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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에 소주 거창한 차림 ⓒ 손은경
뒤에 달린 일정이 없는 날은
편히 마실 수 있다.
한 잔에 몸을 녹인다.
지난 토요일이었다.
제조상궁이 되어
맥주에 소주 쪼르르 따라 소맥을 만들었다.
마땅한 안주거리가 없어 내온 것은 석박지.
술은 쓰니
김치라도 있어 다행이다.
별것 없는 한 차림이 되었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런가 보다.
넘길 수 있는 만큼만 입에 채워 한 모금 마셨다.
취했다.
그립다는 감정과 무관하게, 아빠 생각이 났다.
탁자에 놓인 것은
아빠가 꼬박꼬박 챙기던 안주상과 같다.
나 어릴 적
아빠는 두꺼비 그려진 소주 한 병에 김치로 한 끼를 해결했다.
어김없이 취했고, 취한 그의 언행은 횡포였다.
당한 건 약자에 속하던 엄마와 지 애미를 닮은 나.
이 세상에 소주와 김치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날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6살이던 시절의 아빠 나이가
이젠 내 나이가 되었지만
소주와 김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아빠가 사라졌다.
20년이나 되었다.
그를 떠올리는 것을 멈춰 다시 한 모금 넘겼다.
그랬던 날을
김치에 소주로 위로받는다.
나의 아빠라는 자는 참 유별나다 여겼건만,
아빠와 나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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