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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내가 휴대전화 알림을 끄고 알게 된 것

갑자기 찾아온 고요는 혼란스러웠다

등록 2022.02.19 20:11수정 2022.02.1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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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곳적 엄마의 뱃속에서도 혼자 있었다.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오면서 무섭고 낯설어 크게 울었다. 줄곧 울기만 했다. 엄마는 '너는 왜 울기만 하니? 이유라도 알자' 내게 말했지만 나는 거리로 도망 다니며 계속 울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그런 엄마는 나를 답답해했고 나는 좀 더 커서야 울음을 멈췄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혼자다.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만 남들 다하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했다. 나는 때가 되면 모든 것들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때가 되면 저절로 나이를 먹고, 학교를 가고, 직장을 갖게 되는 것처럼 결혼도 저절로 하게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관계'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되는 것임을 늦게 알아 버렸다.     

얼마 전, 오랜만에 친척들과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젊은 대학생 조카와 사촌들은 화제를 남자친구로 옮겨 갔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있던 초등생 남조카가 내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모 모솔이잖아'. 순간, 얼음땡이 되었다.  

녀석은 뭘 안다고 귓속말로 내게 속삭인 걸까. 녀석도 모솔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나를 모솔이라고 어떻게 단정 지은 걸까. 귀여운 조카 입에서 나온 모솔이라는 말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녕 지금까지 모솔이라면 부끄러운 걸까.    

"그래서, 지금 행복해요?"

한동안 나도 그랬던 거 같다. 어쩌다 혼자인 걸 들키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남자친구 없냐? 연애는 해봤냐?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한동안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가 이제는 '내가 지질해서 헤어졌어'라는 뻔뻔한 거짓말로 응수한다. 모솔보다는 여러모로 그 대답이 훨씬 덜 부끄럽고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혼자라서 행복하냐고 물었던 동료가 있었다. 대부분 결혼했던 동료들은 혼자인 나를 부러워하며 내가 자랑하듯 떠벌리는 혼자 여행의 로망을 소원하며 탄식했다. 그런 그들의 탄식 틈에 훅 들어온, "그래서 지금 행복해요?" 그 질문에 나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혼자 살면 슬플 일도 행복할 일도 크게 없었다.   
  
요즘엔 작은 일에도 슬프고 행복한 나이가 되었다. 나이 들수록 혼자가 편하다는 말을 위안 삼고 있지만, 모솔보다 더 부끄럽게 느껴지는 단어는 '외로움'이었다. 화려한 싱글로 요란을 떨어야 하는데 '외롭다'고 말하는 순간 어쩐지 우울하고 초라해 보여 '외로움'은 없다고 포장하며 가장 했던 거 같다.    
 

며칠 전,?곳곳에서 울리는 알림이 갑자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 Unsplash

 
거창하게 태곳적부터 시작한 '외로움'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며칠 전, 곳곳에서 울리는 알림이 갑자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알림이라 봐야 대부분 쇼핑몰 광고, 은행 이벤트, 마트 세일이 전부다. 게다가 오마이뉴스 알림은 밤에도 가끔 울려 잠든 나를 깨웠다. '띠리 링링 띠' 하는 울림은 어떤 긴급 속보일까 하고 눈을 감았다가도 알림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문득, 사람과의 소통이 아닌 일방적 알림에 시간을 멈칫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곧장 실행으로 옮겨졌다. 변경하기 귀찮아 그냥 뒀던 알림들을  찾아 차단하며 제거했다. 알림만 제거하면 완벽하게 조용한 세상이 될 수 있었다.      

모든 알림이 끊기자 계획대로 삶이 고요해졌다. 알림이 없는 삶은 적막 그 자체였다. 삶이 고요해지면 차분해야 하는데 초조했다. 자꾸 휴대전화만 힐끔거리고 있었다. 뭔가 소리가 나야만 만지던 휴대전화가 밋밋하기도 했다. 햇살은 따뜻했고 나는 멍하니 창밖만 바라 보았다. 내 숨소리만 크게 들릴 뿐 주위는 '무'의 상태였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는 혼란스러웠다.      

얼마나 흘렀을까, 한동안 이어지던 고요한 침묵을 뚫고 아파트 공동 스피커 폰으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잡상인이 관리소를 사칭해 초인종을 누르니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안내 방송이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 다시 고요해졌다. 너무 고요해서 불안했다. 나의 움직임만 감지되었다. 엄마 뱃속에 다시 갇혀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아, 이게 외로움이구나, 아닌 척했지만, 나도 무척 외로운 사람이었다. 외로움이 겹겹이 쌓여 눈물짓는 사람. 어릴 때 울었던 것도 다 외로워서 그랬던 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로운 사람이었는데 부끄러워 애써 외면하고 감추고 있었던 것을 왜 몰랐을까.

더는 고독을 포장하지 않겠습니다 

거두절미, 거짓말 같겠지만 너무 외로워서 다시 알림을 켰다. 너무 외로워 사막에서 뒤로 걸었다는 어떤 시인의 시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너무 외로워 뒷걸음질 한 남자의 이야기. 오스 텅스 블루의 <사막>.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사막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내가 그랬다. 시끄럽고 신경 쓰여 꺼뒀던 알림들을 다시 ON 한 건 조용해진 삶이 더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외로운 모솔에서 해방을 꿈꿀지언정 적어도 외로움은 포장하지 말자.

'톡' '띠리 링링 띠' 하는 알림 소리를 들으며 바쁜 척 휴대전화를 보며 뉴스라도 확인하는 게 오히려 솔직하다. 고독을 즐기며 외롭지 않은 척 포장하기 보다는 뉴스, 쇼핑몰 알림이라도 켜놓고 소식지를 받아보는게 인간적이라면 내가 너무 외로운 것일까.  

하지만 뭐 어떤가, 인간은 원래  뱃속부터 고독한 존재이며 혼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외로움도 노력해야 극복하는 것이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그래서 언젠가 누가 다시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그땐 "Yes"라고 답하고 싶다.
#외로움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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