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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방화사건의 '가야사지' 발굴현장 공개

가야사지 8차 발굴 현장... "불에 탄 흔적 찾기 어려울 듯" 밝혀

등록 2021.12.02 18:43수정 2021.12.0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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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묘 인근에서 가야사지 발굴작업이 인행중이다. ⓒ 이재환

 
흥선대원군은 아버지 무덤을 쓰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웠을까. 아쉽게도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남연군 묘역 인근에서는 가야사지 발굴 작업 성과가 공개됐다. 가야사지는 충청남도지정 기념물 제150호다. 앞서 예산군과 재단법인 동방문화연구원은 지난 2018년부터 가야사지를 발굴조사해 왔다. 예산군이 발굴 작업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8번째로 발굴 작업은 2~3년 더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발굴은 <매천야록>에 흥선대원군이 가야사에 있던 탑을 철거하고 이 탑이 있던 자리에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는 기록을 토대로 남연군 묘역 주변을 조사한 것에서 시작됐다. 

예산군에 따르면, 이번 8차 조사에서는 석조불상, 옥개석, '가량갑사(加良岬寺)' 명 암키와, 장식기와, 연화문·일휘문 수막새, 당초문·일휘문 암막새 등이 출토됐다.

예산군은 "전형적인 신라시대 연화문 수막새 등을 포함해 고려 및 조선시대 유물들도 함께 출토되고 있어 가야사는 남북국시대 신라 때 창건돼 남연군묘가 조성되기 이전까지 불사가 계속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탑의 옥개석 조각 등이 출토되는 것은 '이곳에 세워졌던 탑을 부수고 남연군 무덤을 조성했다'고 전하는 <매천야록>의 기록을 실제로 입증하는 근거"라며 "이와 함께 출토된 석조불상 조각은 크기로 보아 각종 기록에 '탑의 4면에 있는 석감(石龕)에 불상을 안치했다'고 전하는 기록에 따라 가야사 탑 석감안에 모셨던 불상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예산군 이강열 문화재팀장에 따르면 가야사가 문헌에 나오는 것은 1077년 '망이 망소이 난' 시절이다. 통일신라시대 와당이 유물로 나오는 걸로 봐 통일신라 시기에도 가야사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사지에서 출토된 유물 ⓒ 이재환

 
이 외에도 관심을 끄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이른바 '가야사 방화사건'이다. <매천야록>에는 흥선대원군이 가야사를 불태우고 절을 없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이를 모티브로 조승우와 지성이 주연한 영화 <명당>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입증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강열 예산군청 문화재 팀장은 "남연군 묘와 관련된 구전 이야기들이 많다. 탑지를 정리하고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며 "그 외에도 금탑 터는 아직 발굴이 안됐다. 하지만 탑과 관련된 유물들이 나왔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연군 묘를 쓰기 전 지표면을 일제히 정리한 흔적이 있다"며 "그 때문에 불에 탄 흔적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예산 가야사지 #가야사지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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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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