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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간 1614만표의 의미

민주당 패배에 숨은 뜻... 국민을 '손절'했지만 '몰빵'하지도 않았다

등록 2022.03.14 11:51수정 2022.03.1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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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돌바내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를 내다본다'라는 모토로 출발한 진보정치의 플랫폼으로 정책생산과 입법활동, 정치활동을 하는 국회등록 사단법인입니다.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내셔날 어젠다(국정과제) 형성에 일조하고자 매월 격주 정책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커피전문점에 마련된 북가좌제2동 제5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커피전문점에 마련된 북가좌제2동 제5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심이 무섭다'는 말을 무겁게 실감한 20대 대선이었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430년 전 인물, 허균을 소환한다.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에서 오만한 권력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라며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눴다.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 항민(恒民),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행동은 하지 않는 원민(怨民) 그리고 침묵하다 때가되면 일어나는 호민(豪民)이다. 허균은 이 가운데 두려운 존재는 호민이라고 짚었다. 대개 힘없는 백성이 권력을 상대로 목소리 낼 때는 참다 참다 못한 경우다. 지난 역사에서 명멸한 모든 민란과 혁명은 이런 뒤 끝이었다.

박근혜 정부 몰락도, 문재인 정부 좌초도 모두 '행동하는 호민'에 의해서였다. 분노한 호민은 촛불로, 투표용지로 두 정권을 번갈아 심판했다. 20대 대선 또한 호민에 의한 '선거혁명'이란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시민들이 기존 권력을 바꿨다는 점에서 정권교체는 혁명이다. 다만, 혁명수단이 왕조시대 때는 곡괭이와 죽창이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투표용지로 대체됐을 뿐이다.

선거 결과는 역대 최소 차이였다. 국민의힘 윤석열(48.6% 1639만 표가량)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47.8% 1614만 표가령) 간 표 차이는 0.73%p, 24만 표가량에 불과했다. 승자도 패자도 뒤끝이 개운치 않은 수치다. 패자는 승복하는 게 주저되고, 승자는 한껏 자축하는 게 민망한 경계선에 있다.

20대 대선이 남긴 것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 참석해 단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 참석해 단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러면 20대 대선은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손절'했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에 '몰빵'하지도 않았다. 민주당에는 성찰, 국민의힘은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민주당이 거대 의석을 앞세워 차기 정부 국정운영을 발목잡거나, 국민의힘이 승자독식과 정치보복 유혹에 빠질 경우 6월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에서 언제든 단죄하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그러면 거대 여당이 침몰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청와대와 행정부, 국회, 지방권력까지 틀어주고도 민주당이 5년 만에 허망하게 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게 있다. 대형 사고가 있기 전까지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가 쌓여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하인리히는 수많은 산재사고를 분석해 부상당할 뻔한 300명, 경상자 29명이 쌓여 사망자 1명 나온다는 법칙을 발견했다.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 발생 비율을 1:29:300으로 정리했다. 이는 대부분 참사는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원인을 파악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면 대형사고와 실패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무시하고 방치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민주당의 패배는 어쩌면 수많은 징후와 조짐을 외면하거나 무시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 출발선은 촛불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은 광장에 섰다.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에서 민주당은 정권을 되찾았다. 자칭 보수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교체였다. 문재인 대통령 득표율은 41%로, 당시 투표율(77.2%)을 고려하면 실질적 지지율은 31.6%였다. 국민 70%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한 불안한 출발이었다.


그럼에도 80%대 지지(국정수행평가)를 얻으며 기세 좋게 출범했다. 국민들은 비록 레토릭일망정 문 대통령 취임사에 환호했다. 그는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까지 섬기겠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다짐은 공허했다. 정권 내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분열의 정치에 골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행은 여기에서 싹텄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주도자가 아닌 수혜자다. 그런데 그걸 착각한 나머지 오만했다. 국민들은 그런 민주당 정권을 심판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좋아서가 아니라 민주당 정권이 싫어 투표했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던 이유다.


집권 초기 겪은 일이다. 자신을 호남출신이라고 밝힌 70대 원로 교수는 "평생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이제는 아니다"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필자가 민주당 소속 국회의장을 보좌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줄곧 문 정권의 오만과 위선을 짚었다. 그즈음 만난 벤처기업협회장도 "기업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민주당 정부에 절망한다"고 열을 냈다. 그러면서 해외로 공장이전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두 사람을 만난 때는 집권 1년도 지나지 않은 초기였다.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리게 하는 불안한 조짐과 징후는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됐다. 민주당 인사들만 몰랐을 뿐이다. 운동권 출신 민주당 초선 의원에게 벤처기업협회장 사연을 전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가관이었다. "그 사람들 죽는 소리하지만 모두 고급 승용차 몰고 다닌다. 엄살이다." 기업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는 하소연과 고급 승용차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건지, 또 기업인들이 고급 승용차 타는 게 부정한 일인지 답답했다. 80년대 학생운동 인식 수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함운경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철지난 이념 좌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서울대 재학 중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을 주도한 586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함씨는 "(586정치인들은) '해방 전후사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제가 물러간 지 80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친일파 타령을 하고 있다. 이런 주술(呪術)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리 만무하다. 민주화 세력이 주류로 자리매김해 권력을 가졌음에도 세상은 그대로다. 자신들이 분노해마지 않았던 사회 부조리를 그대로 둔 채 이익에 탐닉하는 '내로남불'과 '위선'이 문제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 세력은 '과오가 있다'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이념적으로 '파산선고' 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수산물 유통업과 횟집을 경영하며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는 그에게 586정치인들의 인식은 한가롭다.

