국군의 날을 한국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것저것 따져볼 필요도 없이, 헌법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나아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을 기리고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노력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아이가 오늘의 중구난방 대화를 매조지듯 이렇게 제안했다. 

"국가가 기념일을 지정하는 건 기억하고 기리자는 취지잖아요. 어차피 쉬는 날도 아닌데, 달력에 뭐라 적혀있든, 우리만이라도 10월 1일은 대구 항쟁 기념일로 부르고 국군의 날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을 떠올릴 수 있게 9월 17일로 정하기로 해요."
#국군의 날 #대구 항쟁 #한국광복군 #국방경비대 #국방경비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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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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