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이재명의 '국민소득 5만불'과 중대재해처벌법

[取중眞담] "중대재해법 적용 쉽지 않다" 발언 논란... 광주아파트·김다운씨 참사에 부쳐

등록 2022.01.13 16:52수정 2022.01.13 16:52
2
원고료로 응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a

‘고 김다운 전기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한국전력 위험의 외주화 규탄 및 책임 촉구 건설노조 기자회견’이 10일 오전 청와대앞에서 유족대표와 노동자들이 참석해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앞에 놓인 안전화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고 김다운씨는 2021년 11월 5월 경기도 여주시에서 오피스텔 전기공급을 위한 전봇대 작업 도중 감전사고로 사망했다. ⓒ 권우성


지난 3일, 한국전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다운(38)씨의 부고가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김씨는 작년 11월 5일 경기도 여주의 한 전봇대에서 홀로 작업을 하다 고압선에 감전됐다. 2만 2천 볼트가 넘는 전류에 머리에까지 불이 붙었다. 정신을 잃은 그는 그 상태로 허공에 30분 넘게 매달려있다가 구조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갔지만 19일만인 11월 24일 사망했다. 한전은 이 죽음을 한달 넘게 쉬쉬했다. 2인 1조 작업, 활선차 이용 등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서야 드러났다.

지난 11일 광주에선 신축공사 중이던 고층 아파트가 무너져내려 50~60대 하청 노동자 6명이 매몰됐다. 시공사는 불과 6개월 전인 작년 6월에도 광주 학동 재개발지구 철거공사 중 부실 관리로 건물을 무너뜨려 인근 버스 승객 9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던 HDC현대산업개발이었다. 아직 아파트 붕괴에 대한 명확한 수사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날림' 공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겨울철엔 추운 날씨 탓에 콘크리트가 잘 마르지 않아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하다 참사를 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종된 6명 노동자들은 이틀이 지난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a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10대 그룹 CEO 토크 '넥타이 풀고 이야기합시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새해 벽두부터 연이은 우울한 소식들이 안타까움을 더한 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은 산재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지난해 1월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재계의 압박에 여당이 법 적용을 1년간 유예하는 바람에 오는 27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법 시행 이전에 벌어진 위의 두 사건은 중대재해법 적용이 어렵다고 한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김다운씨 사망에 대한 공분이 높아지자 6일 기자들에게 "며칠 전 정승일 한전 사장과 통화해 사고 발생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한전 사장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말 뿐이었다.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에 대해 12일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생명과 안전에 앞선 현대산업개발의 이윤 창출, 그리고 관리 감독을 책임진 관계기관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제2의 학동 참사"라며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등의 후퇴로 중대재해 예방 책임의 당사자인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준 정부와 국회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중대재해법 실제 적용 쉽지 않다" 발언 논란

이런 와중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2일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10대 대기업 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계와 경영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면서 "결국 저는 이 중대재해처벌법도 실제 적용은 거의 쉽지 않을 거라고 보긴 한다.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에"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후보는 "너무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긴 하다"면서 거듭 CEO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재명 : "재계에서, 경영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걱정이 되실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생각 못하게 형사처벌을 당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같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영국이 아주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미국 같은 데는 이런 게(중대재해법이) 없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우리나라가 왜 전세계에서 가장 산업 재해율과 산재 사망률이 높은가. 미국보다 높다. 그럼 미국엔 법이 없는데 왜 산재 사망율이 낮냐. 이게(중대재해법이) 100%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결국은 저는 산업계에서 정말로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 특히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노력이 좀 필요하겠다.


좀 그 점들을 고려하면 결국 저는 이 중대재해처벌법도 거의 실제 적용은 거의 쉽지 않을 거라고 저는 보긴 합니다.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에요. 그럴 거긴 한데, 어쨌든 이 문제도 기업 측도 고민이 되겠지만 또 산재로 아까운 목숨을 잃는 연간 2000명이 넘는 사람들, 또 그 가족들 입장에서 보면 또 심각한 주제이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정말 산재 사망률, 또 산재율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있으면 이 문제도 좀 쉽게 조정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너무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긴 하다."
 
