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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에 묻는다, 디지털 성범죄 차단 의지가 있긴 한가

n번방 방지법 시행 첫 날부터 '검열', '사찰'이라며 매도... 피해자는 안중에 없나

등록 2021.12.14 16:04수정 2021.12.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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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6일 오전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 받은 가운데,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대위 회원들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전국 법원 1심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은호 N번방 피해자 공동대리인(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n번방 사건' 해결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0만명의 동의를 받고, 매일같이 수많은 해시태그 운동이 펼쳐질 때 일부 남성들도 하나의 해시태그 운동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n번방 안 본 남자들 일동'이라는 명의로 진행된 이 운동은 "#내가_가해자면_너는_창녀다"라는 내용과 경멸적인 표현을 담고 있었다. 이 말에 "본 사람 뿐 아니라 보여준 사람도 문제 아니냐"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는 n번방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심각한 2차 가해였다.

왜 그들은 n번방 사건을 해결하자는 말을 듣고 그토록 분노했던 것일까. 해당 해시태그 운동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사라진 이후에도 n번방 사건을 해결하자는 말을 하는 여성들은 자주 경멸과 분노, 조롱을 마주해야 했다.

분노하는 이들은 아마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폭력이 아주 특이하고 아주 나쁜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몇몇의 가해자들이 악마 같고 아주 특이한 사람이 될수록 '평범한' 자신과 구분하고 분리하기 쉬워질 것이었다. 그러나 n번방 사건에 대한 분노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고, 숨은 가해자들을 찾아내는 것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디지털 성폭력이 특정한 악마의 소행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한 몇 가지의 유해한 음모들은 꽤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신상공개로 사회에 드러난 극소수의 가해자들(조주빈, 강훈, 남경읍, 문형욱, 안승진, 배준환)이 악마 같은 놈들이기에 n번방 사건이 일어났고, 이들에 대한 강력 처벌과 격리가 사건 해결의 전부여야 한다는 것은 n번방 사건을 진짜로 해결하지는 않으면서도 끝낼 수 있는 좋은 논리가 되었다. n번방 사건이 여론의 관심에서 조금씩 흩어질 때, n번방 이용자들은 텔레그램에서 디스코드로, 온리팬스로 이동하여 또 다른 가해를 저질렀다.

n번방 방지법 시행 첫 날 풍경에 경악

n번방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제 그곳만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흔하게 소비했던 '일반인 야짤'과 '일반인 야동', 여성 연예인의 노출 동영상과 합성물도 문제였을 것이며 일상 생활 속에서 성폭력을 농담의 소재로 소비한 것도 문제였을 것이며, n번방 사건과 같은 범죄를 알면서도 모른척 했던 것도 문제였을 것이다. 정말로 나쁜 가해자만을 처벌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달콤한 말이 사실은 디지털 성폭력의 해결을 막는 말로 기능한다는 점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다.

2020년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후 '가해자 강력 처벌' 이외에 몇 가지 유의미한 시도가 논의되었다. 그 중 하나는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불법 촬영물을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 의무를 부과한 법 개정이었다. 해당 개정안은 성착취 동영상이 플랫폼 내부에 떠돌고, 피해자를 만들 동안 수수방관했던 플랫폼 사업주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 규정을 신설한다는 것에서 의미가 깊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1년 반이 흐르고 마침내 법이 시행되던 첫 날, 갑작스럽게 야당 정치인들은 'n번방 방지법'이 반민주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잘못된 법이라고 매도하기 시작했다. '카톡검열(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 '전 국민 감시법(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선동적인 입법(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검열 공포'를 불러일으킨 법이라는 말이 정치인들의 입 밖으로 나왔다. 심지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귀여운 고양이, 사랑하는 가족의 동영상도 검열의 대상이 된다면 그러한 나라가 어떻게 자유의 나라겠느냐"라고 말했다. 마치 이 법이 고양이를 검열하는 법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n번방 방지법에 대한 지나친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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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하태경 의원 주최 '온라인 커뮤니티 사전검열법 이대로 괜찮은가' 긴급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 여야가 함께 만든 법을 시행 첫 날부터 손바닥 뒤집듯 부정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것이란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n번방 방지법이 사찰과 검열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 애초에 불법으로 규정된 동영상을 삭제하도록 하는 것은 이미 많은 커뮤니티와 사이트가 '운영규칙'을 토대로 하고 있는 일이며, 법은 이것을 보편화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부가 커뮤니티 내부의 게시글을 하나하나 살펴 검열하고, 마음에 드는 것만 허용하게 될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n번방 방지법에 대한 지나친 왜곡이기도 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밝힌 대로, n번방 방지법은 정부에서 이미 불법 촬영물이라 판정된 영상의 코드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영상의 코드를 대조하여 일치할 경우 삭제 조치를 의무화 하는 방식으로 가장 많이 기능할 것이다.

n번방 방지법을 반대한다고 말했던 모든 정치인들은 자신이 디지털 성범죄 강력 처벌에 반대하는 것은 아님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n번방 방지법이 검열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일부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의 입장이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똑같이 말해지고, 최소한의 규정으로 만들어진 n번방 방지법조차 시행 첫날부터 반대에 휩싸이는 것을 볼 때면 그들이 디지털 성범죄를 정말 차단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악마같은 가해자'만을 처단하는 것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유일한 방안이라면, 정치는 가해자를 따라다니며 처벌하는 것 외에 피해를 차단하는 것도, 가해를 예방하는 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애초에 해당 개정안은 불법 촬영물이나 성착취물이 광범위하게 유통되기 전에 차단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다 만들어진 법이기도 했다. 피해자 보호의 성격을 가진 법을 비틀어 '검열'과 '사찰'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그들이 법의 또 다른 당사자인 피해자를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누구도 자유롭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가져선 안 된다

디지털 성범죄를 차단하기 위해 우리가 특별한 괴물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상의 악을 물리쳐야 한다면, 성폭력 사건을 방관하는 다양한 책임 주체들을 호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플랫폼 사업주도 플랫폼 내부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정립한 n번방 방지법은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 누구도 자유롭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 디지털 영역에서 그것은 예외가 될 수 없다. '가해자 강력 처벌'이라는 쉬운 방식의 해결이 아니라 폭력이 놀이문화가 되는 현상과 수많은 방관자들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해야 하는지도 논의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집단의 존엄과 인격이 훼손되지 않는 정도까지만 용인되어야 하지,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이 모든 논의에서 내가 동의하는 단 한 가지 사실은 n번방 방지법이 추후 계속 개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법을 넘어 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해 플랫폼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 규정을 더욱 엄밀하게 만드는 작업을 계속 시도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디지털 성범죄자들을 비이성적이고 과도한 주장을 하는 이들로 매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n번방 방지법을 '여론 선동에 휩쓸려 만들어진 법'이라고 표현하면서 피해자가 있는 사건 관련 입법 심의 현장에 피해자나 가족이 나와선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n번방 사건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발견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피해자를 위한 법이지만 피해자가 논의 테이블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애초에 법안의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정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 시행 첫 날부터 터져나온 수많은 반대 속에 n번방 사건 피해자는 또 다시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한다. 우리는 언제 인간의 존엄과 존중이, 폭력에 대한 자유가 먼저 논의 테이블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간편한 해결과 간편한 해답으로 쉽게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정치인들이 부디 반성하길 바란다.
#N번방 #디지털 성범죄 #N번방 방지법 #국민의힘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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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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