패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이쯤해서 민주당 패인을 복기해보자. 첫째, 정책 실패와 편 가르기다. 문재인 정부는 '선한 의지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상식을 입증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 임대차 3법은 대표적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었지만 을끼리 싸움을 부추기거나 더 힘들게 했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폐업했고,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시장 밖으로 밀려났다. 또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외면한 징벌적 부동산 정책도 실패했다. 28번에 걸쳐 정책을 내놨지만 집 한 채 갖겠다는 욕망을 탐욕으로 단죄하려다 집값만 올려놨다. 임대차 3법 또한 임대 물량 급감과 임대보증금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선한 의도였지만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집값 폭등은 온 국민을 무력감에 빠뜨렸고, 절망감은 정권교체 도화선이 됐다.

편을 갈라 지지층에만 기댄 분열의 정치는 가장 큰 패착이었다. 현 정부에서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임용한 장관급 인사만 32명. 노무현·이명박·박근혜 3개 정부를 합한 것보다 많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인사청문회를 정쟁 수단으로 악용한 야당에게 문제가 있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그렇다 해도 이 과정에서 갈등과 분열은 깊은 후유증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그때마다 '인사 청문회에서 많이 혼난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식으로 합리화했다. 조국 장관 임명은 편 가르기 정치의 정점이었다.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이 있다"는 말로 민심을 거슬렀다.

안일한 인사는 김기표 반부패비서관에서도 반복됐다. 김기표는 LH사태로 시민 분노가 촉발하던 때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에 임명됐다. 3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그는 50억 원 대 대출을 받아 90억 원 대 부동산을 소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기의혹에 휩싸였다. 민감한 시기에 문제투성이 인물을 반부패비서관에 임명할 정도로 청와대는 안일했다. 내 편은 괜찮다는 진영논리와 아집에서 비롯된 인사 참사였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위선도 국민들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는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에 전세 보증금을 대폭 올려 받았다. 김상조는 쫓기듯 물러났지만 문재인 정권에 치명적인 상흔을 남겼다.

둘째, 오만했다. 집권 7개월 만에 이런 일이 있었다. 32세 청와대 5급 행정관이 육군 참모총장을 커피숍으로 불러냈다. 인사문제 논의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절차도 상식에도 맞지 않는 황당한 일이었다. 청와대 정부로 표현되는 문재인 정부 오만을 상징하는 촌극이었다.

민주당 정권의 오만은 21대 총선 압승 이후 가속 페달을 밟았다. 180석은 독이 됐다. 민주당은 180석을 아무것이나 해도 되는 것으로 여겼다. 21대 국회 원 구성 과정에서 민주당은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했다.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이후로도 국회 운영을 독주했다. 고위공직자수사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는 아예 야당 추천권을 박탈했다. 야당 속셈을 감안하더라도 국민들 눈에는 다수당 횡포로 비쳤다. 또 비례위성정당 설립,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위해 말과 글을 뒤집었다. 당원들 뜻이라고 우겼지만 낯 뜨거운 행태였다.

'조국·윤미향·추미애' 논란을 거치면서 위선은 한층 극성을 부렸다. 조국 법무장관 지명 당시 반대여론은 높았다. KBS 여론조사(2019년 9월 10~11일) 결과, 조국 임명에 대해 '잘못됐다' 51%, '잘했다'는 38.9%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강행했고, 민주당은 군대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민심은 조국을 거부하는데 민주당은 헌사를 쏟아내며 방어에 급급했다.

나아가 다른 목소리를 가차 없이 응징했다. 조응천·금태섭은 배신자로 치부됐다. 금태섭은 공천 탈락에 이어 부관참시에 가까운 징계까지 받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당이라는 조롱은 이때 나왔다. 합리적 목소리가 사라지고 당론이라는 이름아래 획일적인 행동을 강요받는 민주당은 그렇게 오만과 함께 민심에서 멀어졌다.