해당 발언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더불어민주당은 이 후보의 발언 후 두 시간여 뒤에 이례적으로 후보 명의 입장문을 추가로 내고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대재해법을 두고 기업인들과 나눈 대화에 대해서 일부 오해가 있는 듯해서 진의를 다시 설명 드린다"라며 "오늘(12일) 제 발언은 '산재를 줄이기 위해 통상적 노력을 하는 선량한 경영자라면 중대재해법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민주당의 해명대로 전체 발언의 취지가 기업의 산재 예방 노력을 당부한 것이었다 해도, 이 후보가 "중대재해법도 실제 적용은 거의 쉽지 않다"고 말한 부분은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서 기업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의 비협조가 극심하고, 법과 정부 시행령이 원안보다 후퇴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대두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법조인 출신인 이 후보가 "입증이 쉽지 않다"고 말한 부분은 당내에서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 책임이 '입증'된 경우에만 경영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현 중대재해처벌법의 조항은 입법 당시부터 독소조항으로 지목돼왔기 때문이다. 노동 문제에 밝은 한 민주당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우리 당의 성과 중 하나인데 후보의 실언으로 논란을 만들었다"라며 "시행을 앞두고 갈등이 첨예한 법안인 만큼, 대선후보로서 발언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라진 노동 공약, '국민소득 5만불'이라는 개발논리
  
a

내부도 붕괴 정황 광주 서구 화정현대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구조물 붕괴 이틀째를 맞은 12일 당국은 안전진단을 거쳐 실종자 수색 재개를 결정하기로 했다. 신축 공사 중인 이 아파트의 1개 동 옥상에서 전날 콘크리트 타설 중 28?34층 외벽과 내부 구조물이 붕괴하면서 작업자 6명이 실종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사고 현장의 모습. ⓒ 연합뉴스


당 안팎에선 이재명 후보의 대선 캠페인에 '노동'이 사라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이 후보가 이번 대선 국면에서 현재까지 발표한 총 161개 공약 중 '노동'과 관련된 것은 '임금체불 근절, 노동자의 시름을 덜어드리겠습니다'(2021년 9월 16일), '생애 첫 노동의 결과가 죽음이 되지 않기를'(2021년 10월 9일), '노동자 휴게시설 확충'(2021년 12월 4일) 등 단 3건에 불과했다.

'노동'의 빈자리는 '국민소득 5만불' 같은 개발 구호가 대신 꿰찬 모습이다. 새해부터 부쩍 더 그렇다. 이 후보는 지난 4일 상징성이 큰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정부의 고속도로가 산업화의 토대를 닦았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차 언급했다. 11일에도 '신경제' 비전을 선포하고 '국민소득 5만불 달성'을 국가비전으로 제시했는데, 비현실적이란 비판이 잇따르자 "임기 내 목표는 아니다"라고 한 발 뺐다. 12일엔 10대 대기업 CEO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각종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민주당의 한 전략라인 관계자는 "중도 표를 얻고 현재의 박스권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어떻게 이재명이 저런 말을 하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오른쪽 행보를 계속 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 같은 왼쪽 의제가 아니라 친기업, 박정희, 국민소득 5만불 같은 성장 담론을 계속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진보 진영에서 '우클릭'이라고 욕을 먹는 게 과연 이재명에게 나쁜 일이라고 보나? 전혀 아니다"라고도 했다.

영하의 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광주 아파트 붕괴 현장에선 실종된 6명 노동자들에 대한 수색을 재개했고, 13일 오전 지하 계단 부근에서 1명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부디 희망을 걸어본다.
#김다운 #광주아파트 #중대재해법 #이재명 #산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