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학대 피해자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쓴 책

[서평] 미투 가이드북 '#미투, 그리고 나와 너'

등록 2022.02.21 09:33수정 2022.02.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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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과 같은 성폭력은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성격 때문에 벌어진다'라는 오해가 있다. 그런데 최근 경찰대학 연구진(형사정책연구 겨울호에 논문 기재)에 의하면 "폭력에 대한 '학습된 태도'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연구진은 조언한다.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폭력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는 선제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얼마 전(2월 10일) 경찰대학 연구진의 이와 같은 발표와 조언에 동감하는 뉴스를 접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 A가 지난해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성추행당했음을 학교에 알렸으나 학교 측은 마땅한 조치는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그 부모가 교육청에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당시 남자아이들은 그 여자아이의 바지를 벗긴 채로 넘어뜨리거나 치마를 들추고 신체 부위를 만지는 가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해당 학교 교사들은 "치마를 들추는 것은 예전부터 흔히 있어온 장난스러운 일"이라거나 "아이들 모두 A를 예뻐해서"와 같은 2차 가해성 말을 하는가 하면 "송사를 했다가 도리어 송사를 당할 수 있다"와 같은 압박성 말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성인지감수성, 그 정도를 지레짐작하게 하는 뉴스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젠 정말 보다 체계적인 관련 의무교육이 필요하겠구나', 위기감 같은 것을 느끼며 본 뉴스이기도 하다.
 
19. 나는 가해자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언제나 가해자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아닙니다. 가해자 중 상당수는 처음에는 무척이나 근사한 사람처럼 보인답니다. (...)가해자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미리 알아둬야 합니다. 여러분보다 나이가 많은 가해자를 알아볼 수 있는 몇몇 징조 또는 위험신호를 알려주겠습니다.

 ▲경계선을 존중하지 않는다. 또는 싫다고 말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아이가 싫다고 말해도 계속해서 몸에 손을 댄다. ▲아이에게 어른이 아닌 친구가 되려고 한다(근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성범죄자들의 행동 징표일 수도 있다) ▲마약, 알코올, 음란물 또는 그 밖의 부적절한 것들을 제안한다. ▲자기 나이 또래 사람들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과 고집스레 비밀을 유지하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 또는 인간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 한다. 아이와 단둘이 있을 이유를 만든다. ▲아이의 성적인 발달에 유별난 관심을 보인다. 이를테면, 성적 특성에 대해 언급하거나 평범한 행동에도 성적인 매력을 부여한다. ▲이유 없이 아이에게 선물을 준다. - <#미투. 그리고 나와 너> 99~100쪽.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성 학대에 대한 그릇된 통념 22가지'에서.
 

<#미투, 그리고 나와 너> 책표지. ⓒ 스푼북

 

그래서 보다 많이 알려졌으면의 바람을 더욱 갖게한 책 <#미투, 그리고 나와 너>(스푼북 펴냄)이다.

저자 '핼리 본디'는 유년기부터 지속적인 그루밍 성폭행을 당했으며, 청소년기 여러 차례의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다행히 상처를 극복했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이자 기자, 편집자, 그리고 엄마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저자가 "제 아이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책을 쓰고자 관련 자료들을 수집, 결과라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성 학대를 다룬 이런 책을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학대, 괴롭힘, 상담, 보복, 정서적 트라우마, 연대, 강압적인 행동을 피하는 것, 학대와의 싸움, 학대에 대한 올바른 인식, 그루밍의 심각성,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등의 주제가 모든 학교 교과과정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미투에 관한 중요한 가이드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런 바람으로 나온 이 책은 ▲성 학대로부터 안전한 바람직한 인간관계 vs. 성 학대로 이어질 수 있는 인간관계 ▲여러 유형의 그루밍 성 학대나 인터넷매체를 이용한 성범죄 등 다양한 유형의 성 학대 사례 ▲성 학대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알아야 할 것들 ▲성 학대 가능성이 보이는 어른이나 친구의 행동 유형 ▲성 학대에 대한 그릇된 사회 통념 22가지 ▲성 학대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혹은 성 학대를 당한 후 어른들이나 기관 등에 제대로 도움 요청하기 ▲성 학대 2차, 3차를 막을 수 있는 방법 ▲성 학대 방지와 근절을 위한 연대의 이유와 방법이나 사례 등을 다룬다.

6부로 나눠 체계적으로 정리했는데, 인용 부분처럼 번호를 매겨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했다. 관련 실제 사례와 설명을 위한 허구적인 사례를 설정해 설명하고 있어서 설득력도 높겠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의 주요 독자인 청소년들이 상황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이 책이 #미투 가이드북으로 더욱 유용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마도 옮기는 과정에서) 성 학대 피해자가 도움받을 수 있는 단체나 관련 처벌법, 상담이나 신고 절차 등처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정보성 내용은 우리의 것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알고 있어야 할, 특히 교육 현장이나 아동 보육자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도 다루고 있어 더욱 유용할 것 같다.
 
9단계, 신고 의무에 대해 알아두자.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람들은 관계기관에 신고를 해야 해요.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 학대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누구든지' 경찰에 신고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동 교육, 보호, 자원, 상담 및 의료 부문 종사자는 법에 따라 '반드시 신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만일 신고 의무자가 아동 성폭력 피해 징후를 발견하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신고하지 않을 경우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주:제10조 2항에 신고 의무자 명시)에 따라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미투. 그리고 나와 너> 116~117 '도움 요청하기'에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계간 <우리교육> 2022년 봄호에도 실립니다.,

#미투, 그리고 나와 너

핼리 본디 (지은이), 이주미 (그림), 김선희 (옮긴이),
스푼북, 2022


##미투, 그리고 나와 너 #타라나 버크(사회운동가) #핼리 본디(작가) #데이트 폭력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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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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