셋째, 반성할 줄 몰랐다. 대법원은 입시비리와 관련된 조국 자녀 혐의 7건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정경심씨는 4년 실형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였지만 유죄로 인정해야 할 만큼 혐의는 명백했다. 하지만 헌사를 바쳤던 누구하나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를 공격했다. 앞서 김경수 재판에서도 재판부를 공격하며 사법 근간을 흔들었다. 자기 진영에 불리하게 판단했다는 이유였다.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피 흘려온 민주당 정체성은 이때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당 소속 단체장의 성추문 과정에서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엽기적인 말장난으로 피해자 가슴을 후볐다. 또 이용수 할머니를 조롱하고, 윤미향을 비판하는 이들을 토착 왜구라며 반격했다. 반성할 줄 모르는 민주당은 아예 기준선을 바꾸며 합리화에 급급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실점은 끝내 결정타를 안겼다.

진보진영의 내로남불 역사는 조국으로 거슬러 간다. 조국은 2008년 <성찰하는 진보>라는 책에서 "민주 대 반민주, 민족 대 반민족이라는 낡은 노래를 부르는 진보는 수구, 무능좌파라고 욕먹어 마땅하다"면서 "진보는 과감히 맨 얼굴을 바라보며 성찰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또 "진보의 열정과 희망은 어디로 표류하는가"라며 통렬한 자기반성을 촉구했다. 10여 년이 흘러 문재인 정권에서 조국이 보여준 언행은 겸연쩍었다. 그는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낡은 죽창가를 부르며 선동했다. 또 관행이었다고는 하지만 자녀 입시 비리 논란은 공정과는 거리가 먼 내로남불이었다. 그런데도 "무슨 문제냐"는 진영논리로 민주당은 마비됐다.

과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줌(ZOOM)을 통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줌(ZOOM)을 통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그러면 어떤 과제가 남았을까. 첫째, 상식과 잃어버린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고 진짜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진보, 보수할 것 없이 한국정치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편 가르기가 일상화 됐다. 합리적 토론과 공론장을 도외시한 채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진영대결만 판친다. 건전한 당내 비판과 토론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레드팀(반대 의견 제시)'과 '악마의 대변인'을 두고 확증편향을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론을 폐지하고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해야 한다. 당론이라는 반민주적 정당 운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해 패거리 문화와 줄서기 문화를 끝내야 한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한국 정치 현실을 가짜 진보와 가짜 보수로 나뉘어 극단적인 진영싸움을 반복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진짜 진보를 고민하자.

둘째, 이재명 후보가 약속한 정치개혁 과제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 모두 승자독식 대통령 중심제가 갖는 한계에 공감했다. 4년 중임제 개헌과 결선 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다당제를 가능케 하는 선거구제 개편을 골자로 하는 개헌에 나서야 한다.

만일 민주당이 선거 초반에 정치교체와 국민통합을 내걸었다면 선거 양상은 상당 부분 달라졌을 것이다. 180석에 달하는 의석을 활용해 입법까지 추진했다면 선거 결과는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선거에 직면해 발표함으로써 진정성을 의심받았고, 프레임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비록 대선은 패했지만 진정성을 갖고 정치개혁을 주도함으로써 신뢰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유연한 진보'로 전환이다. 진보진영은 정책을 수정하는 걸 패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야당과 협치를 담합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교조적 행태에서 벗어나 '우리도 틀릴 수 있다'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2010~2015)은 "우리가 틀렸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제든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고 경청할 것을 주문했다. 무히카 재임 기간 동안 우루과이는 야당과 협치를 바탕으로 남미대륙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이뤘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 대 반민주, 자주 대 종속, 친일 대 반일 등 철지난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강성 지지층에만 기댄다면 갈등과 분열은 피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대선 패배는 5년 동안 실점이 누적된 결과다. 민심과 거꾸로 갔다. 그렇다면 가야 할 방향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겸손하되 유능한 진보, 도덕적 권위를 지닌 진보다. 또 맹목적인 진영논리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다시는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는 터무니없는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식 회복이 관건이다. 언제든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당내 민주화는 그 첫걸음이다. 또 차기 정부와 협치를 통해 넉넉한 품을 알릴 필요가 있다. 87년 체제로 표현되는 낡은 정치제도를 바꾸는데 당력을 결집하자. 정치교체는 정권교체보다 중요하다.

이재명 후보는 선거 직후 대선 결과를 승복하며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당선인에게 축하를 건네며, 통합을 위해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자칫 불복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을 승복과 지지를 통해 정리했다. 진보의 품격을 보여줬다는 긍정적 평가다. 이제는 0.73%p에 연연하기보다 민주당과 이재명을 지지한 47.8%에 주목해야 한다. 낙선한 24만 표에 미련을 두는 건 과거에 머무는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에게 표를 던진 1614만 표의 의미를 되새기면 미래가 있다. 오만과 내로남불, 위선에서 벗어나 넉넉하고 유연하자. 소수의 목소리를 담는 정치개혁에 나서자. 그럴 때 민주당을 심판했던 호민도 지원군으로 돌아온다. 매화는 추위가 혹독할수록 깊은 향기를 품는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임병식씨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아주경제에도 실립니다.
#촛불 #내로남불 위선 #성찰하는 진보 #도덕적 권위 회복 #당내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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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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