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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고등학생 둔 학부모님들, 왜 이러실까

[아이들은 나의 스승] 2년 후면 투표권도 생기는데... 초등학생 다루듯 하는 건 지나쳐

등록 2022.02.07 13:31수정 2022.02.0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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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입춘날이 새내기 등록 마감일이었다. 지난달 28일, 관내 평준화 일반고 배정이 끝난 뒤 등록 일정이 마무리됐다. 2월 한 달 동안 이사와 전학 등의 사유로 숫자에 다소 변동이 있겠지만, 아무튼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작년보다 10명 남짓 늘었다.

모르긴 해도, 우리와 주변 학교의 정원이 늘어난 만큼 공동화를 겪고 있는 도심과 변두리의 학교는 학생 수가 줄었을 것이다. 인구의 대규모 사회적 이동을 학교가 그때마다 따라갈 순 없는 노릇이다. 신택지개발 지역의 학교 부족 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학교마다 엇비슷하게 숫자를 맞추려는 교육청의 노력이 눈물겹다. 학교당 학생 수의 편차를 줄이려다 보니 통학 거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밀어내기' 방식으로 학교가 배정돼서다. 집 근처 학교를 두고 통학 버스를 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다. 

같은 학군에서 동일 계열 다른 학교로의 전학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 지역의 학령인구와 학교의 분포가 균등하지도 않을 뿐더러 학교당 학생 수를 고르게 하자면 허용된다고 해도 어차피 제비뽑기로 선발할 수밖에 없다. 정도의 차이일 뿐, 학교 배정은 늘 모두에게 불만투성이다.

버스카드조차 없는 고등학생
 

정도의 차이일 뿐, 학교 배정은 늘 모두에게 불만투성이다. ⓒ envato elements

 
이맘때쯤 교육청엔 학교 배정 관련 민원 전화가 줄을 잇는다. 십중팔구 학교가 집에서 너무 멀다며 전학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통사정하는 학부모도 있다. 예전에는 다른 지역으로 나갔다가 이내 다시 들어오는 편법이 횡행하기도 했다. 

"아침에 너무 바빠 도저히 아이를 태워줄 수가 없어요." 

수화기 너머 한 학부모는 절박한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처음엔 아이가 홀로 등하교하기 힘든 장애가 있는 아이인 줄 알았다. 그러한 경우, 교육청이 보내준 배정 명단에 정원 외로 명시돼 있는데, 이 아이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사는 곳도 버스로 20분 남짓이면 통학이 가능한 거리였다. 


"굳이 부모님께서 태워주시지 않고 아이가 버스로 등하교해도 될 것 같은데요."

무심코 건넨 이 말에 대화가 순간 데면데면해졌다. 그는 지금껏 등하교는 물론, 학원과 독서실을 오갈 때조차 아이를 '픽업'해 왔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창궐한 재작년부터는 아예 버스를 이용하지 않도록 신신당부했단다. 아이에겐 지금 그 흔한 버스카드조차 없다고도 했다. 

집 가까운 곳으로 전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그에게 차마 없다고 퉁명스럽게 답할 수 없어 교육청에 문의하라며 공을 넘겼다.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답한다고 해서 그만둘 것 같지 않아서다. 아마도 교육청 담당자는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요령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배정 발표가 있던 당일 오후 학교마다 예비 소집이 있었다. 수능일 전날 시험장의 위치 등을 사전 확인하는 절차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겸사겸사 학교 생활을 소개하는 소책자를 배포하고, 개학 날의 일정을 안내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의 전화번호를 받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예비 고1 담임교사들은 배정된 새내기들을 잠깐 스치듯 만나는 그 시간을 위해 각별한 신경을 쓴다. 학교에 대해 좋은 첫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소책자는 물론, 쓱 훑어보고 버려질지도 모르는 낱장 가정통신문 하나를 만드는데도 몇 날 며칠 오탈자를 찾아내며 정성을 들인다. 

그런데, 아이들 대신 학부모가 홀로 와서 서류뭉치를 받아 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짧은 순간일지언정 새 학교 담임교사와의 첫 만남이 아이가 아닌 학부모라는 게 무척 어색했다. 아이가 바빠 대신 왔다고들 했다. 더 묻진 않았지만, 아마 학원에 가느라 못 온 것일 테다. 

