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크게 뜨고 타인을 평가하라

이것이 중국인이다 25

등록 2021.12.28 18:12수정 2021.12.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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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巧)로 남에게 이기지 말라.
모(謀)로써 남에게 이기지 말라.
싸움으로써 남에게 이기지 말라.
-장자
  
삼국지는 중국사의 요약판

중국인을 알려면 <삼국지>를 읽으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야말로 천하통일을 꿈꾸는 영웅호걸들이 대륙을 무대로 불꽃 튀는 경쟁을 한 중국사의 요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개성과 야망이 강하다. 그들은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대륙을 휘젓고 다닌다. 등장인물 모두가 상대를 꺾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온갖 지략과 권모술수를 구사하는 탓에 삼국지는 재미가 있기도 하고 중국인의 술수를 제대로 알게 하는 책이다. 삼국지를 제대로 읽게 되면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긴다.

삼국시대는 한 마디로 격동의 시대였다. 통일 중국을 400년간 지배하던 한(漢) 왕조란 강대한 권위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권위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사회규범이나 가치관도 혼돈된 상태는 시대였다. 사실 이런 시대처럼 재미있는 시대는 없을 것이다.

특히 능력이 있고 무언가 큰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한낮 필부에서 왕후장상은 물론 황제의 자리까지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현대의 많은 경영인들이 <삼국지>에서 인재의 발탁이나 등용술을 배운다고 말한다. 어떤 재벌 그룹이 정치의 복잡한 내용을 연구하기 위하여 <삼국지>를 교재로 선택한 바 있고, 미국의 육군 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서 <삼국지>를 교재로 채택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삼국지>의 세 주인공

<삼국지>의 세 주인공 유비, 조조, 손권은 인재를 기용하고 관리하는 방법이 전부 달랐다.


유비는 인의와 신뢰, 덕으로서 사람을 중용했고, 조조는 학문과 병법에 재주가 뛰어났고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했다. 반면 손권은 수성형의 리더로서 적극적으로 천하를 엿보는 것이 아니라 정세에 대응하는 유연한 자세로서 자신이 지닌 왕국을 다스리는 데 만족했다.

삼국지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조조와 유비이다.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대조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조조를 '권모(權謀)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유비는 '정의의 사람'으로 말해도 좋다.

조조는 타고난 지략과 권모의 능력을 발휘하여 거의 알몸으로 출발했으면서도 비교적 짧은 기간에 황하유역에 세력을 구축했다. 그의 성공은 '권모'라는 개인적 재능에 힘입은 바 크다.

여기에 비해 유비는 언제나 조조의 뒤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한 관우, 장비를 비롯하여, 삼고초려(三顧草廬)로 모셔온 제갈량이 유비를 위하여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준 탓에 조조와 맞서는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조조가 본거지로 한 허(許) 땅에 후한 왕조의 헌제(獻帝)를 맞이해 황하유역에 확고한 위치를 구축했을 때, 유비는 아직 자신의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손님의 신분으로 조조 밑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즈음 조조의 독재에 반기를 들고 조정의 대신들이 조조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워 유비를 실질적인 주모자로 추대했다.

유비가 대신들의 뜻을 받들어 실행의 기회를 엿보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조조로부터 식사를 함께 하자는 초청을 받았다. 유비는 시치미를 떼고 자리에 참석했다. 조조는 유비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 천하의 영웅은 당신과 나 조조뿐이오. 원소의 무리는 헤아릴 것이 못되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흠칫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때 마침 귀청을 찢는 듯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유비는 겁먹은 표정을 하며 변명을 했다.

"주군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제가 워낙 천둥번개를 무서워해서 그만..."

유비는 이렇게 바보시늉을 하고 겨우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조조가 모사의 천재였다면 유비도 음흉한데는 그에 못지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유비가 여포에게 쫓겨 조조에 의지하러 왔을 때, 조조의 모사 정욱이 말했다.

"유비를 보아하니 영웅의 풍도를 지닌 자입니다. 그를 그대로두면 차츰 민중들의 인심을 얻어 그 세력이 커져나갈 것입니다. 그가 세력을 키우기 전에 미리 그 힘을 꺾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조는 정욱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영웅이 나에게로 도움을 청하여 왔다. 그 한 사람을 죽여 천하의 인심을 잃는다면 그것은 안 될 일이다."

정중하게 유비를 대우하면서 될 수 있으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것이 조조의 마음이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는 말을 입증해주는 일화이다.
  
수성의 묘를 터득한 손권

조조와 유비는 그 뜻과 방법은 달라도 자기의 손으로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으나 손권은 그런 강렬한 의지가 거의 없었다.

이것은 어떠한 의미에서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결과 오는 삼국 전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았고 위나 촉보다 오랫동안 보존했기 때문이다. 손권이 터득한 것은 자세를 낮게 하고 몸을 움츠려 '살아남기'의 전략을 사용했다. 따라서 흥미가 부족한 면은 있지만 자기를 지키기에 급급한 오늘날에 있어서는 조조나 유비보다는 그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손권의 장점은 유연한 외교노선에 의해 나라의 존속을 꾀하고 사람을 쓰는 데 아주 신중했다는 점이다. 그의 밑에는 주유, 노숙, 여몽, 제갈근, 육손 등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쟁쟁한 인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리더의 조건

리더의 조건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되어왔다. 말하는 사람마다 주장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그 가운데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통솔력, 판단력, 선견력, 결단력 그리고 신의와 동정심 같은 항목이었다.

분명 이러한 내용은 정상의 조건으로써 빼놓을 수 없는 것이고 그 범주에 있어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필요조건의 전부는 아니다. 이럴 때, 중국 사람이라면 어떤 조건을 덧붙일까. 그들은 '풍도(風度)'라는 말을 한다.

당나라 현종 때, 장구령(張九齡)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높은 학식과 덕을 지닌 선비이고 시인으로 유명하며, 재상의 직위로 조정의 일에 대해서는 바른 말과 강직한 직언으로 현종의 치세를 보좌했다고 한다. 장구령이 정계에서 물러난 뒤의 일이었다. 후임자의 추천이 있을 때마다 현종은 이렇게 물었다.

"구령과 같은 풍도를 갖추었는가?"

재상은 그 학식과 덕망을 갖춤과 함께 풍도가 필수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풍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말로 나타내자면 '풍모', '풍채', 등의 뜻이지만 '풍도'는 이들보다 더 넓은 의미를 나타낸다. 즉, 태도, 언행, 표정, 용모, 골격 등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 전부를 말하며 거기에 인물의 그릇, 도량, 분위기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다.

태도와 언행에 있어서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느긋하고 침착한 감정이 필요하며 표정은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나거나 하는 감정들이 직접 얼굴에 나타나서는 안 되며 용모는 단정하고 당당해야 한다. 즉 그 지위에 어울리는 외모를 갖춰야 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는 '사십이 되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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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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