예비 소집 시간에 맞춰 줄곧 교문에 서 있었다. 낯선 학교에 오는 새내기들을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서다. 겨울바람이 사납게 불던 날씨였지만, 그들 앞에서 환한 얼굴로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쭈뼛거리다가 아이들도 화답하듯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교문 앞에 자가용들이 늘어섰다. 자녀를 싣고 온 학부모들의 차량 행렬이다. 학교가 시내버스 종점인 데다 노선도 많아 찾아오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데도 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의 수가 언뜻 더 적어 보였다. 한꺼번에 몰려든 차들로 교문 주변이 주차장으로 변했다. 

예상치 못한 교통 체증에 버스의 경적이 요란하게 울렸다. 주차해놓은 자가용들이 오가는 버스와 엉켰다. 그나마 운전자가 있는 경우 그때그때 주차할 곳을 옮겨 다녔지만, 비상등을 켜놓은 채 운전석을 비운 차량이 적지 않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들어가려는 거다.

"채 10분도 안 걸릴 테니, 학부모님께서는 교문 밖에서 기다려주십시오." 

코로나로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이유를 댔지만,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며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아이 대신 학부모가 온 경우 교문에서 서류뭉치를 건넸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평일이라 회사에 어렵사리 조퇴를 냈다면서 함께 들어가게 해달라는 이도 있었다. 

2년 후면 투표권을 행사하는 나이인데
 

올해 고등학교 새내기의 나이는 만으로 16세 안팎이다. 2년 후면 모든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더러 국회의원이든 지방자치단체장이든 직접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 ⓒ envato elements

 
입학식이나 졸업식도 아니고 그깟 예비 소집이 뭐라고 저럴까 싶었다. 설마 가는 길을 헤맬까 걱정돼서는 아닐 것이다. 한두 살 먹은 꼬맹이도 아니고,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이들이 학교를 못 찾아올 리 없다. 그렇다고 코로나에 감염될까 두려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예비 소집에 아예 오지 않은 경우엔 직접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이사나 전학 등을 이유로 미등록할 경우, 굳이 학교에 찾아올 이유는 없다. 학교에서는 미등록 사유를 파악해 곧장 교육청에 보고해야 한다. 올해는 예비 소집에 응하지 않은 숫자가 유독 많았다. 

한두 통도 아니고 그들과의 통화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 와중에 예비 소집을 강행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지는가 하면, 요즘 세상에 간편한 SNS를 두고 오프라인으로 공지하는 방식이 낙후됐다며 짐짓 조롱하기도 했다. 당일 예비 소집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경우도 많았다.

"그냥 저한테 알려주시면 돼요. 아이에게 설명해 봐야 무슨 말인지도 모를 거예요."

자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아이에게 직접 안내하겠다고 했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학부모의 말이다. 이렇게 답한 학부모가 한둘이 아니었다. 순간 아이가 초등학생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통화 내용만 들으면, 학부모가 아이 대신 학교에 다닐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올해 고등학교 새내기의 나이는 만으로 16세 안팎이다. 2년 후면 모든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더러 국회의원이든 지방자치단체장이든 직접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 현재 교육감 선거의 경우 선거 연령을 만 16세로 낮추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선거 연령 등을 주제로 토론을 시켜보면 제법 성숙한 의견들이 오가기도 한다. 요즘 화제가 되는 대선 후보 토론보다 훨씬 더 논리적이고 내실 있는 주장이 펼쳐진다. 대선보다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가 차라리 낫다는 게 단순한 조롱만은 아니란 이야기다. 

몇 해 전의 놀라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선거 연령이 낮아지면 교실이 정치화할 우려가 크다는 주장에 맞서, 일상이 정치 행위인데 '정치화'를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하는 우리의 편견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반박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는 평범한 고1이었을 따름이다. 

나아가 그는 공고한 학벌 구조도 '정치화'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기는 주범이라며, 기득권 유지를 위한 가장 실효적인 무기라고 규정했다. 그의 도발적이면서도 명쾌한 논리에 친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수업은 활기가 넘쳤다. 개인적으로 토론 수업의 교육적 효과를 신뢰하게 된 계기였다.

올해도 그처럼 당찬 새내기를 수업 시간에 만날 수 있을까. 매일 자가용으로 등하교하고, 예비 소집 때조차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오며, 학교생활 안내조차 부모님이 대신 전달받는 아이라면,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이 덩치만 커질 뿐 어려지고 있다고 한다면 나만의 억측일까. 
#고등학교 예비 소집 #고등학교 배정 #선거 연령 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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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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